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마루한 | 이새로미 김지웅
춘천인형극장의 ‘노을터’는 잔잔하게 흐르는 소양강 물을 배경으로 하는, 흔하게 볼 수 없는 근사한 분위기의 야외무대다. 이 아름다운 공간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공연을 하는 팀은 단연 ‘극단 마루한’이 아닐까.
마당극 형식의 <훨훨 난다> 배우들의 재담과 인형의 재미난 움직임, 악사와 배우를 넘나들며 이어지는 라이브 연주는 흥을 돋운다. ‘극단 마루한’의 공연은 언제나 만석이다. 무대를 둘러싸고 앉은 관객들은 어른이든 아이든 하나같이 환한 얼굴로 모두 소리내어 웃고 있다.
인형극 하는 후배들 사이에서 소문난 ‘친절하고 편안한 선배’ 김지웅 감독과 (김해일 씨의 최애 형님이다) 방송과 영화에서도 존재감 있는 연기를 하는 배우 이새로미 대표. (김해일 씨의 최애 배우이다) 같은 여성 예술인으로서, 배우라는 정체성을 가진 대표가 연기 생활도 하면서, 극단에서 기획, 행정, 제작, 연출, 연기, 게다가 운전까지 하면서 엄마이기도 한 이새로미 대표님의 이야기를 꼭 들어보고 싶었다.
아파트 지하 상가를 통해 들어가면, 파티션으로 구획된 여러 상가들 사이에 ‘극단 마루한’의 작업실이 있다. 이 작은 공간에서 ‘극단 마루한’의 더없이 넓은 상상력의 세계와 더없이 깊은 옛이야기의 세계가 만들어진다.
*일시 : 2025년 10월 24일 (금) 오전 12시
*장소 : 극단 마루한 작업실 (경기도 군포시)
*참여 : 이새로미, 김지웅, 김해일, 이슬기
Q. 어떻게 인형극을 시작하셨는지 궁금해요. 두 분이 어떻게 만나고 결혼을 하게 되셨는지도 궁금하고요.
이새로미 초등학교 때 이미 연극반을 했었어. 어릴 때부터 그림도 잘 그리고 글짓기도 잘해서 국무총리상도 받고, 학교 대표로 대회도 많이 나갔어. 그런데 학예회 작품 준비하는 걸 보니까 연극을 한대. 너무 하고 싶어서 선생님에게 부탁해 오디션을 봤는데, 내가 된 거야. 중학교 가서도 고등학교 가서도 연극반에 들어갔지. 당연히 연극영화과를 가고 싶었는데 떨어졌어. 그리고 그때만 해도 연극영화과에 대한 이미지가 별로 안 좋았어. 어른들이 보기에 그랬어. 대학을 가지 않고 다른 일 하는데, 연극이 너무 하고 싶어서 ‘극단 수레무대’에 들어갔어.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들어갔는데, 어머니가 이불도 해주고 음식도 해주고 극단에 들어가기 위한 지원을 많이 해주셨어.(웃음) ‘극단 수레무대’ 운영 방식은 배우가 모든 제작 과정에 참여해야 하는 방식이라 배우 연기 역량부터 염색, 재봉질, 인형 만들기까지 다 거기서 배우게 된 거죠. 그렇게 생각하면 난 어렸을 때 하던 것을 계속 하는 거야. 이게 노력도 있지만 타고 나는 것도 확실히 있는 것 같아.
김지웅 나는 ‘극단 사다리’에 있었어. ‘극단 수레무대’ 김태용 대표님이 ‘극단 사다리’에서도 아동극을 해 보는 게 어떻겠냐 권하시며 2년 동안 ‘극단 사다리’ 배우들에게 연기 수업을 해주셨어. 그때 태용 선생님을 가장 많이 따랐던 게 나였어. 그래서 내가 ‘극단 수레무대’를 자주 가게 되었어. 그러다가 만나게 되었지. 나중에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내가 ‘극단 수레무대’로 갈까 생각도 했는데, 새로미가 극단을 나온다고 해서 ‘극단 사다리’로 같이 왔지. 태용 선생님에게 연기를 배우고, 아동극에 대입하고 열정적으로 배웠지. 선생님은 “아동극이라고 성인극과 다르게 연기해야 되는 게 아니다. 어쩌면 아동극이 더 힘들다.”고 이야기하셨지. 전형적인 아동극의 연기 패턴을 탈피하게 해주신 분이었어. 그러다가 크게 꺾인 게, 우리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야. 어머니 돌아가시고 1년을 쉬었더니 이전에 치열하게 했던 고민들을 다 잊어버렸어. 1년 만에 다시 시작하려니 몸도 안 따라주고. 그래서 선생님에게 다시 배우러 갔지. 그것을 지금까지고 하고 있지.
Q. 극단 운영은 어떻게 하시나요? ‘극단 마루한’은 인형극단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인형과 배우가 함께 잘 살아있다고 느껴져요.
이새로미 우리는 인형도 하고, 마당극도 하고, 배우들 연기가 중심이 되는 연극 베이스라 그런 것 같아. 인형도 하지만 배우라는 기반이 있어서, 누가 우리 공연을 보고 ‘배우도 멋있고 인형도 멋지다’고 했던 말이 너무 좋았어. 그래서 이 길을 잘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 배우들에게 아이들 푼돈 뜯어 먹게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 해. 아이들 앞에서 공연하고 커튼콜 할 때, 내가 당당하게 인사할 수 있게 공연을 하라고 하지.
김지웅 나도 처음으로 아동극을 할 때는 내가 칼을 들고 아이들의 돈을 뺏는 것 같이 느껴졌어. 그러다가 ‘극단 사다리’에 들어갔더니 아동극이라도 공연 퀄리티가 좋으니까 너무 재밌는 거야. 연출 선생님이 작품이 좋았는지 안 좋았는지 판단하는 것은 커튼콜 때 인사하는 걸로 결정이 된다고 하더라고. 한 달씩 장기공연이 있을 때, 일주일만 지나면 다들 지루해져서 타성에 젖어. 그러다 가끔 실수를 하면 번쩍 긴장하는걸 보고는 일부러 긴장감을 유도하기 위해 장난 같은 행동을 하기도 했지. 센스 있는 사람들이 무대 위의 긴장감을 유도하기도 했어. 우리 극단의 모토는 ‘재미’야. 만드는 우리가 재밌어야 관객도 재밌지. 그 재미를 포인트로 작업도 하고 공연도 하지.
이새로미 얼마 전에 이야기한 건데, 우리가 리허설을 너무 많이 하니까 적당히 해도 되지 않냐고 하더라고. 내가 하는 말은 “배우를 믿지 말자.”야. 괜찮겠지 하는 순간 실수가 나. 리허설을 하면 다들 싫어할 걸 알지만, 하고 안 하고는 천지 차이니까. 배우들이야 반복하지만 보는 사람은 처음이니까. 그래서 커튼콜 인사를 멋지게 할 때, 그 뿌듯함이라는 게 있잖아. 그래서 일부러 자부심을 가지고 매진하라는 의미로 이야기를 하지.
극단 운영은 분업을 잘 하려고 하고 있어. 지원사업 같은 경우도 혼자 하던 것을 지웅이 형이 이제는 지원서의 기본을 잘 채워줘서, 내가 점검하고 수정을 해. 예를 들면 홈페이지나 기타 기본적으로 적어야 되는 부분을 많이 써놓으면, 내가 보고 추가하고 수정하는 거지. 요즘은 지웅이 형이 정산 부분도 조금이라도 도와주니까 좋지.
김지웅 인형 같은 경우는 디자인 말해주면, 내가 인형 제작하고, 아내가 채색해주고. 아내가 주로 글을 쓰니까 아내가 인형 디자인을 뽑아. 나도 대본을 보고 생각나는 디자인 있으면 공유하고.
이새로미 글을 쓰니까 너무 신나는 것 같아. 글을 쓰다 보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잖아. 그래서 연출도 하는 거고. 그림이 안 떠오르다가 누가 한마디 해주면 확 그림이 그려지는 게 너무 재밌는 거야. 주로 지웅이 형이 뭔가 던져주면 확 영감 받고 그래. 지웅이 형 어렸을 때 집이 가난해서, 부모님이 강화도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지웅이 형을 맡긴 거야. 아기 때 할아버지가 장독을 팔기 위해 돌아다녔는데, 장독에 지웅이 형을 넣고 다니셨대. 그 이야기가 너무 재밌는 거야. 거기에 간장, 고추장, 된장 이야기랑 재밌는 설화를 이야기해 줘서 극본을 쓸 때 도움을 받은 게 많았어. <꼬마장승 가출기> 같은 경우는 여러 번 수정을 거쳐서 형태가 바뀌었어. 예전에는 나도 배우로 참여했었어. 지금은 방송에 많이 출연하다 보니 공연에서 연기는 많이 못 하고 있지. 내 본캐는 배우야. 대표는 부캐고. 그런데 어느 순간 대표가 본캐가 됐어. 먹고살자고 하다 보니 좋은 배역이 나왔는데도 못해서 속상하고 힘들었던 적도 있어. 요즘에는 배우로서의 활동도 원활히 잘 하고 있어.
Q. 최근에 하신 작품 중 <우리 집에 괴물이 산다>라는 작품이 특별했던 것 같아요. 인형극에서 다루기 어려운 무거운 주제를 잘 풀어내셨잖아요.
이새로미 난 옛날부터 무겁고 불편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어. 어느 기획자는 작품에 ‘아동 학대’에 대한 이야기는 빼고, 괴물을 물리치는 이야기만 나오면 좋겠다고 했어. 내가 만들고 싶은 이야기는 괴물을 물리치는 이야기가 아닌데, ‘아동 학대’에 대한 것들을 빼고 만들면 이렇게까지 고민하면서 만들 필요가 없는데, 하다가 결국은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게 되었어. 대중성을 가질 수 있는지도 걱정이었지만, 그것보다 내가 걱정한 건 ‘시선의 분산이 잘 될까’하는 거였지. 아이들은 괴물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같이 보는 부모님들은 이게 아동 학대에 대한 이야기인 것을 알아차릴 수 있게.
두 종류의 관객에게 잘 전달될 수 있을까? 그랬는데 잘 전달되었어. 그래서 반응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해. 아동 학대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가 아니라서 아이들은 전혀 몰라. 그런데 어른들은 “어머, 어떻게 저런 이야기를 인형극에서 하냐?”면서 뜨끔해 하지. 하지만 목소리를 내는 건 어른들이니까 아이들이 보기 힘들 거라고 미리 짐작을 하는 거야.
김지웅 어두워지면 무조건 울기 시작하는 아이들이 걱정되긴 했지만, 우리가 했던 작품 중 작품 자체의 밀도로 아이들의 집중력이 가장 잘 유지되는 작품이었어. 신기한 경험을 했지. 하지만 기획자들이 싫어하지.(웃음) 작품은 정말 잘 나왔어.
이새로미 우리가 설득과 계몽을 하려는 게 아니라, 악간의 자극을 주어서 아이에 대해 더 관심을 주자는 연출이었는데 어른 관객들 편에서는 긍정적인 반응보다는 부정적인 반응이 확연히 두드러져서 힘들었어. 그렇지만 시선의 분산이 너무 잘 되었다는 좋은 경험을 했지. 그리고 나의 의도가 잘 전달되었지만, 아직 그 불편함들을 참을 만한 어떤 사회적 기준이 정립되지 않은 것 같아.
Q. 오래된 극단원들이 함께 든든하게 활동하시는 것 같아요.
김지웅 정열이 같은 경우는 거의 13년 정도 되었지. 최근에는 같이 못했지만 난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거든. 그 친구가 소속없이 활동하다가 ‘극단 마루한’을 계속했던 것을 보면 그래. 언제가 되었든 다시 돌아와서 나이 들어서 같이하면 재밌을 것 같아. 다른 친구들도 오래 했지. 같이 활동하다가 결혼해서 나간 친구도 있고. 그리고 우리는 연주를 할 줄 아는 친구들
이 같이 많이 했어. 기본적으로 배우 기반에 악(樂)도 해야 되고, 몸도 좀 쓰고, 이런 좋은 인재를 구하기 쉽지 않은 거지. 역할이 있어. 누구는 입으로 털고, 누구는 몸으로 하고, 난 사이사이에서 부족한 걸 메우고, 그렇게 서로 시너지가 좋게 하는 거지.
Q. 극단의 경제적인 면은 어떻게 관리해 오셨나요? 어려운 시절을 어떻게 버티셨는지 궁금해요.
김지웅 난 어떻게 버텼는지 몰라.(웃음)
이새로미 솔직히 우린 운이 따라 주었던 거지. 어려울 때마다 지원사업이 됐다든지 아니면 내 배우 작업이 많아졌다든지. 그럴 때마다 일이 잘 들어와서 어려움을 잘 견뎠지. 그래도 제일 도움이 되었던 게, 지웅이 형이 아기 돌잔치 사진 촬영을 해서 수입을 가져왔었어. 사진도 한 3년 했고, 마술도 아르바이트로 하기도 하고. 이게 큰 돈은 아니더라도 통장에 돈이 떨어졌다고 생각될 때, 생각지 못한 수입이 통장에 꾸준히 생긴 걸 봤을 때 너무 좋더라고. 그래서 큰 어려움이 없이 세월을 보냈던 것 같아.
Q. 자녀 양육은 어떻게 하셨나요?
이새로미 주변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곳이 없었어. 2012년 하이서울 페스티벌 때 아들이 네 살이었거든. 우리가 공연하고 10분 만에 철수해서 이동하고, 또 시간 되면 무대를 가지고 올라가고, 이런 정신없는 공연이었어. 그래서 아들한테 한곳에 앉아 있으라고 하고 정신없이 이동하면서 일을 한 거야. 그러다 갑자기 생각이 나서 아들을 다급히 찾는데, 사람이 천 명이 넘게 페스티벌에 몰려 있으니 찾을 수가 없는 거야. 여차저차 사람들 붙잡아 물어보면서 아들을 찾았는데, 어느 광대 공연을 맨 앞에서 잘보고 있는 거야. 우리가 어이도 없고 해서 쳐다보고 있었거든. 공연이 끝나니까 자기가 깔고 앉았던 프로그램 북을 다시 꺼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 공연 어디서하는 거예요?”라고 물어보더라고. 그래서 내가 얼른 가서 붙잡고 여기서
뭐하느냐고 물었더니 “엄마, 이 공연 어디서 하는 거야?” 하면서 물어보더라고.(웃음) 그래서 그 공연 앞에 데려다 앉혀놓고 우리는 편히 공연을 했지. 어렸을 때부터 무척 독립적이었어. 엄마 서운하게.(웃음) 일고여덟 살까지는 공부하라고 안 했지. 인성만 본 거야. 뭘 시키지도 않고. 기억이 나는 게, 초등학교 1학년 방학 때, 주변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어. 방학 숙제로 군포 주변을 탐험해서 탐험일지 같은 걸 작성하라고 했대. 걱정이 돼서 마루에게 물어봤더니 알아서 했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다음 날 담임선생님한테 전화가 왔어. 우리 아들 숙제만 유일하게 아이가 직접한 것 같다고 칭찬을 받은 거야. 그래서 아들에게 왜 엄마에게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엄마는 바빠서 안 해줄 거니까.” 그래. 솔직히 난 “네 숙제는 네가 해. 어려울 때 말하면 도와줄게.” 하면서 책임감을 길러 주고 싶었어. 할 수 있는 부분을 다 하고, 못 하는 부분은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키웠지.
김지웅 빨빨거리면서 돌아다니는 건 내 성격을 닮았어. 난 호기심이 많거든. 보통은 극장에 공연하러 가면 공연만 하고 돌아오는데 난 그 극장을 샅샅이 돌아다니거든, 궁금해서.
이새로미 아들이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야. 아들도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잘 쓰고 타고난 게 있는 것 같아. 아빠 닮아서 축구를 잘했는데 지원해주진 못했어. 지금은 영화 연출을 꿈꿔. 사실 내가 좀 푸시 했지. 영화를 좋아하니까 파주에서 하는 청소년 영화제작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게 했더니, 그 후에 재밌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계속해 보라고 했지. 20대 때는 하고 싶은 것 찾는 거라고 이야기해 줬어. 우리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좋겠는데, 난 약간 시니컬한 편이라서, 정말 할 게 없어서 오면 안 된다고 생각해. 진짜 이것을 사랑하는 사람이 해야 행복할 수 있는 판이잖아.
[극단 마루한]
2010년에 창단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아름답고 즐거운 옛것의 소중한 추억을
선물해 주고픈 마음들을 한데 모아 만든
연극인 엄마, 아빠들의 극단이다.
세계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들이 건네는 선물은 바로
우리 조상들의 슬기와 지혜, 그리고 해학의 이야기이다.
이 선물로 언제나 아이들의 웃음과 더불어
어른들의 행복을 그려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theater_troupe_maroohan
대표작
우리집에 괴물이 산다
꼬마장승 가출기
이야기 파시오
해, 달 그리고 호랑이
훨훨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