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언제까지 예술로 먹고살 수 있을까?"
“나, 버스 운전기사 할까?”
올해는 작년에 비해 지원사업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경기가 어려워 초청 공연도 없고, 기획 공연은 엄두도 못 내는, 경제적으로 유난히 어렵게 느껴지는 그런 해였다. 공연을 한 번도 하지 못한 채 상반기를 보냈고, 5월 중순이 지나서야 축제에 초청을 받아 드디어 첫 공연을 하게 되었다. 춘천인형극장 야외무대에서 공연 셋업을 하는 중에 남편은 담담하면서 진지하게,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대형 면허증을 소지했으니 버스 운전이 가능하고, 현재 전국적으로 버스 운전기사의 연령대가 높아지는 추세니 자신과 같은 40대 초반의 버스 운전기사는 인기가 있을 것이라고. 그러니까 요지는, “나는 돈을 벌어올 테니 예술은 너 혼자 하는 게 좋겠다.”라는 것이었다. 가장으로서 그동안 얼마나 속이 탔을지 남편의 마음을 가늠해 보면서도 그 순간에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졸음운전도 가끔 하는 사람이 버스 운전을 어떻게 해?”라며 농담으로 받아쳤다. 그러나 이 대화는 어쩐지 세포 하나하나에 강력하게 박혀버렸고, 그렇게 남편의 ‘버스 운전기사 발언’은 우리 부부에게 중요한 화두가 된다.
사실 그동안 우리에게는 스스로를 향한 질문이 없었다. 예술 전공자도 아니고, 결혼 전까지 다른 일을 해왔던 우리는 결혼 후 인형극단을 운영해 오신 시부모님의 영향으로 지난 13년간 정신없이 인형극을 했다. 닥치는 대로 공연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지냈던 이 시간에 단 한 번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적이 없었다. ‘우리는 왜 인형극을 하지?’ ‘나는 왜 예술을 하지?’ 늦었지만 이 질문을 던져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미술적 요소와 연극적 요소가 함께 결합되어 있는 인형극이라는 예술 세계. 나는 인형극을 무척이나 사랑하지만,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혼자서 인형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인형극은 남편과 함께하고 싶었다. 인형극 제작과 연출, 연기 모든 파트를 남편과 함께 해왔다. 특히 손재주가 뛰어난 남편은 인형과 무대 제작을 담당해주고 있다. 남편은 가장 든든하고 믿음직한 동료였다. 코로나 시기도 잘 버텼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을 반복적으로 맞닥뜨리는 것에 나보다 더 부담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극단의 상황을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작년까지 전국 순회공연을 했다. 올해 해당 지원사업이 없어져서 오히려 우리에게는 기회가 생겼다. 바로 지역에서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것이었다. 동네 아이들과 인형극단을 만들어 춘천인형극제 아마추어 경연대회에 나가기도 하고, 충북문화재단의 문화예술교육 사업인 ‘헬로우 아트랩’에 지원하기도 했다. 문화예술교육 사업이니 인형극 만드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리더 예술인 선생님들은 오히려 인형극이나 프로그램을 지우고, 먼저 ‘좋은 질문’을 던져보라고 했다.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헬로우 아트랩’의 취지라고 했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 말, “실패해도 괜찮다.” 라는 말은 낯설고 당황스러우면서도, 무척이나 매력적인 말이었다. 마침 우리에게는 하나의 질문이 던져진 때였다. 질문을 따라가 볼 수 있는 엄청난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우리, 언제까지 예술로 먹고살 수 있을까?”
우리는 먼저 부부가 전업으로 인형극단을 운영하는 선배님들을 찾아가기로 했다. 오랜 시간 부부가 함께 인형극을 해오시면서, 어려운 시기들을 어떻게 이겨내셨는지, 그저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선배님들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어도 우울하기만 하고
답도 없을 것 같으면 어떡할래?
그래, 그때는 빠르게 인형극을 접자!
운전 거리 총 2,324km.
춘천으로, 군포로, 수원으로, 부산으로, 고양으로, 서울로...
우리는 어떻게 끝날지 모를 여행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