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할 雅(아), 어질 賢(현)
아빠가 오랜 고민 끝에 지어준 내 이름,
‘우아할 雅(아), 어질 賢(현)’.
단정하고 지혜로운 사람, 흔들림 없이 단단한 마음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뜻.
이름은 곧 삶의 방향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보이는 모습에 신경을 많이 썼다.
사람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혹여 반응이 미미할 때면 더 빛나 보이기 위해 애썼다.
조금 더 괜찮은 사람, 흠잡을 곳 없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늘 불안했다.
혹시라도 내가 만든 이미지 뒤에 감춰진
나의 나약함과 초라함이 들킬까 봐.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적절한 태도를 유지하고,
인정받고 싶어 애썼다.
우아하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렇게 나 자신을 가꾸고, 다듬으며 살아왔지만,
아이를 낳는 순간
그 모든 노력이 단숨에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아이는 내가 조심스럽게 쌓아온 ‘이미지’를
단숨에 허물어버렸다.
수면 부족, 반복되는 육아의 리듬 속에서
나는 감정을 조절할 수도, 감추지도 못했다.
한 번도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내 속을,
민낯을, 바닥을 마주하게 되었다.
화가 치밀어 오르고,
아이보다 더 유치하게 감정을 쏟아내고,
"엄마가 왜 이렇게 화를 내지?"
스스로를 돌아보며 후회하는 순간들이 반복됐다.
그런데도 또 같은 상황이 오면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지키려 했던 것들은 결국
‘진짜 나’가 아니라,
그저 ‘보이고 싶었던 나’였다는 걸.
애써 쌓아 올린 것들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그동안 노력했던 시간들이
헛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졌다.
나는 처음부터 완벽한 엄마일 필요가 없었다.
이상적인 엄마가 되려 하기보다는,
나라는 사람이 가진 성향을
엄마라는 역할 속에서 잘 녹여내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동안 나는 나를
‘엄마’라는 이름에 맞추려 했지만,
이제는 ‘엄마’라는 역할을
‘나’에게 맞춰가 보기로 했다.
그러자 불안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더 이상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보다,
‘나답게 엄마가 되는 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내가 가진 기질, 내가 가진 감정,
나만의 방식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게 지금 나에게 맞는 육아라는 걸.
이제는 안다.
완벽한 엄마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아이도 자라며 배워가듯,
엄마도 함께 성장하는 존재라는 걸.
나는 가끔 실수할 것이다.
때로는 감정이 앞설 것이다.
여전히 서툴고 어설플 것이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엄마로서의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믿기로 했다.
엄마이기 전에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
엄마이면서도 나다움을 지키는 것.
그게 내가 찾은 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