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비 Oct 02. 2019

大林


    서로 밤을 꼬박 새우며 대화를 한 후 아침 첫차를 타고 만나서 간 대림은 이전에 여럿이서 저녁에 오던 대림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이전에는 대림은 한밤의 도시였다면 요즘은 새벽의 도시인 느낌이다. 새벽의 도시는 즉흥적이라고나 할까, 상당히 무계획적인 도시인 것이다.

 새벽에 먹었던 위타오와 도우장은 달콤하고 촉촉했다. 같이 나온 짜사이도 적당한 짭조름함이었다. 방금 다시 튀겨서 준 위타오를 설탕을 잔뜩 푼 도우장(콩국)에 찍어 먹으면서 손가락을 하나하나 쪽쪽 빨고, 너무 달고 심심해진다 치면 짜사이 하나를 집어 먹었다. 그 집에 있는 유일한 한국인이다. 언제 가든 유일한 한국인임에는 변함없지만, 새벽에는 음식을 파시는 아주머니들도 한국말 알아듣는 능력이 줄어드시는 것 같다. 언젠가 다시 온다면 여기서 피딴을 먹어보자 하지만 한 번도 먹어본 적은 없다. 일단 삭힌 오리알의 비주얼은 선뜻 손을 대기 어렵다. 이와는 다르게 차달걀은 고소하다. 본래 희기만 해야 할 흰자에 달걀 껍질 깨진 자국 그대로 차색이 입혀져서 공룡 알 같은 기분이 듣다.차달걀은 대림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낯선 한문으로 적혀 있는 시장 골목에는 없는 게 없어서, 아이들의 ‘시장에 가면’ 게임처럼 숨이 차기 직전까지 읊어 댈 수 있다. 중국 담배를 파는 상인이 어딨나 두리번대기도 하고, 사탕수수를 씹고 단물 빠진 껍질을 길거리에 뱉기도 하고, 피딴을 끓이는 냄비가 있는 곳에서 옥수수 맛이 나는 빵과 기름에 전 빵, 월병을 구매하곤 한다.


    덕수궁 미술관에서 대한제국의 예술을 관람 후 먹었던 월병도 대림에서 사 온 월병이었다. 전날에 도쿄 바나나와 월병얘기를 하고, 우스갯소리로 사 오겠다고 한 말을 정말로 지킨 것이다. 깜짝 선물은 저녁을 먹지 않아도 될 정도로 배가 불렀다. 같이 사온 리치 향 음료수가 히트였다. 대림에서 사 먹었던 월병 중에는 흑임자 월병도 있었는데, 나의 입맛에는 하도 맞지 않아서, 상대방이 한 봉지를 다 먹어버린 적도 있다. 그때엔 지하철이었는데, 야자캔과 왕자캔도 사고, 복숭아향 음료수를 검은 봉지에서 끝도 없이 꺼내서 마시니까 앞에 있던 외국인 관광객들이 깔깔대며 좋아한 일이 있었다. 뒤에 있던 남녀 커플은 우리에게 그렇게 맛있는 건 어디서 샀느냐고 중국어로 물어보고 우리는 중국어로 더듬더듬 대답하다가 서로 한국인인 걸 확인하고는 위치를 알려 주기도 했다. 그 일은 신촌이었지만, 어쩐지 늘 대림과 헷갈린다.  


    대림은 갈 때마다 재밌는 일이 일어난다.자주 가는 우육면을 파는 집에서는, 한 조선족 아저씨가 메뉴를 추천해 준 적도 있었다. 가지 튀김이 메뉴판에 없나 찾아보는 중 옆 테이블 아저씨가 장가지를 먹어 장가지! 하고 오지랖을 부린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는 것에 대해 거리낌 없는 편이기도 하고, 아저씨가 워낙 유쾌해서 장가지를 시키며 무엇과 곁들일지 고민했다. 우육면을 시키려는데 옆 테이블 아저씨가 또 장가지는 면보다는 밥이라며 쌀밥을 시키라고 자신있게 말했었다. 그는 자신은 집에서도 장가지를 만들어 먹는다고 했는데, 레시피를 물어보지 못한 것은 큰 실수다. 장가지는 말 그대로 밥과 아주 잘 어울리는 요리였기 때문이다. 당시 동행인과 나는 자주 그때의 장가지 예기를 하며, 오늘 날씨는 장가지 날씨다! 하곤 한다. 사실 대림에서 먹었단 모든 음식은 약간의 향수가 있다. 다시 먹으러 간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한데, 동방 만두왕에서 먹었던 사천 냉채와 위타오 도우장 세트 이렇게 세 개가 우리를 괴롭히는 음식들이다.

    사천 냉채는 어쩐지 이름이 만두왕인 식당에 들어가서 만두와 함께 시킨 메뉴였다. 우리는 중국어를  모르기 때문에 식당에 들어가서 여덟 번째 메뉴를 시키자 라고 해서 시킨 메뉴였다. 코끝과  볼이 아리도록 매웠던 냉채는   없는 고기 부위를 요리한 것이었는데 아마 머릿고기와 살코기였던  같다. 어마어마하게 매우면서도 동시에 담백한 맛이었는데, 어째 같이 시켰던 만두보다 기억에 남는 맛이다. 만두왕집에서 먹은 만두보다 맛있는 요리라고나 할까?


    대림에는 어떠한 계획을 세우고 간 적이 없는 거 같다. 항상 2호선을 타고 아 오늘은 뭐 하고 놀까? 하다가 대림이나 가볼까 하고 내려서 중국시장을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집에 들어가는 것이다. 실패 한 적은 없다. 그래서 짜릿한 것 같다. 나와 동행인의 선택이 언제나 성공할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