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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비 Oct 14. 2020

잠실

잠실은 내게 애증의 지역이다.
 지금은 애인이 사는 동네라 자주 놀러  같이 호수를 걷는다. 새벽부터 만나 샤오롱바오를 먹으며 에곤쉴레에 대해 이야기한 것도 잠실이었고, 결혼하자는 말을 처음 들었던 곳도 잠실이었다. 어찌 보면 나와 애인이 오랫동안 연애를 이어갈  있게 연결해주는 곳이다. 백화점에 들어가 스카프를 구경하고, 식당가를 누비며 스프와 밥과 빵을 주는 돈까스 집을 찾아내기도 하며 소소하게 평범한 커플처럼 돌아다닌다. 애인과 연애하기 훨씬 이전 롯데월드 아이스 링크장에서 초등학교 친구들과 피겨 스케이트를 배우며 다리에 파란 멍들이 들기 시작한 것도 잠실이다. 끝나고 식어빠진 롯데리아 감자튀김을 먹으며 스타킹을 벗고 피겨 스케이트화에 묻은 파란 마커 자국을 닦아내며 떠들었다. 넘어지는 것이 두렵지 않았던 작은 여자아이 었다. 옷을  갈아입으면 같이 롯데월드로 뛰어가 분수대에서 장난을 치고 퍼레이드를 구경했다. 엄마들이 아이스링크와 롯데월드 시즌권을 같이 끊어  탓에 피겨스케이트를 배우는 날은 롯데월드에 가는 날이었다.
중학교 3학년 졸업하기  같은 반 친구들과 떠났던 스키 여행 이전에 다 같이 놀았던 곳도 잠실이었다. 엄마 몰래 나왔던 친구가 후룸라이드를 기다리며 엄마에게 오는 전화로 올리는 폰을 붙잡고 안절부절못했던 것이 기억 안다. 빛나는 나라 롯데월드를 노래를 부르는 알바생들을 원망하며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을 찾아  친구들이 도와 찾아다녔다. 그때 당시 나를 아주 괴롭히던 남자아이는 같은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일 년 정도를  괴롭히다가 전학을 가버리며 연락이 끊겼다. 군대를 다녀오고 갑자기 밥을 사주겠다던 연락을 받은 곳도 잠실이었다. 자유이용권이 아닌 빅 5 티켓을  나에게 자신의 자유 이용권과 바꿔  남자애도  아이 었다.
 잠실이 내게 언제나 이렇게 따뜻하고 사랑으로  공간은 아니었다. 배고프지 않았던 어린 나에게 설렁탕을 사주던 엄마에게 음식을 남긴다며 식당에 나를 두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시늉을  곳도 잠실이었다. 영어학원에서 단어 삼백 개를 외우기 전까지 손바닥에 틀린 개수대로 매를 맞으며 버스 막차 시간까지 남았던 곳도 잠실이었다. 그때 내가 가지고 다니던 다이어리에 남겨진 글이 있는데  친한 척하냐는 질문이 남겨저 . 다이어리 방명록 부분에 같이 나아 단어 공부를 하던 다른 중학교 언니가 남긴 글이었다.  언니는 밤늦은 시간 엄마가 데려와서 단어를 모두 외우지 않은 채 집으로 갔다. 나는 몇 시간  남다가 똑같이 반도 외우지 못한 채 학원을 나왔다. 사실 한 시간이면 외울  있는 난이도였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학원 건물 지하에 있는 상가에서 파는 만두가 먹고 싶었고, 맞은 손바닥이 얼얼했다. 엄마는 나를 기다리다가 지쳐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 이십 분을 돌아다녔다.
대학교 4학년  1 하고 삼 개월 정도를 사귄 나보다 열한 살이 많던 애인과 헤어진 곳도 잠실이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잘 가라고 하는  사람 옆에서 나는 같이 잇던 카페를 둘러보며 지금의 애인과 같이 오면 좋아할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월급이 들어오면 아쿠아리움 시즌 이용권을 끊어서 매일매일 아쿠아리움에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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