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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비 Sep 15. 2020

눅눅한 이야기

 240만 원. 올해 4월부터 다닌 치과 치료에 청구된 비용이다. 다음 달 치료가 마지막이고, 20만 원만 내면 끝이다.
가장 최근에야 한 치료는 두 개의 왼쪽 작은 어금니(의사들은 15,14라고 부르더라)을 뜨고 세라믹으로 메우는 것이었다. 어째서인지 그 후로 혓바닥이 자꾸 베이는 느낌이다. 피가 철철 날정도는 아니지만 종이에 베이듯이 작지만 날카로운, 그런 상처를 남기는 정도이다. 오른쪽 작은 어금니에 세라믹을 메웠을 때에도 자꾸만 볼살을 씹었다. 익숙해지니 그런 일은 없어졌다.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고 치과에 상담하지 않고 있다.
 치과는 무서운 곳이다. 일단 난 기본적으로 입에 침이 많은 사람이다. 치위생사가 석션으로 입안 구석구석을 빨아들이다 못해 목구멍이 메말라가 기침이 나오더라도 다른 곳은 다시 침이 흘러넘쳐 꼴닥꼴닥하고 목구멍 뒤로 넘어가다 숨이 차게 된다. 그런 와중에 물이 튀기는 기구로 온 입안을 헤집고 다니며 아구창을 들볶으니 치료를 하다가 의사 얼굴에 물기침 셰례를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사주에 나무가 많은 사람이라 물이 많은 곳에 가까우면 좋다 그랬다. 치과는 물이 많은 곳이다. 결과적으로 사랑니가 있던 자리가 가벼워졌고 충치는 사라졌으니 좋은 일인가.
 ‘입안이 베인다’라고 하면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에서 목욕탕 장면이 떠오른다. 이 글을 읽는 이들 중 대다수가 그랬으리라 믿는다. 그래 그 장면에서도 물이 나온다. 향기로운 향료와 거품을 푼 따뜻한 목욕물 말이다. 성인이 되고 누군가 날 위해 따뜻한 목욕물과 달큰한 향을 풀어 준 적이 있었을까 생각해보았는데 없는 거 같다. 아니 없다고 단정 하겠다. 여기서 모텔의 불결한 욕조에 대충 받아 놓은 뜨거운 물은 제외이다. 따지자면 그건 날 위해 받은 물이 아니었으니까.
 자 이렇게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또 엄마 얘기가 나온다. 어렸을 때 살던 집의 욕조는 연분홍색이었다. 유년시절 기억 속 화장실은 붉은 타일과 연분홍 욕조, 그리고 흰색에 붉은 줄무늬가 있던 커튼. 노란 조명 속에서 언뜻 주홍색으로 보이기도 했던 그곳에서의 일을 얘기해보겠다.
 엄마는 나를 씻겨 주는 걸 좋아했다. 분홍 욕조안에 분홍색 둘리(둘리 여동생인지 여자 친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노란 화환을 쓰고 있는 분홍 공룡이었다)가 그러져 있는 거품 목욕제를 풀어 주었다. 조그만 내가 욕조안에서 떠내려가지 못하도록 욕조안에 빨간 고무다라이를 넣어 그 안에 나를 앉혀 놓고 씻겨 주곤 했다. 맞다 송사리들의 물을 갈아줄 때에 쓰던 그 빨간 고무대야다. 난 그 고무대야 속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곤 했다. 살이 빨갛게 익을 정도로 뜨거운 물을 좋아했던 나에게 엄마는 내가 고무대야인지 고무대야가 나인지 모르겠다 했었다. 가끔 들고 가던 플라스틱 장난감들이 오그라들고 뜨거운 물에 색깔이 변하는 장난감들이 다시는 본래 색으로 돌아오지 못할 정도로 뜨거운 물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엄마는  오그라든 장난감으로 물장구를 치던 나의 몸 구석구석을 목장갑을 낀 것처럼 빨갛게 익도록 씻겨 주었다. 목욕이 끝나고 나면 엄마는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나 딸기 요플레를 얼굴과 손에 발라주며 마사지를 해주었다. 엄마는 냉장고 속에 늘 유통기한이 지난 요플레와 우유를 버리지 않고 있었다. 친할머니가 알려 준 어린아이 피부관리 방법이었다. 조물조물 마사지를 해주고 나면 차가운 물로 이물질을 씻겨냈다. 수건으로 몸에 묻은 물을 훔치면 로션을 따로 바르지 않아도 부들부들한 피부가 되었던 것이 기억난다. 목욕을 다 하면 아빠가 드라이어와 수건으로 머리를 말려줬었다. 아무리 나에게 죽고 못살던 엄마였어도 내 엄청난 머리숱을 말리기엔 벅찼나 보다. 아빠는 나의 작은 머리통을 수건으로 벅벅 긁어가며 머리를 말렸다. 그러는 도중에 머리카락 끝에 맫혀 있던 물방울들이 거울에 튀기도 했다. 아빠는 그 물방울을 닦지 않고 내비둬서 나중에 엄마가 말라붙은 물방울 자국들을 보고 잔소리를 하곤 했다. 바삭바삭한 이부자리는 나에게 가장 최고의 쉼터였다. 파출부 아주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은 이불 빨래를 해 햇볕에 말려 줬었다. 그 덕에 일주일에 한 번은 바삭한 햇빛 냄새와 그 냄새와 어울리는 촉감의 부스럭 거리는 이불이 방금 목욕하고 온 날 맞이 해 줬었다.
 다시 현재로 돌아오자. 나의 머리숱은 여전히 많다. 오히려 전에 비해 많아졌다. 나는 머리를 말리고 자지 않는다. 배게에 수건을 깔고 그위에 젖은 이불 같은 머리를 그대로 올려놓고 잔다. 사실 말린다면 말릴 수 있지만 그럴 기운이 없다. 나는 드라이어를 들을 힘이 없다는 핑계로 지금 자지 않으면 내일 피곤하다는 핑계로 억지로 잠을 청한다. 덕분에 내 배게는 언제나 습기에 차 눅눅하다.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게 용하다. 두 번이나 작은 집으로 이사한 후에는 세탁기를 돌리지 않기 때문이다. 갈아입을 팬티가 없어 손빨래를 하고 양말을 뒤집어 신을 때쯤 세탁기를 돌린다. 이불은 빨 수가 없다. 집에 말릴 공간이 없다. 계절이 바뀔 때까지 한 이불을 쓰다가 세탁소에 맡기고 새 이불을 꺼내야 한다. 엄마도 세탁할 힘과 세탁소에 갈 함이 없었는지, 지난겨울에는 10월까지 여름 이불로 버텼다. 그 덕에 난 후리스와 패딩을 입고 자야 했다. 내가 스스로 세탁기를 돌릴 수도 없었다. 세탁기는 너무나 많은 수도세를 청구했기 때문에, 내가 건드릴 수 없게 된 무언가가 된 것이다.
하지만 난 또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치과에 240을 쓰는데 그깟 수도세 몇 푼에 내가 벌벌 떨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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