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인형극단 | 김영희 임종호
‘민들레 인형극단’은 부산에서 활동하는 단체이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김해일 씨는 어린 시절부터 ‘민들레 인형극단’과는 잘 아는 사이다. 부산 태생이어서만은 아니다. 선교 인형극단으로 인형극을 시작하신 아버지 덕분이기도 하다. ‘민들레 인형극단’의 김영희 팀장이 결혼하기 전부터 선교 인형극을 함께 고민하던 사이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흐릿한 어린 시절의 기억일 뿐, 어른이 된 김해일 씨는 대체 어떻게, ‘민들레 인형극단’이 그 오랜 시간을 부산에서 공연을 하면서 극단을 운영해 오신 것인지 아는 게 전혀 없다고 했다. 이분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부산시 진구로 향했다. 꼬마 시절부터 알고 지낸 조카뻘 되는 김해일 씨가 찾아가겠다고 하니, 어찌나 반가워하시는지, 우리도 고향집 찾아가는 것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먼 길을 단숨에 달려왔다. 크고 오래된 복도형 오피스텔 건물 3층 한 사무실이 ‘민들레 인형극단’의 공간이다. 들어서자마자 한쪽 벽면에는 수십 개의 인형들이 가득 차 있다. 이 작은 공간에서 수많은 인형과 인형극 무대가 연구되고, 만들어지고 있다. 무려 20년 동안.
*일시 : 2025년 10월 18일 (토) 오후 7시
*장소 : 민들레 인형극단 작업실 (부산시 진구)
*참여 : 김영희, 임종호, 김해일, 이슬기
Q. 국내에서 기독교 선교 인형극단의 활동이 활발했던 시기가 있었지요. 민들레 인형극단은 일반 인형극단이면서, 선교 인형극단의 계보를 이어오는 팀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인형극을 시작하셨는지 궁금하고, 두 분이 어떻게 만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김영희 유치원 교사였어요.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인형극을 하면 굉장히 집중하더라고요. 그래서 인형극 워크숍을 찾아다니면서 배우고, 관심 있는 분들과 아마추어 그룹을 만들어 공연을 다니기도 했어요. 그렇게 1년 넘게 활동하다가, 해외 봉사 공연을 갔어요. 다녀오고 나니 또 가고 싶은 거예요. 결국 직장에도 이야기하고 해외 선교를 나가게 됐죠. 중앙아시아에 있는 키르키스탄에서 2년 반 동안 선교사로 있었죠. 그곳에 있는 교사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갔어요. 돌아오고 나니 결단을 할 상황이 됐어요. 유치원 교사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인형극단을 할 것인가? 그때 생각에, 유치원 교사들은 굉장히 많잖아요. 인형극을 통해서 아이들을 만나자, 인형극단으로 헌신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죠. 한국으로 돌아온 직후에는 ‘향유와 옥합’에서 활동했어요. ‘향유와 옥합’은 완전히 선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인형극단었어요. 거기서 활동하면서 ‘교회 안에 아이들은 인형극을 많이 보지만, 교회 밖의 아이들은 메시지가 담긴 공연을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인형극단 민들레’를 창단했어요. 2005년에 이숙자 대표님과 창단했어요. 다른 것보다 아이들이 인형극을 통해서 밝게 피어나고, 자기 안에 것들을 뿜어내는 것들이 좋아서 계속 하게 됐죠. 2005년에 창단을 해서, 감사하게 올해 20년이 되었어요.
창단 직전에 결혼을 했어요. 만나면서 ‘선교에 대한 비전이 있다’는 마음을 밝혔어요. 그러니까 (임종호) 실장님도 당연히 선교에 대한 비전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제가 하고 있는 선교 활동에 대한 것을 다 이야기하고, 그것이 서로 마음에 전달이 되면서 결혼을 했죠. 실장님은 원래 건축 쪽 일을 하시다가 정리를 하고, 문화사역에도 마음을 갖고 2008년부터 합류를 하셨죠. 우리는 선교인형극단에서 하던 작품 메시지만 담은 일반적인 작품을 하는 팀이고, 실장님이 합류하면서는 공연의 스케일도 커지고, 조명이나 음향 쪽에도 전문성도 더 생기고, 기획도 들어갔죠.
임종호 이숙자 대표님은 현재는 가끔 함께하세요. 고문으로 모시고 대표자를 바꾸자는 이야기가 나온 적도 있었는데, 70대의 연세이시지만 아직도 열정이 있으세요. 계속 관심을 가지고 정체되지 않으려고 하세요. 그래서 하실 때까지는 계속 하자고 했어요. 본래 셋이 함께해 왔으니까. 부부끼리 할 수 있는데 왜 계속 같이하느냐 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 극단이 20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세 사람이 함께해서일지도 몰라요. 힘이 다해서 놓을지는 몰라도, 우리는 가족보다 더 서로를 속속들이 잘 아는 사이니까. 감사하죠. 이런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잖아요.
Q. 인형극단을 운영하실 때 분업 체계가 되어 있나요? 극단을 어떻게 운영해 나가시는지도 궁금합니다.
김영희 저희 공연은 두 사람만으로는 안돼요. 기본 네 명이 나가요. 배우가 세 명, 스태프 한 명. 규모에 따라서 세 명이 나가기도 하고 대여섯 명이 필요한 공연도 있지만. <피노키오의 모험>을 예로 들면 한 사람이 할아버지 의상을 입고 안에서 그림자극 공연을 하다가 탈을 쓰고 연기도 하면서 1인 다역을 해요. 장르가 단조롭게 되면 장면마다 아이들의 집중력이 떨어지니까 더 재밌게 하려고 다양한 스타일의 인형을 쓰고요. 대부분 그림자, 막대, 탈, 손 인형으로 했죠. 요즘엔 테이블 인형을 많이 해요. 실장님은 전문 스태프로 조명, 음향을 완전히 담당하고 있죠. 배우들은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어요. 그러다가 손이 모자라면 음향 조명을 무대 뒤로 셋업을 하면서 실장님이 장면 몇 개를 잡아주시기도 하죠. 아주 가끔.
임종호 저는 제작을 거의 하죠. 특히 그림자극 인형극은 규모에 상관없이 제가 완전히 제작하죠. 무대도 제가 만들어요. 공연용 무대뿐 아니라 체험용 무대까지 만드는데, 배우들이 어떻게 하면 편하고 안전하게 공연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물론 배우들이 마음에 안 든다고 짜증낼 때도 있지만.(웃음) 그래도 해내야죠. 또 공연할 때마다 트럭을 부를 수는 없으니까, 우리 자동차 짐칸에 들어가도록 사이즈를 맞춰야 되니까, 조립해서 들어갈 수 있게 머리를 엄청 쓰죠.
예전에는 그림자극 할 때 OHP 필름을 썼는데, 이제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아요. 코로나 때 연구를 많이 해서 그림자극과 영상을 접목시켜서 공연하고 있어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결합하니까 훨씬 더 풍성하게 됐죠. 그림자와 영상이 이질감이 없이 보일 수 있도록 하고, 초점도 일정히 유지가 되고, 조명에만 집중할 수도 있고. 두 장르를 섞어서 하니까 아이들이나 선생님들도 신기해하죠. 다양한 것을 시도해 보는 거죠.
김영희 우리에게 선교의 비전이 있는 것을 안 교회에서 한때는 월 얼마씩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보냈었어요. 이제는 정기적인 후원은 끝났고요. 지금은 공연료, 출연료, 강사료가 주 수입원이에요. 제작 의뢰가 있으면 또 그것으로 수입을 얻죠. 제작 의뢰를 한 시설의 인형극 지도를 해주기도 해요. 보건소나 노인복지관, 장애인복지관과 연계하는 경우가 있죠. 교육이나 강의 사업은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들 인형극에 관심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까. 10여 년 전에 의뢰가 들어와서 진행한 건데, 그 뒤로 계속 의뢰가 들어와요. 참여자 분들이 노년에 인형을 통해서 자신만의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을 너무 행복해해요. 또 너무 어렵지 않게 해야 인형극을 하실 수 있으니까 참여 대상 수준에 맞는 인형을 개발하기 위해 계속 연구해요. 우울감이 있는 노인층에 대한 의뢰가 들어온 적이 있어요. 인형을 통해서 어르신들이 변화하고 애착이 생기는 것을 보면서, 그런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죠. 그런 부분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계속 공부하고 발전시키고 있죠.
임종호 얼마 후에 40대 지체장애인 참여자들과 인형극 발표를 해요. 수업 진행할 때도 이분들이 굉장히 즐거워하면서 참여를 했어요. <미운 오리>라는 공연이에요. 이분들 중에는 언어가 안 되는 분이 있어서 성우들이 녹음한 것을 들으면서 인형을 움직이죠. 대부분은 수업에 잘 따라와 주는데, 공연을 준비할 때는 긴장되고 예민해지는 부분이 있어서 서로 부딪히기도 했죠. 어떤 때는 무대에 등장했다가 퇴장을 안 해요. 무대에 서는 게 너무 좋다고.(웃음) 내려오라고, 내려오라고 해도 안 내려오다가 결국 10분 넘게 무대에 있다가 나왔는데 그때 공연이 참 기억에 남아요.
Q. 극단을 운영하시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쳤을 때는 어떻게 하시는지도 궁금해요.
임종호 아이도 양육해야 하는데 한때는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국제시장에 가서 구루마(수레)까지 알아봤어요. 내가 음식 하는 데 재주가 있으니까. 토스트 기계를 사서, 매일 아침에 토스트를 만들어서 팔고 출근하면 어떨까(김영희 맛있을 텐데 말이야.) 아니면 대리 운전을 할까, 이런저런 고민을 했어. 그런데 다른 동료가 이런 조언을 해줬어요.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서 기도하면 되지, 왜 다른 일을 하려고 하느냐.” 그 말을 듣고 나니 정말 맞는 말인 거예요. “하나님이 길을 막으시면 다른 길을 열어주신다.” 예술가들이 어려울 때 왜 좋은 작품이 나오는가 생각해 보면, 간절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토스트든 대리든 뭐든 하면 분명히 잘 될 건데, 이게 잘 되기 시작하면 인형극을 못한다. 부업에서 수입이 나게 되면 사람이 돈을 따라가게 되거든요. 결정적으로 극단에 쏟는 비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 이후에는 다른 기회들이 와도 극단에만 집중했어요. 오히려 여기에 더 집중해서 깊이 있게 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들을 더 깊게 연구를 하는 방향이 됐죠. 공연이 없을 때는, 그냥 넋 놓고 있는 것이 아니고 ‘섬기는 공연’을 하자. 그냥 가요. 공연 팀은 공연을 해야 발전이 있어요. 공연이 없으면 시설이나 소외된 곳에 연락을 해서, “우리가 재능기부로 공연을 해드리겠습니다. 무대만 주세요.”하고 공연을 해드렸어요. 그런데 그쪽에서도 너무 고마웠는지, 이후에 구청과 연결을 해줘서 시니어와 인형극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연결이 됐어요.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닌데, 그런 식으로 선한 마음으로 대했을 때, 상대에게 통한다는 것을 알았지요. 소외된 지역으로 가서 하는 봉사 공연은 매년 8월, 12월 정해놓고 하거든요. 거기 가서 공연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도전이 되고, 힘이 되는 거죠. 돈벌이만이 아니라 선한 영향력을 생각하면서 해요. 문화는 가둬두는 것이 아니까 흘러 보내는 것이니까. 흘러가면서 선순환이 되는 거죠.
김영희 우리에게 공연 요청이 들어왔는데, 예산이나 상황이 맞지 않아서 못 간 곳들이 있거든요. 그 기관이 어떤 곳이냐에 따라서, 연락드리거나 찾아가는 거죠. 소외 지역에서는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정말 없어요. 그런 곳을 찾아가면서 공연하는 것이 정말 좋더라고요. 방문하는 것 자체를 너무 좋아하세요. 처음 보는 공연이니까 아이나 어른이나 다 인형도 만져보고 너무 행복해하시죠. 그런 모습을 보면 우리도 힘이 나고. 여러 어려운 상황들로 극단 분위기가 침체됐을 때, 그럴 때 움직이는 거죠. 한 번 더 연습하고, 한 번 더 공연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냥 있으면 굳어지니까. 지방 어디라도 가서 그분들을 위해서 공연하고 나면 에
너지 받고, 얻는 것이 참 많죠.
Q. 부부가 함께 인형극단을 운영하시면서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해소하세요?
김영희 저희는 오히려 두 사람만 있을 때는 괜찮아요. 만약 갈등이 있다고 하면 잠깐 멈췄다가, 같이 기도하고 말씀 보는 것으로 풀어요. 내 감정으로 대하려고 하면 너무 지치고 힘들고 마음이 열리질 않잖아요. 문제가 해결되려면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죠.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해소가 되어요. 때로는 도서관에 가든지 자리를 잠시 피하는 것도 도움이 되고요. 소통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서로 정직하게 이야기하는 거죠. 내가 어떤 방식으로 당신을 바라봤는지, 당신은 나를 어떻게 바라봤는지, 그 속뜻이 뭔지 생각해요. 그런데 그렇게 분석하고 나면 사실 속뜻은 없어요.(웃음) 그렇지만 난 그런 것 때문에 이런 상처를 받았다, 나는 속뜻을 알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해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이야기는 꼭 나누죠. 정직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려고 노력하죠. 그런데 마음이 안 열릴 때는 조금 지나도록 시간을 갖고, 한 마음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며 기다리죠. 특히 다른 객원들이 올 때 조심하자고 이야기해요. 우리는 객원들이 오면 더 신경 쓰여요. 리더가 부부니까 객원들이 볼 때 권위주의가 느껴지거나, 자기들끼리 다 한다고 느끼지 않도록. 한 마음이 되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이 작품을 통해서 어떤 것을 전하고 싶은지도 함께 고민하고 나누죠. 감사하게도 우리는 오랜 객원들이 많아요. 갈등은 있죠. 하지만 반복되는 갈등은 점점 적어지는 것 같아요.
임종호 주변에서 부부가 일하니까 많이 싸우지 않느냐고 물어봐요. 그런데 우리는 일하는 분야가 다르니까, 일에 있어서는 싸움이 거의 없어요. 다른 분야에 속해있으면서 같이 일해야 하니까 서로 존중하면서 할 수밖에 없어요. 작업실에 들어오면 분명하게 실장님, 팀장님이 돼요. 여러 일을 하다 보니까 싸움에 에너지를 쓸 수가 없어요. 언젠가는 일하는 방식이 달라서 서로 답답해한 적도 있죠. 그래도 이제는 서로 이해를 하니까. 혹시라도 욱해서 소리를 버럭 지른 날은 또 바로 수습해야죠. 맛있는 음료도 사다드리고.(웃음) 이제는 나이 드니까 서로를 대하는 데 여유가 생겼어요. 오히려 집에 가서는 많이 혼나죠.
김영희 객원들이 있을 때 오히려 신경이 많이 쓰이더라고요. 객원들이 같이 있을 때는 있어서 좋고, 없을 때는 또 없는 대로 좋고 그래요. 누군가에게 일을 가르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Q. 자녀분과의 관계는 어떠세요?
김영희 아이가 초등학교까지는 인형극 하라고 권했어요. 태어날 때부터 인형극과 살았으니까. 그리고 인형극도 좋아하고 잘 했어요. 사춘기가 되어서 진로에 대해 살짝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랬더니 “다른 것 하다가 인형극 할 수도 있죠.”라고 대답하는 거예요. “할 것 없으면?”하고 장난처럼 대화하곤 했어요.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구체적으로 진로를 정할 때는 “엄마 아빠 때문에 이 직업을 할 필요는 없어. 자유롭게 네 진로를 정해.”라고 이야기해줬어요. 우리 극단은 일반적인 극단하고는 다르잖아요. 이 극단에는 소명이 있어야 한다고 일러줬죠. 우리 마음에는 늘 아들에 대한 마음이 있죠. 문화사역을 하게 되면 좋죠. 하지만 오픈이에요. 우리가 우리 맘대로 정할 일은 아니죠. 가끔 손이 모자랄 때 몇 번 공연을 도와준 적도 있어요. 중학생 때는 “알바비 얼마 줄 거예요?” 하더니, 고등학생 때는 돈을 안줘도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니야, 네가 일하는 것에 대가를 받아야지.” 했는데도 안 받겠대요. 아이가 엄마 아빠가 사역한다는 것을 알아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죠. 든든하죠.
임종호 엄마 아빠를 도와주겠다는 마음이 있다는 게 고맙죠. 아들은 이제 고3이에요. 아들에게는 인형극을 하라고 푸시는 안 해요. 자기가 하고 싶으면 모를까, 지금으로서는 별로 생각이 없는 것 같고. 아이가 중학생일 때, 개인적인 바람으로 우리가 못한 연출 부분을 공부하면 어떨까 생각한 적도 있죠. 하지만 그건 억지로 한다고 될 일은 아니니까, 자기의 길이 있는 거니까. 사실 저도 그렇지만, 제가 이 자리에서 이런 일을 할 거라고는 평생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아내도 그렇고요. 이제 열여덟 살, 다 열어두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억지로 밀어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제일 중요한 부분은 하나님 안에 있느냐 아니냐니까.
인형극단 민들레
2005년에 창단했다.
인형극을 통해 아이들에게 꿈과 사랑을 심어주며
공연 예술 문화의 확산과 발전에 힘쓰는 인형극 전문 극단이다.
아동의 정서교육과 자아개념을 높이는 인형극 공연과
다양한 세대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홈페이지 puppe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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