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의 나는 뭉클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가죽 공예를 공부하던 친구가 귀국길에 오른다고 했다.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나도 기분 전환 겸 유럽에 있는 도시 중 둘 다 가보지 않은 도시로 같이 여행을 가기로 했고 그곳이 바로 리스본이었다. 퇴근 후 바로 히드로에서 저녁 비행기를 타고 리스본으로 향했다. 거의 자정이 다 돼서야 호스텔에 도착했고 그런 나를 친구는 잠자리에 들지 않고 깨어있다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씻고 침대에 누웠는데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다음 날 기상 예보와는 다르게 날씨가 매우 화창했고 햇살도 따뜻했다. 리스본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멋진 곳이었다. 구 시가지를 구석구석 활보하다 낡은 문 하나가 너무 멋져서 그곳을 배경으로 서로 사진을 한참 찍어주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떤 노부부가 사진을 찍고 있는 우리를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 우리가 너무 열중해서 사진 찍고 있어서 신기한 모양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대충 정리하고 가려고 하는데 수수하게 차려입은 할머니가 서툰 영어로 말을 걸었다.
'혹시 한국에서 오셨나요?'
'네!'
'그렇군요! 왠지 그럴 것 같더라고요.'
노부부는 왜 한참이나 서서 우리를 기다렸는지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 노부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고 그 아들의 아내가 한국 분이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민경인가, 은영 인가하는 평범한 이름의 한국 며느리. 그리고는 할아버지는 자신의 지갑을 꺼내 아들네 부부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지금은 홍콩에 살고 있다는 아들과 며느리는 홍콩의 고층 빌딩 위에서 도시의 야경을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었다. 그렇게 그 자리에 서서 잠시 얘기를 나누다 그럼 좋은 여행되라는 인사와 함께 노부부는 가던 길을 재촉했다. 노부부는 떠났지만 두 사람의 미소는 따뜻한 햇살과 함께 남았다. 나는 가끔 그 날의 우연적 만남의 순간을 떠올린다. 물론 그 만남을 제외하더라도 리스본 여행은 완벽했다. Belem에서 먹은 따뜻한 에그타르트는 여태까지 먹어본 디저트 중에 손에 꼽을 만한 맛이었고 시간이 멈춘 듯한 올드 타운을 천천히 오르는 클래식한 디자인의 트램을 탄 것도 리스본 여행의 즐거움이었다. 그럼에도 리스본 여행에서 그 만남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그 순간에 마주한 뭉클함이 지금까지도 남아있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