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우주] 안 되는 것은 없다

인형극단 친구들 | 김성수 김정희

by 이슬기

언제 어디서든 만나면 다정하게 반겨 주시는 ‘인형극단 친구들’의 김성수 대표님. 인형극 축제에 한번이라도 참여해 본 극단은 알 것이다. 대표님은 당신의 카메라로 모든 공연 팀의 공연 사진을 찍어 보내주신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그저 애정으로 그렇게 하신다. 그래서 사진 한 장 한 장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없다. 작품을 만들어 처음 인형극 축제에 참여해, 그곳이 무척 낯설고 어색할 때에 보내주신 사진들은 우리에게 곁을 내어주는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정신이 없어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남기기가 어려울 때 보내 주시는 고퀄리티의 공연 사진은 두고두고 가슴 속에 남아 감사로 꽃핀다. 이토록 성실한 다정함은 누구도 이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경기도 군포시에 위치한 ‘인형극단 친구들’의 작업실을 찾아 갔다. 4층짜리 건물의 1층은 극단의 작업실이자 사무실이며, 4층은 극단의 생활공간이다. 1층 작업실은 목각 작업실, 스펀지 작업실, 녹음실, 인형 보관소, 사무실 등으로 구획되어 빈틈없이 가득차 있다. 목각 작업실에서는 아드님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바로 이곳에서 전국 곳곳을 누비며 수많은 아이들 배꼽을 빼놓는 인형그들이 탄생한다! 방송을 통해 ‘인형극단 친구들’의 이야기는 여러 번 접해 왔지만, 두 분의 이야기를 함께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수많은 인형들과 작업 재료들로 둘러싸인 작은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았다.


*일시 : 2025년 10월 14일 (화) 오후 5시

*장소 : 인형극단 친구들 작업실 (경기도 군포시)

*참여 : 김성수, 김정희, 김해일, 이슬기



고등학생 때 우연히 접한 인형극, 인형극으로 결혼까지


Q. 인형극을 시작하게 되신 계기와 두 분이 어떻게 만나셨는지 궁금해요.


김성수 고등학교 2학년 때 교회에서 인형극을 우연히 접하게 됐지. 종이죽으로 인형을 만들었던 것이 계기가 됐는데, 그것을 본 다른 교회 분들의 요청이 있어서, 큰 배낭에 인형이랑 나무로 만든 틀을 메고 고속버스 타고 전국을 다니면서 교회 순회 공연을 다녔던 게 나한테는 시작이었어요. 신학 대학을 갔는데, 그때는 보육원이나 교회학교 행사에 가서 봉사로 공연을 했죠. 군대를 가서는 부대 안에서도 인형을 만들어서 정훈교육을 인형극으로 했었지. 대대군종이었는데 목사님이 없는 군종이라 외부에 있는 목사님이 주일에 교회 설교를 하시고, 나는 오후에 그 교회에 가서 전도사 역할을 하는 거야. 그곳에서 아이들에게 인형극을 보여줬지. 제대 후 4학년 때는 공연이 미술학원 쪽으로 연결이 되면서, 거기 가서 공연하는 것으로 알바를 하고 학비도 댔지. 성경학교 시즌에는 일주일 새에 사십 군데를 다니면서 공연을 하고, 한 달간 성경학교 시즌 공연을 다녔어. 그때는 어딜 가도 아이들이 많았으니까, 말하자면 그때가 성수기야.(웃음)

그렇게 인형극을 했지만, 그렇다고 인형극으로 내가 먹고살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 약간의 봉사와 취미 개념이었지. 물론 그게 벌이로서는 더 컸지, 교회 전도사 벌이보다는. 사실 대학원 가서도 거의 공연으로 먹고 살았던 거야. 그때는 ‘오병이어 인형극단’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계속 다녔어.

그러다 2000년도에 큰 공연이 들어왔어. 63빌딩에서 방학 동안 하루에 다섯 번씩 장기 공연을 하는 건데, 간단한 무대를 만들고 거기서 공연을 했던 것이 큰 기회가 됐던 거지. 목소리나 인형 연기는 내가 다 했지만, 보조할 사람을 찾았지. 그래서 후배나 알바를 데리고 했는데, 마침 집사람이 거기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쉰다는 거야. 그때는 모르는 사이었어. 그러면 알바를 한번 안 해보겠느냐 물어보니까 하겠다는 거야. 인형 들고 움직이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고, 같이 공연하고 나서 점심 먹고, 점심 먹고 나서 한강 고수부지 산책 한번 하고, 끝나면 집에 데려다주는 거지. 그러다 보니 정이 들어버렸네.(웃음)


김정희 그때는 원피스만 입고 다녔었거든요? 그런데 인형극을 하려면 바닥에 앉아서 해야 하니까 원피스를 못 입었죠. 처음 인형극 무대 섰을 때부터 저는 보조였어요. 내가 하는 일은 다음 인형을 손에 끼워주고 인형을 정리해주는 것이어서 긴장할 만한 일은 아니었죠. 그렇게 인형극을 하게 된 거예요.


김성수 인형극을 계속 하긴 했지만 그래도 본업은 목회를 할 거라고 늘 생각했었지. 그러다가 큰아이가 돌 때, 이제 아이도 생기고 가정이 있으니 교회 사역을 내려놓고 인형극만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어. 벌이도 괜찮았고 그동안 해 온 거 그대로 하면 되는 거니까. 극단 시스템도 모르고 고등학교 때부터 체득해 온 공연 방법밖에는 없었거든. 반지하에서 사업자 등록증을 내고 거기서 인형 만들면서 시작했어. 그때 내가 인형극단 중에서는 처음으로 홈페이지를 만들었거든. 그 덕을 굉장히 많이 봤어. 방송작가들이 검색하면 나오는 홈페이지를 찾아서 연락이 오고, 방송에 엄청 나갔어. 한 달에 한 번은 방송에 계속 나갔고 그게 나한테는 홍보와 공신력을 갖게 했어. 배운 것도 없고 나 혼자 하는 거라, 공연의 연출이나 질로 봐서는 형편없어. 어떻게 보면 허상이 쌓인 거야. 방송에서는 50분짜리 공연을 전부 다 보여주는 게 아니잖아. 그렇게 특별한 홍보 없이도 방송하고 인터넷을 통해서 극단이 큰 거지.



Q. 혼자서 인형극에 대한 모든 것을 습득하신 거네요. 어려운 일은 없으셨나요?


김성수 나는 어느 극단에 속했던 적도 없고, 연극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지. 그게 나한테는 득이기도 하고 독이기도 해. 내 인생의 모토가 “안 되는 건 없다.”야. 지금 당장 요청하는 공연이 없어도, 무조건 있다고 해. 그때부터 만들면 되잖아. 공연 요청이 들어와서 단순하게 인형을 만들어서 공연한 적도 있어. 그 공연을 하고 나서는 자괴감이 들었어. 얼마나 형편없는 공연이었는지 내가 아니까. 그런데, 그러면 어때? 이 자괴감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해. 완벽한 작품을 만들려고 하면 5년이 넘어도 끝내질 못해. 물론 그렇게 하면 명품이 나오고, 그만큼 예우를 받지. 그런데 난 그런 게 없었어. 왜냐하면 어느 극단에 속하거나 연극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 그랬다면 그것이 내 기준이 되었을 거야. 오히려 나는 내가 하는 것이 내 기준이 됐어. 그래도 되는 거야.

나는 인형극이 예술이라는 생각도 없었어. 그러다가 춘천인형극제에 가서 알게 된 거지. 혼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춘천인형극제에 가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니까 모두에게 예술이라는 기준치가 있는 거야. 그래서 처음에 가서는 욕도 엄청 많이 먹었지. 공연은 별것도 아닌데, 엄청 많이 했었거든. 방송에도 많이 나오고. 그래서 내 별명이 '갈퀴'였어. 공연 다 쓸어 간다고. 그래서 욕을 많이 먹었지. 그래도 좋더라고. 혼자 공연을 하니까 약간의 외로움이 있었거든. 그래도 거기 가면 나처럼 인형극 하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좋으니까 욕을 먹든 말든 속은 좀 상하지만 그래도 계속 갔어. 그때 좀 쭈뼛대고 있으니까 경래('개구쟁이 인형극단' 대표) 형이 챙겨줬지. 주호('파브르 인형극단' 대표) 형에게도 고마움이 있어. 문혜정 대표 같은 정선인형극제의 정이 많은 분들이 나를 많이 챙겨줬어. 나는 완전히 모난 돌이었거든.


Q. 혼자 인형극을 제작하는 어려움들을 잘 아시니까 인형극 제작이나 워크숍 등에 힘쓰시는 것 같아요.


김성수 그때는 인터넷으로 사진을 하나 받으려면 30분도 넘게 걸렸거든. 그래서 줄 인형 사진 하나 받은 거야. 그땐 책도 구하기 어려워서, 그 자료 하나 받아가지고 밤새서 연구하는 거지. 어느 순간에는 나무로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오리를 하나 만들고, 예수님 머리 하나 깎은 게 시작이었지. 언제는 다른 극단에서 공연을 해달라고 해서 갔거든. 대표가 잠깐 밖에 나갔을 때 그 극단 인형을 살펴본 거야. 이렇게 만드는 거네, 이러면서 공부를 한 거야. 또 다른 인형 하나를 주문해서 그걸 다 해체하고 분해를 해서 연구했지. 내가 인형극을 하면서 목마름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인형극을 배우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아. 손인형 만드는 법을 알고, 줄인형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한 달에 한 번씩 워크숍을 꾸준히 했지. 그때는 한 번에 스무 명씩 왔어. 가르치면서 나한테도 다시 정리가 되잖아. 그게 내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됐어. 여러 종류의 인형을 다룬 것도 도움이 됐지. 후에 대학 강단에 섰을 때도 이때 경험이 많이 도움이 됐어. 요즘에는 아동보육학과는 아예 폐과가 되지. 그래서 대학 수업은 안 나가고 있어.



Q. 극단 운영이나 제작은 어떻게 하시나요? 제작에 아버님도 같이 참여하신다고 들었어요.


김성수 아버님도 원래 취미로 나무배를 만드셨어. 목판 조각도 하시고. 그래서 조각도가 기본적으로 늘 있었지. 내가 목각 작업을 하면서 아버지한테 손, 발 깎는 것을 요청을 드렸어. 나는 캐릭터 머리만 깎고 나머지는 아버지가 하시도록 하고 있어. 아버지가 연세도 있으시지만, 급여 드리면서 소일 삼아 오실 수 있도록 하고 있지. 집에만 계신 것보다 낫고 우리한테도 도움이 되니까. 집사람은 인형의 헤어를 담당하고 있어. 오랫동안 함께 일하고 있는 실장님이 무대를 도맡아서 제작해 주고 있고. 그래서 우리는 늘 직원들이 있었어. 미싱하는 아주머니들도 있었어. 사실상 공장 개념이지.

우리 극단은 자체적으로 인형극을 제작해서 납품하는 부분이 있어. 인형극을 시작하고 싶은데 못하는 팀들의 마음을 아니까 필요하다고 하면 대본부터 인형 제작, 무대 제작, 연기 교육까지 전체적인 작업을 해. 작업실 안에 작은 녹음실도 만들어서 여기에서 녹음까지 하지. ‘굿 네이버스’ 같은 경우에는 우리가 만든 150개 세트들이 국내외에 나가있어. 처음에는 이런 경우가 많아지니까 다른 인형극단에서 좋아하진 않았지. 우리가 무상 공연 팀을 너무 많이 만들어 준다는 거야. 이렇게 만든 인형극들로 유치원에 가서 무상 공연을 하거든. 유치원에서는 어떤 공연이든 상관이 없는 거야. 전국의 복지관이나 시설, 재난소방청 이런 데서 연락이 오는 건데, 우리는 좋은 취지라 생각하고 제작했어. 오랜 시간에 걸쳐서 업그레이드 한 무대인데 이제는 우리 무대를 그대로 만들어서 파는 팀도 몇 팀 생겼더라고.

사실 지원사업이라는 시스템을 몰랐어. 유치원, 초등학교 같은 곳을 찾아가서 하는 공연은 지원사업 시스템이 아니었거든. 작품을 만들 때도 소극장용으로 만들지 않아. 지원금을 받을 방향이 다르니까 작품 만들 때도 극장용이 아니라 2인극에 맞춰서 만들어. 극단 운영에 여러 사람이 함께하지만 중심적으로는 부부가 같이하는 거지. 대극장 공연도 두 명이 할 수 있게 해. 극장에 가서도 우리가 가져간 조명을 써. 극장 조명은 인형극에는 잘 맞지 않아서, 우리가 자체적으로 제작한 조명을 쓰면 되거든. 그래서 인형극 무대 안에서 음향이며 조명, 모든 공연을 다 할 수 있게 만들었지. 지금도 어디 극장을 들어가도 오퍼레이터를 전혀 안 써. 공연할 사람 찾기도 힘들고, 바쁠 때는 두 팀을 나눠서 공연하기도 했으니까. 코로나 전에는 1년에 700회 공연을 하기도 했어. 이제는 테이블 일인극에 더 집중하려고 해. 나는 그런 스타일이 좀 더 재미가 있더라고.


위기에 강한 극단


Q. '인형극단 친구들'은 위기에 강한 극단인 것 같아요. 코로나 때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공연을 이어 가셨잖아요.


김성수 코로나 때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공연을 계속 했지. 우리는 그러지 않을 수 없었어. 요청 들어오는 대로 공연을 계속해서 하고, 영리를 위한 곳에서는 마스크를 써서라도 공연을 이어갔고, 유치원이나 학교 같은 곳은 영상으로 공연을 했지. 그때 줌 공연 같은 노하우는 다른 단체나 극단들에게 컨설팅을 해줬어. 나는 코로나 시대에 어떻게든 계속 만들고 거기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하느라 정말 노력을 많이 했거든. 그런데 코로나가 끝났어. 그 장비나 시스템을 어느 정도라도 계속 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역으로 ‘코로나 블루’가 왔어. 코로나 때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사람들이 코로나가 끝나서 준비했던 것들이 다 사라지니까 마음에 공허감을 느끼게 된다는 거야. 그 시스템을 1년에 몇 번 하는데, 도서지역 학교 아이들 대상으로 공연을 해. 섬 지역에 있는 분교들 열 군데를 모아서 줌으로 공연하는 걸 몇 번 하긴 해.

이제 AI 시대에 대한 고민도 있지. AI 시대에 예술가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우리는 지금 3D 프린터로 많이 만들고 있거든. 그런데 이제는 누구나 알아서 다 만들 수 있게 됐어. 인형을 누구나 만드는 시대가 된 거야. 속도도 엄청 빨라졌어. 디테일하고 구체적인 움직임까지 이제는 3D 프린터가 다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잖아. 그럼 인형 제작가는 먹고살 수가 없게 됐고, 공연 예술가는 어떤가? 모든 시스템을 동원해서 사람보다 더 뛰어나게 공연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 어느 정도 예술성 있게 영혼을 담아서, 사람의 감정을 건드려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인형을 만드는 것, 그게 중요한 것 같아.

아이들이 없으니 위기라고도 하지. 아이들이 없으면 노인을 대상으로 하라고 하지만, 사실 그건 우리로서는 맞지 않아. 그분들은 무료로 공연을 보는 거거든. 지원금 받는 사람들은 가능하지. 공연처가 없어진다는 위기의식이 있지만, 아이들이 아예 없어지진 않을 거니까. 거기에 희망을 두는 거지. 부정적으로만 볼 수도 없는 거고, 걱정을 지금부터 해야 하는 건 아니지, 그래도 이제 방향성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해. 극단의 미래를 생각하면, 글쎄, 아들과 딸이 있는데, 아이들에게 인형극을 강요하진 않아. 어렸을 때야 인형극 한다고, 장래희망에 인형술사라고 적기도 했었지만, 둘 다 크면서 인형극은 안 한다고 했어. 큰 아들은 극작에 재능이 있어. 제작이나 공연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고 하기에 예술경영 쪽으로 공부해 보라고 권하고 있어. 둘째는 뮤지컬 전공 3학년인데, 오히려 전공 공부를 하면서 현실을 보게 된 것 같아. 뮤지컬에서는 정말 독보적으로 뛰어난 몇 명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둘째는 손재주가 꽤 있어서 최근에는 자기 혼자서 인형을 막 만들어서 보여주더라고. 타고난 게 있는 거야. 본인이 좋아서 취미도 맞고 재능도 맞아서 인형극에 뛰어들면 제일 좋지만, 억지로 시킬 마음은 없어. 그렇지만 특별히 다른 것에 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면, 이쪽으로 하면 좋겠다고 제안을 하는 그런 시기야.


서로의 영역을 인정해 주는 것


Q. 부부가 함께 인형극단을 운영하시는 것에 장점과 단점이 있다면요?


김성수 너무 가까이 있는 것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지. 늘 문제가 사람이잖아. 조금 같이 지내다 보면 나가고. 길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되니까. 가족이 같이하면 이런 점에서는 조금 편하지. 뭐든 가족이 같이 하는 게 낫다고 하지만,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조율이 있어서, 서로 풀어주는 것이 필요해. 이게 그대로 단점이 되잖아. 언제나 붙어 있어야 하니까, 어떤 일이든 다 같이 해야 하니까 부딪히는 부분이 많아서, 그런 부분이 부부 극단들의 어려움이겠지. 보니까, 그게 한 20년까지는 괜찮아. 25년 정도 됐을 때는 약간 변화를 주는 게 필요하지. 그래서 아내가 9월부터 유급 휴가 중이야. 마음대로 쉴 수 있게, 출근도 하지 않고, 본인 취미생활 하면서 편하게 지내고 있지.


김정희 정말 매일 사선을 넘는 것 같았어요. 전쟁을 치르는 것 같았어. 매일 지방에 가고, 운전 중에 졸음운전도 하고. 예전에는 차를 1년에 20만 키로 탔어요. 차가 퍼지니까 3년을 못 탔어요. 그래도 남편의 고충을 아니까 언제든지 부르면 나가죠. 새벽에 나오라면 나오고 밤늦게 작업하자고 하면 하고, 편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게 든든하게 좋은 거죠. 지나고 나니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자기 영역이 있잖아요. 모든 책임은 대표가 지는 건데, 내가 대표 노릇을 하려고 들었구나. 그 고유한 영역은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는데. 대표가 말을 하면 듣는 척이라도 했어야 했어. 소를 지붕 위에 올리라 하면, 소를 끌고 지붕 밑까지는 데려가야 해. 대표가 말하는 대로 해도 잘 굴러갔을 것 같아. 그런데 그때는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고, 내 생각대로 안하면 클레임 들어올 것 같고, 공연도 망칠 것 같고 하는 내 불안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 하라는 대로만 해도 서로 사이가 괴롭지 않고 재밌게 지나왔을 것 같은데...

공연비가 들어오면 남편이 다 관리하고 저는 타다 쓰고, 아이들이 어릴 때는 작업하느라 집에 안 들어오니까 그게 불만이 많았죠. 작품 퀄리티를 올리고 싶은 욕심 때문에도 갈등이 생기고. 사실 상대방 생각대로 해도 아무 문제도 없었을 텐데 내 불안으로 인해 그랬던 거야. 부부 사이가 좋아야 일도 들어오고 돈도 붙고 애들도 잘 크고 그런 건데. 제일 좋은 것은 부부사이가 좋아야 해. 상대방 의견대로 해도 별 문제가 없다, 꼭 내 의견대로 안 해도 지구는 안 망한다. 내가 남편을 잡으면 더 잘할 것 같지만, 내 불안이 상대에게 전달되고, 그래서 뭘 하려고 하는 걸 도와주는 게 중요하지 위에서 쪼아대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내가 그러지 못해서 힘들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인형극단 친구들


1997년에 창단했다.

1년 500회 이상 다양한 공연장에서 관객들과 만나는

어린이 전문 인형극단이다.

목각 줄인형을 전문으로 막대 인형, 테이블 인형,

그림자 인형, 탈 인형 등 다양한 종류의 인형극 공연을 한다.

조립형 인형극 공연 무대를 전문으로 주문 제작, 납품하기도 하며,

여러 대학에서 인형극 특강을 진행하며 인형극단 창단을 위한 컨설팅을 하는 등

인형극 전문가 양성 교육에 힘쓰고 있다.

홈페이지 puppet.kr


[대표작]

퍼니 프렌즈

이순신 장군과 돌격하라 거북선

우리의 자랑 한글과 세종대왕

나무인형 피노키오의 모험

황소가 된 돌쇠

빨간모자

아기돼지 삼형제

잠자는 숲속의 공주

팥죽할멈과 호랑이

김성수 복화술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