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우주] 매일 함께하고 싶어서

극단 애기똥풀 | 장대림 장성환

by 이슬기

몇 해 전, 춘천인형극제에서 ‘극단 애기똥풀’의 <꼬부랑 할머니가>를 봤다.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 꼬부랑 넘어가고 있네.’ 전래동요를 베이스로 귀여운 인형들이 등장해 발랄하게 풀어냈지만, 극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힘겹게 버티며 살아낸 여성의 이야기였다. 어린이 관객들이 어렵지 않게, 재미나게 관람한 것은 물론, 성인 관객들도 깊은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도 인형극제나 워크숍에서 ‘극단 애기똥풀’을 마주칠 기회가 종종 있었다. 장대림 대표님이 충주에 오신 김에 우리 작업실 앞까지 오신 적도 있었는데, 정작 우리가 자리를 비운 바람에 만나지 못한 적도 있다. 이어질 듯 이어지지 못했던 인연의 고리를 이번 기회를 통해 엮어보고 싶었다.


‘극단 애기똥풀’은 경기도 수원시에서 인형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길 건너편으로 수원화성의 성곽이 보이는 건물 3층에 위치한 애기똥풀 인형극장. 두 분의 손길이 거치지 않은 곳이 없는 아기자기한 공간이 도착한 손님들을 반긴다. 인형극장은 한쪽은 무대로 쓸 수 있게, 다른 한쪽은 사무실로 쓸 수 있게 암막 커튼으로 분리되어 있다. 무대에는 그동안 작업해 오신 대형 인형 여러 개가 자리 잡고 있는데, 공연할 때는 이 거대한 인형들을 사무실 공간으로 옮겨 놓는다고 한다. ‘극단 애기똥풀’의 로고가 새겨진 단정한 머그컵에 시원한 물 한 잔을 받았다. 이렇게 만난 것이 처음인데도, 비슷한 성향을 가진 오랜 친구들이 모인 동창 모임처럼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일시: 2025년 10월 16일 (목) 오후 1시

*장소: 애기똥풀 인형극장 (경기도 수원시)

*참여: 장대림, 장성환, 김해일, 이슬기



매일 함께하고 싶어서 하게 된 인형극단


Q. 두 분이 처음 만나게 된 이야기와 인형극을 시작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장대림 연극 극단에서 15년 여를 일하다가,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결혼 적령기는 지나는데, 이러다가는 결혼을 못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극단을 나왔어요. 극단에 있을 때 무대 의상을 제작하기도 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업했던 생각에 일을 좀 더 체계적으로 배워보자, 하고 패션스쿨에 등록했어요. 3월 입학을 기다리면서 겨울을 지내는데 마침 구정 연휴 알바가 떠서 책값이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알바를 지원했거든요. 거기서 남편을 만났어요. 남편은 트럭을 운전하는 기사로, 나는 배달 알바로 팀이 되어 만나게 된 거죠. 원래는 열흘 알바 중에 기사와 배달 알바가 랜덤으로 매칭이 되는 건데, 시간만 잘 맞춰가면 같은 사람이랑 일할 수 있어서 늦지 않으려고 새벽에 택시를 타고 가기도 했었어요. 그렇게 열흘간 함께 일하면서 정이 들었죠. 사람이 참 좋더라구요. 일이 다 끝났는데 그냥 헤어지기가 많이 아쉬웠어요. 그래서 농담 삼아 “우리 의형제 맺을래요?” 했더니 “남자랑 여자랑 어떻게 형제가 됩니까?” 하더라구요. 그 대답에 눈치를 챘어요. 당신도 내가 괜찮구나 하고. 그래서 작업에 들어갔죠. 시를 좋아한다길래 시집 한 권을 선물로 보내면서 만남을 이어갔고, 소심한 사람을 마냥 기다릴 수 없어 내가 먼저 사귀자 했고, 역시나 내가 먼저 결혼하자 해서 결국 결혼도 했답니다.

결혼하고 한 6개월, 축의금 받은 걸로 둘이 팽팽 놀다가 같이할 수 있는 일을 찾다보니 아파트 알뜰장에서 꽈배기를 팔면 좋겠다 싶더라구요. 일주일 동안 열심히 연습해서 꽈배기 장사를 한 3, 4개월 했어요. 그런데 일이 너무 고된 게, 아침에 장사할 것 다 펼쳤다가, 저녁에 다시 철수하고 설거지하고, 그러다 새벽에 잠드는데 몇 시간 못 자고 다시 일어나서 반죽 만들고, 아파트 찾아가서 펼치고 장사하고 다시 철수하고... 차라리 가게를 차리자고 했죠. 가게 자리 계약하고, 청소도 하고 열심히 오픈 준비를 하는데,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거예요. 그래서 그것도 접고, 결국 남편은 취직해서 일을 하고, 그러다 아이가 태어났어요. 아이가 세 살쯤 됐을 때 일을 찾고 있는데, 후배가 인형극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귀가 번쩍 뜨이더라구요. 인형극을 하면 내가 하던 연극 경력도 살리고, 아이도 키울 수 있겠다 싶더라구요. 남편이 타고난 손재주도 있어서 석 달 동안 후배가 있던 서울의 극단으로 출퇴근하면서 인형 제작을 배웠어요. 감사하게도 그 극단 대표님이 받아주셔서 기회가 됐죠. 그리고 공연 제작의 프로세스는 내가 알고 있으니까 곧 극단 창단을 했어요. 또 감사하게도 기존에 내가 있던 극단의 대표님께서 허락해주신 덕분에 극단의 뮤지컬 작품을 인형극으로 각색해 큰 어려움 없이 <황소탈>이라는 첫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됐어요. 마치 모두가 우리를 응원하는 듯한 기분에 패기만만하게 공을 들이며 열심히 만들었죠. 근데 첫 공연에 바리바리 싸 들고 가서 벌벌 떨었어요. 과연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장성환 <황소탈> 공연의 장면 중에 일곱 살 소년이 “엄마, 엄마” 하면서 우는 장면이 있어요. 이 장면에서 객석 아이들 몇몇이 펑펑 울어요. 그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혹시 엄마 없는 아이들이 있는 건 아닐까?’ 그런 마음에 무대 안에서 같이 울면서 공연했었어요. 그렇게 그 공연을 애틋하게 했어요. 처음 시작할 때는 전국에 있는 이마트 지점들을 하루에 세 군데씩 묶어서 공연을 다니기도 했는데, 가봤자 하루에 정말 적은 공연료를 받았지만 신나게 갔죠. 짐도 많아서 하루에 풀었다가 쌌다가를 세 번 하는데도, 즐겁게 했던 거 같아요, 비록 몸은 녹초가 되어도 너무 행복했어요. 우리 공연을 불러주는 것 자체가, 우리를 인정해 준다는 것 자체가 감사했으니까.


Q. 2011년 창단하시고 3년 지난 2014년에 인형극장을 만드셨죠. 어떻게 인형극장을 만들게 되셨는지, 또 극장 운영은 어떤지 궁금해요.


장대림 창단하고 3년이 지났을 때 위기가 오더라고요. 매년 작품을 만들었지만 어느 순간 통장이 바닥났고, 신작은 만들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떠오르지는 않고.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만 드는 거예요. 공연 요청 오는 데도 없고. 남편은 취직할까 말까 그랬고.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극장’이라는 생각이 난 거예요. 극장이 있으면 동네 사람들에게도 공연을 보여주고, 인형극도 같이 만들고, 지역에 우리 존재를 알리고, 그렇게 지역 극단이 되고... 그래서 남편이 일어나자마자 붙잡고 내가 그린 그림을 풀어냈죠. 남편은 원체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라 여러 번 더 생각해 봐야 하는 사람인데, 그날은 웬일인지 내 이야기를 듣고 바로 공간 보러 나가자는 거예요. 아마 본인도 돌파구가 필요했던 때라고 생각했나 봐요. 그길로 바로 화성행궁이 있는 행궁동에 갔는데, 동네가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역사 문화가 담긴 시골 마을 같은 느낌이 너무 좋았거든요. 관광사업이 본격화되기 전이어서 지금과는 달리 마을이 참 고즈넉했어요. 게다가 처음 찾아간 공간이 또 너무 마음에 드는 거예요. 물론 좀 좁기는 했지만, 그래도 우리 공연 하기에는 나쁘지 않았어요. 다행히 세가 비싸지도 않았고, 건물주도 젊은 사람들이 우리 마을에 필요하다면서 무척 호의적이었거든요.


장성환 한 달을 둘이서 직접 다 공사하고, 오픈 후에는 어떻게든 극장을 알려야 하니까 상설 공연을 하기로 했죠. 그때는 골목마다 포스터를 붙이고 다녔어요. 2년 정도 그렇게 했는데 과연 여기를 몇 명이나 알까? 우리의 체감은 그랬어요. 공연을 하면 관객이 늘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으니까. 매번 관객이 올까 안 올까 조마조마하게 기다려야 하니까. 그때 생각하면 난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려요.


장대림 도저히 더 이상 극장 공연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외부 초청 공연을 다시 다니기 시작했고, 그렇게 벌어 극장 임대료를 냈어요. 그래도 공간을 없애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장성환 코로나 시기, 이곳으로 이전해 오면서도 극장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실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냥 극단 사무실만 할까도 생각했는데, 그래도 극장은 가지고 있어야겠다 싶더라구요. 관객이 많지는 않지만, 언젠가 우리를 찾아오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 열린 공간이 없으면 찾아올 데가 없잖아요. 이 공간이 극장으로 있어야 극단도 존재감이 생기니까. 어차피 공간 사용에는 돈이 들어가는데, 기왕이면 더 활용도 있게 쓰면 좋으니까 작업실이면서 극장인 공간을 유지하기로 한 거죠.


장대림 사실 번듯하지도 않은 공간에 극장 간판을 달게 된 동기는 어느 창고 공연을 보고 나서예요. 어느 극단에서 해외 팀 공연을 창고에서 하는데, 관객이 많지는 않았지만, 관객들의 반응이 너무 좋더라구요. 공간에 대해 불평 어린 느낌이 그 관객들에게서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요. 공간은 큰 문제가 아니더라구요. 그때 깨닫게 된 거죠. 공연팀이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어디든 공연장이 될 수도 있구나. 그래서 우리에게도 극장 간판이 생기게 됐답니다.



Q. 장대림 대표님은 극단에서도 제작을 하셨고, 패션스쿨에서 공부도 하셨으니 제작을 잘하실 것 같아요. 장성환 선생님도 손재주가 좋으신 것 같아요. 극단 운영할 때는 분업을 어떻게 하시나요?


장대림 맞아요, 남편은 손재주가 정말 좋아요. 나에게는 마르지 않는 옹달샘이죠.(웃음) 기획이나 대본 작업, 연출, 마케팅은 제가, 인형과 무대 제작, 운송, 조명, 음향은 남편이 다 맡아서 하고 있어요.


장성환 원활한 극단 운영을 위해 초창기부터 두 사람이 진행하는 공연을 만들었어요. 나중에는 여러 배우들이 참여하는 공연도 하고, 대형 인형으로 하는 거리 퍼레이드도 하고.



지역에서 살아남기


Q. 처음 극장 내실 때 꿈꾸셨던 것처럼, 지역의 대표 인형극단이 되셨잖아요.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계속 모색하셨던 것 같아요.


장대림 극장 개관하고 다음 해 초에 교육청에서 찾아왔어요. 수원에는 정조의 효 가치를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는데, 관련한 인형극을 하나 만들어서 초등학교 순회공연을 하면 좋겠다는 거예요. 우리도 수원화성이 좋아서 온 데다 언젠가는 이런 공연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기에 너무 반가웠죠. 그런데 교육청 예산이 너무 적어서 제작은커녕 공연비도 안 되는 금액인 거예요. 기획은 너무 괜찮아서 하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지만 가난한 극단 형편에 차마 수락하기 어려운 사업이었죠. 그런데 마침 수원문화재단에서 공연창작지원 공모가 뜬 거예요. 다행히 그 공모에 선정되어 공연 제작이 가능하게 되었어요. 덕분에 <아들, 정조>라는 공연을 만들고, 코로나 때까지 6년간 매해 학교 순회공연을 했어요. 그리고 이후로도 우리 지역의 이야기를 공연으로 하고 싶어 <기생 김향화>, <어느 여인>, <나혜석을 읽다> 같은 작품들을 만들게 됐구요. 지역의 문화를 흡수해야 지역 극단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지역의 이야기가 귀하다 느껴져요.


장성환 지금은 힘들고 돈이 안 되는 것처럼 보여도 교육사업은 마중물처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는 엄청난 가능성이 있거든요. 아이들의 강렬한 경험이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거니까요. 공연예술을 사랑하게 될 수도 있구요. 교육이 돈도 안 되는 것 같고, 지금은 미미하기만 한 것도 같지만, 거기에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게 숨겨져 있는 거죠.


장대림 사실 대형 인형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는데, 재작년 봄에 문화재단에서 지역 예술인들이 이끌어가는 축제를 만들어보면 좋겠다면서 제안을 해 왔어요. 여태는 외지의 이름난 단체들 부르는 게 당연했던 축제 기획을 이제 바꿔보고 싶다는 거예요. 함께 우리 지역을 우리 지역답게 만들어 가 보자고. 취지가 너무 감동적이잖아요. 아마 우리 극단 아니라 어느 극단이라도 지역 극단으로 인정하며 함께 하자는데 거절할 극단 없을 거예요. 하지만 축제는 거리 퍼레이드로 구성되고, 우린 대형 인형을 제작해 본 경험이 없었어요. 그럼에도 응원한다는 말에 힘입어 4개월을 꼬박 정말 열심히 연구하면서 만들었어요. 그간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몰라요. 실패하고 다시 만들고, 실패하고 다시 만들고... 우리가 정말 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 퍼레이드를 수행할 수 있을까? 호응은 있을까? 두려움 가득한 작업을 이어가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작업이 왜 재밌지? 결국 인형들이 완성되더라구요. 그런데 퍼레이드 당일의 느낌도 너무 신선했어요. 인형의 움직임을 위해 후배 배우들과 함께 했는데, 힘든 와중에도 시민들과의 교류 속에서 나만큼이나 후배들도 큰 성취감을 갖는 것 같더라구요. 그런 모습도 제게는 감동으로 다가왔어요. 대형인형의 매력을 완전 알아버렸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대형 인형을 계속해 보려고 해요.



Q. 인형극을 ‘어린이를 위한 공연’으로만 생각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꼬부랑 할머니가>는 성인에게도 감동을 주는 공연이었어요.


장대림 우리도 처음에는 인형극을 아이들을 위한 공연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애기똥풀의 꽃말이 ‘몰래주는 엄마의 사랑’인데, 애초에 “어린이에게 꿈과 사랑을!”을 극단 모토로 삼아 시작했던 거죠. 그러다가 2016년인가에 춘천인형극제에서 주최하는 인형극 아카데미의 워크숍을 참관할 기회가 있었어요. 천 조각 하나로 생명의 움직임을 보여 주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리고 워크샵을 진행하시는 선생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유럽에서는 어른들도 인형극을 너무 좋아한대요. 부럽기도 하고, 그런 인형을, 그런 인형극을 한 번 만들어 보고도 싶었어요. 그래서 그 워크샵에서 본 인형을 참고해서 수원에 살았던 나혜석 선생을 모티브로 한 <어느 여인>이라는 공연을 만들었죠. 봉건적 시대 관념에 맞서 싸운 근대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어린이보단 성인 대상 공연으로요. 나름 감동받는 이들도 있고, 괜찮은 피드백도 받았기에 인형극이 성인 대상 공연이 될 수도 있구나 하는 확신을 가졌던 거 같아요. <꼬부랑 할머니가>는 남북이산가족 찾기에서 어느 할머니가 남편 만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해요. 결혼하자마자 전쟁 때문에 남편과 헤어지고, 평생을 못 만나고 살다가, 이산가족찾기로 만나서는 3일 만에 다시 헤어지는 할머니의 사연을 TV로 접했을 때부터 마음에 품고 3년여 지내다가 공연으로 만들었죠.


장성환 <꼬부랑 할머니가> 대본 쓸 때 카페에 마주 앉아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 받으면서 장면을 만들어 가던 일이 생각나네요.



아무리 힘들어도 대체할 수 없는 귀중한 자산


Q. 부부가 인형극단을 함께 운영하시는 데 좋은 점과 어려운 점이 있다면요? 육아는 어떠셨나요?


장대림 우리 아들은 아빠가 특전사 나왔다는 데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어릴 때부터 아빠가 몸으로 하는 놀이를 많이 해줬기 때문에 워낙 아빠랑 친하기도 한데,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빠에 대한 자부심이 자라면서도 한결같고, 꿈도 아빠따라 특전사 부사관이에요. 초등 5학년 때 그렇게 정하더니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어요.


장성환 저희는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늘 아이와 소통하며 아이의 행복을 살피죠. 한번은 중학교 때 학교에서 전화가 왔어요. 어떻게 키우시길래 아이가 이렇게 행복하냐고. (장대림 그때 선생님께 그 이야기를 못했어. “공부를 안 시키면 됩니다.”하고(웃음)) 지금은 고등학생인데, 솔직히 이제는 소통이 쉽지 않아요. 때문에 갈등도 곧잘 생기기도 하더라구요. 행복도 달아나는 거 같고. 그래서 지금은 아들을 그저 손님이라고 생각하며 지내기로 했어요. "저 사람은 우리와 함께 있긴 하지만 저 사람대로 편안하게 있다가 떠날 사람이다." 하고.


장대림 부부가 함께 인형극을 하니 경제적인 부분이 쉽진 않죠. 오늘도 카드값 밀린 것으로 서로 닦달을 하면서 왔는데(웃음) 그렇지만 카드값 밀린 걸로 그동안 해온 것을 버리면 가치가 이것밖에 안 된다는 거잖아요. 그간 쌓아온 그 시간들, 그것도 다 귀중한 자산이거든요. 아무 자산 없이 맨땅에 뛰어들면 그게 과연 우리의 미래 생계를 책임지겠냐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있는 자산을 어떻게든 잘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거라 생각해요. 한때 공연이 많을 때는 단원을 더 두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었어요. 나이 들면 들수록 점점 공연이 힘겨워질 테지만 단원들과 함께라면 힘도 덜 들고 극단도 더 잘될 거라는 생각에.


장성환 그런데 제가 반대했어요. 한때는 그렇다 하더라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겠냐,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 사람의 인생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인데, 만약 공연이 없으면 어떻게 할 거냐.


장대림 평소엔 거의 싸울 일이 없는데 작품 제작 들어가면 제가 좀 예민해지나 봐요. 그럼 갈등이 좀 생기기도 하죠. 지금은 갈등이 생겼다가도 거의 남편이 후퇴하는 편이예요. 연출을 이해해 주는 거죠. 극단 초반엔 엄청 싸웠어요. 내 입장에서 아닌 건 아닌 거니까 충고를 해 주는데, 남편은 나름 열정적으로 하고 있는데 인정은 안 해 주면서 계속 지적만 한다고 힘들다는 거예요. 힘든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마음은 마음이고 일은 일이니까 제대로 해야잖아요. 그러니까 난 또 지적을 하는 거고. 그럴 때마다 아주 커다란 벽을 사이에 두기도 했죠. 언젠가는 저렇게 힘들어하는 남편을 그만두라 하고 다른 사람을 구할까? 하는 생각도 해 봤어요. 하지만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 우리 둘 다 힘들 것 같더라구요. 남편은 내가 눈에 보여야 안심이 되는 사람이니 떨어져서는 절대 행복하지 않을 것 같고, 내 입장에서도 내가 “어?!” 만 해도 어떻게 할지 아는 남편 외에 그 누구와 호흡을 맞추겠나 싶더라구요. 그런 생각에 미치니까 이 사람이 너무 소중하고, 절대로 놓으면 안 되는 존재인 거죠. 지금은 서로 각자를 깎는다 생각하며 지내요. 나의 모난 부분으로 상처를 주면 다시 상처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난 갈등이 생겼을 때 빨리 풀고 싶으면 먼저 장난을 걸거나 특별히 맛있는 저녁밥을 차리기도 한답니다.


장성환 그래서 있을 때 잘하라고 내가 얘기하죠.(웃음)



극단 애기똥풀


2011년에 창단했다.

애기똥풀의 꽃말처럼 ‘몰래주는 엄마의 사랑’과 같이

따뜻한 감동을 주는 극을 만들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양한 연령에 맞는 여러 형태의 인형극으로

관객과 호흡하고 교감하며 사랑을 나누는 것을 목표로 한다.

네이버카페 cafe.naver.com/agiddong


[대표작]

황소탈

호랑이와 도둑놈

왕자와 제비

아들, 정조

어느 여인

꼬부랑 할머니가

선녀 그리고 나무꾼

기생 김향화

신라 경문왕 이야기

나혜석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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