절대로 살을 뭉개지 말라
일체모든 색이 있는 것은 공하고 모든 공한 것은 곧 색이다.
색을 가진 것 형상을 가진 것은 모두 비어있고 비어있는 모든 것은 곧 형상을 가지고 있다.
참치김치찌개 속의 참치는 형상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비어있기도 하다. 참치덩어리가 듬뿍 들어 있어 나를 흐뭇하게 하기도 하지만 참치가 모두 풀어져 덩어리를 찾을 수 없기도 하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참치덩어리가 보이지 않는 참치찌개는 잘못 끓인 참치찌개 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학식 있고 배운 사람은 참치찌개를 끓일 때 함부로 참치덩어리를 젓지 않는다.
참치는 물론이고 꽁치찌개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는 참치찌개를 끓일 때 김치를 볶는 것부터 공을 들인다. 참치김치찌개를 참치김치찌개답게 만드는 첫 번째 포인트는 참치캔에 들어있는 기름에 잘 익은 김치를 볶는 것이다. 참치 김치찌개는 생선과 채소의 훌륭한 만남인 것처럼 참치캔에 들어있는 기름 또한 생선살과 식물성기름과의 훌륭한 만남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가급적이면 그리고 필수적으로 참치김치찌개를 만드는 첫 단계로 김치를 볶을 때는 꼭 참치캔의 기름을 사용해서 볶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풍미가 올라가는 것은 물론이고 참치김치찌개의 사상적 배경 또한 든든하게 채워주기 때문이다.
참고로 김치를 볶는 타이밍에 전체적인 당도를 조절해 주고 밑간 또한 해주면 좋다.
김치가 반쯤은 투명하게 잘 볶아졌다면 그다음은 볶아진 김치 가운데에 참치캔의 참치살을 가지런히 원형 그대로 흐트러지지 않게 놓아주는 것이 순서이다.
그런 다음 생수나 쌀뜨물이나 준비해 둔 육수를 한편에 조용히 부어 불을 올려 끓여 준다. 붓는 물의 양은 김치와 참치가 잠길 정도가 좋다.
뭔가를 끓이거나 졸일 때 도저히 가만히 놔두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 또한 그렇다. 끊임없이 저어주거나 건드려주거나 뒤집어 주거나 그렇게 못하면 최소한 젓가락장단이라도 맞춰줘야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참치김치찌개를 끓일 때는 주의할 점이 있는데, 밑바닥이 탈까 봐 걱정이 되더라도 꾹 참고 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젓는 게 아니라 수저를 사용하여 참치살의 아랫부분을 둥그런 둘레-아직 참치캔에서 빠져나온 모양 그대로 인-를 따라 안쪽 대간선 위쪽으로 들썩일 정도로만 건드려 주는 게 포인트 이다..
밥 잘 먹은 아기 궁둥이를 토닥여 주듯이 수저로 만져주도록 하는데, 조금 흥이 돋는다면 입으로 작게 둥가둥가 라고 속삭여도 좋다.
찌개가 잘 끓어가며 참치살은 유지하던 원형을 조금씩 잃겠지만 집중과 컨트롤로 전체적인 모임새와 틀은 유지하며 완성될 때까지 끓일 수 있다.
참치김치찌개가 완성이 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물론 간을 보면 되겠지만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누군가를 총으로 쏠 때 꼭 두발씩 쏴야 확실히 죽일 수 있는 것처럼 간도 보고 눈으로도 보면 확실한 찌개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찌개를 끓이다 보면 김치의 고춧가루와 참치기름이 만나 만들어진 고추기름이 찌개 위로 떠오르는데 더 끓이다 보면 그 고추기름도 서서히 사라진다. 고추기름이 사라지고 색이 전체적으로 진해지면서 윤기가 돌면 간을 보지 않아도 찌개가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참치김치찌개를 끓일 때, 참치살의 원형을 유지하지 않고 휘휘 저어서 김치와 모두 뒤섞어버려 참치살이 모두 풀어져 찾을 수 없게끔 만드는 천인공노할 짓을 하는, 지탄받아야 할 무뢰배 같은 사람들에 대해 항상 분노해 오고는 했다.
참치의 원형을 유지하여 잘 끓인 참치찌개는 국물에는 깔끔한 참치향이 적절히 배어있고 잘 익은 김치와 덩어리 진 참치살의 식감도 즐길 수 있는 서민적인 일품요리가 된다. 하지만 참치를 마구 으깨 뒤섞은 참치찌개는 국물도 자잘한 참치살이 섞여 탁하고 참치살의 식감보다는 김치에 작게 달라붙은 참치조각들이 건더기플레이크를 먹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나는 그런 참치김치찌개를 대접받았을 때는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렇게 다 풀어져버린 잡탕을 가져다 놓고 참찌찌개를 드셔보세요라고 하는 대신 이것을 맛봐주세요라고 어중간한 표현을 사용한다면 나도 일단은 넘어가 줄 수가 있다.
보통 그렇게 참치였던것이 들어간 잡탕찌개를 먹게 되면 이왕 이렇게 된 것, 밥에 찌개를 넣고 비벼서 먹는다. 버터(전통적으로는 마아가린)를 따뜻한 밥 밑에 조금 깔아 풍미를 더한 뒤 잘 비벼주면 맛있는 참치찌개밥이 되는 것이다.
아 그리고 나는 그때에 깨달았다.
형태가 있는 것은 모두 스러져 사라지고 모든 스러져 사라져 비어버린 것이 결국 형상의 본질이다. 형태를 잡아 놓은 참치살은 먹고 끓이고 비비며 분해되어 밥과 국물 속으로 스미고 잘게 잘라진 참치살이 가득 들어있는 그 비벼진 밥도 결국 다 먹어 비워지는 것임을 말이다.
아 나는 먹고 남은 참치김치찌개에서 깨달았습니다. 색즉시공이고 공즉시색인 것을 부처가 없는 사바세계에도 불향이 가득한 것처럼 형태가 사라진 참치김치찌개에도 참치의 향이 가득합니다. 비워진 밥그릇에는 비움이 가득 차 있고 빈 위장은 이제 형상으로 가득합니다.
나는 이제 참치찌개의 아집과 번뇌에서 벗어난듯하다. 마음대로 끓여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