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우주] 천재 예술가들의 치열했던 부부 생활

금설복합예술소 | 송은경 김신기

by 이슬기

솔직히 말하자면, 인형극을 시작할 때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어왔다.


“금설예술복합소 김신기, 송은경은 천재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새로운 인형극 스타일을 실험적으로 연구하고 무대에 올린 극단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이브리드 퍼펫 형태의 할머니가 주인공인 <크락션>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몸빼 입은 K-할머니’인데, 압도적인 외모와 느리면서도 섬세한 연기에, 인형의 바로 뒤에 인형을 움직이고 있는 퍼펫티어(인형 조종자)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굳이 숨으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이 공연은 2022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공식 초청작이기도 했다.

<거울아거울아>의 인형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우아하다. 백설 공주 이야기를 베이스로, 섬세한 연기는 물론 코믹 요소도 놓치지 않는다. 송은경 대표님의 넉살 좋은 연기로 관객들은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한바탕 실컷 웃게 된다.


주택가의 한 건물 지하에서 가까운 인형극단들과 작업실을 공유하는 ‘금설복합예술소’. 커다란 공간을 극단별로 구획해 극단의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이기도 하며, 제작소이자 연습실이 되는 다기능의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송은경 대표님이 요즘 빠져있다는 향기 좋은 차와 꾸지뽕을 음미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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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5년 10월 26일 (일) 오전 10시

*장소 : 금설복합예술소 작업실 (경기도 고양시)

*참여 : 송은경, 김해일, 이슬기



거부할 수 없는 인형극의 매력과 그 남자


Q. 어떻게 인형극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또 두 분의 만남 이야기도요.


송은경 어릴 때부터 예체능을 잘했고, 교회에서 연극을 하면 매번 주인공을 하고, 다른 건 못해도 대본은 그냥 외워져. 희한해. 책 한 권 분량도 그냥 외워져. 어릴 때부터 그런 끼와 기질이 있었어. 그렇지만 어릴 때 집이 가난했기 때문에 예체능 교육을 받을 수는 없었어. 빨리 돈을 벌어야 했어. 공연 쪽 오기 전에는 워커힐 호텔에서 일을 했어. 그런데 회사를 다니면서도 항상 꿈이 있었어. 월급 받으면 하고 싶었던 것을 늦게라도 하고 싶어서, 무언가를 배우러 다니는 데 돈을 썼어. ‘내가 정말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공연을 보러 가면 ‘저 사람들은 어떻게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고 있지?’ 늘 그게 궁금했어. 어느 날 신문을 보는데, CBS 방송 아카데미 성우 과정이 있는 거야. 시험을 봐서 합격을 했는데 이게 회사를 그만둬야 되는 거야. 6개월 과정인데, 아침부터 하루 종일 공부해야 하거든. 5년 다닌 회사에서 나오기로 결심을 했지. 회사에서 난리가 났지. 난 입사보다 퇴사가 더 힘들었어.(웃음) 그런데 나는 꿈이 있잖아. 그러니 내가 어떤 각오로 성우 공부를 했겠어. 미친 듯이 했지.


그렇게 공부를 하고, 극단에도 들어갔어. 공부하는 차원에서 대학로 공연을 엄청 많이 보고 다녔어. 대학로에 연극이 성행할 때니까. 그런데 연극을 보면서 마음에 안 차는 게 있었거든. 손꼽히게 좋은 공연이 많지는 않았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공연을 보고 너무 좋아서 그런 공연에 서고 싶다 생각했지.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성 심리극에 관심이 있어. 그런 연극 공연들만 보다가, 어느 날 아는 동생이 자기가 하고 있는 공연 좀 와서 봐 달래. 인형극이래. 인형극이 뭐야?(웃음) 인형극이 뭔지도 모르고 간 거야. 그때 본 게 ‘마법과 인형극단’의 <엄지공주>였어. 옥종근 대표님이 인형을 기가 막히게 만드시잖아. 인형이 나와서 녹음에 맞춰서 대사도 치고 눈도 깜빡이고 하는데, 그걸 보는데 눈물이 나는 거야! 인형이 움직이면서 살아있는 게 너무 신기한 거야.


그때 극단에 있으면서 연극판 바닥도 만만치 않고 방송국 쪽도 만만치 않다는,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있었어. 원하던 것을 시작했지만 여러 가지로 힘들 때였는데, 인형극을 보니까 내 동심에 자극이 간 거야. 그러면서 그 매력에 바로 빠진 거야. 그 시기에 서울에서 인형극 축제를 했어. 해외 인형극 팀이 온 거야. 그걸 추천해 주셔서 보러 갔어. 유럽 쪽 팀인데 대사도 없이 인형극을 하는데, ‘아, 저게 인형극이구나!’ 그걸 보고 한눈에 반한 거야. ‘인형극계가 블루오션이다. 내가 이걸 제대로 파면, 유럽 팀이 우리나라에 와서 초청받아서 공연하듯이, 내 공연도 유럽에 초청을 받아서 공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냥 단순하게 재밌겠다는 것보다는, 여기서 내 예술에 대한 모든 것을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렇게 ‘마법과 인형극단’에 들어가서 인형 만드는 것을 배웠어. 몸을 쓰던 애였기 때문에 제작을 배워야 했어. 극장에서 대기 시간이 너무 아까운 거야. 그때마다 대표님한테 부탁해서 쉬는 시간마다 스펀지로 인형 깎는 것부터 배우고, 타올지에 본드팅 하는 것, 꿰매는 것, 무대 세팅 하는 것, 이걸 옥 대표님한테 배운 거야. 극단에 8개월 정도 있었어. 인형극의 기능적인 부분을 옥 대표님께 배웠지. 인형극을 할 수 있게 해 주신 스승님이야.


‘마법과 인형극단’에 있을 때, 극단에 배우가 필요하니까, 이왕이면 말공부를 한 성우 친구들이 하면 좋을 것 같았어. 내가 졸업한 방송문화원에 가서 후배들에게 인형극을 소개해주러 갔지. 그때 문화원 쪽에서 반장을 소개해줬는데 그게 신기 씨였어.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목소리 쫙 깔고 막 멋있게 말하는 거야.(웃음) 관심 있는 동기들 데리고 공연장으로 온다 그러더라고. 그래서 몇 명 친구들이 와서 인형극 공연을 봤어. 공연을 보고 나더니, 대뜸 자기가 들어오겠다는 거야. 나 꼬시려고.(웃음) 나중에 나한테 고백을 하는데, 극단에 들어온 것은 90퍼센트가 나 때문이고, 10퍼센트는 손재주가 있으니까 제작하는 부분이 매력적으로 보였대.


그렇게 ‘마법과 인형극단’에 신기 씨가 들어온 거야. 그때부터 같이 작업을 하면서 공연을 같이 다녔지. 내가 잔병치레를 잘하는 스타일이거든. 그러면 막 죽 끓여서 갖다 바치고. 큰 꽃다발을 신문지에 대충 만 듯이 싸가지고, 초상화도 그려주고, 편지도 한 번 쓰면 열 장을 써주고, 삐삐에 메시지를 남기고, 엄청 장난 아니게 구애를 했어. 그런데 내가 단칼에 잘랐거든.(웃음) 난 결혼 생각 전혀 없었어. 남자 생각도 없었어. 처음부터 잘라 내려고 확실히 선을 그었어. 그랬더니 극단을 그만두겠대. 그러니 대표님까지 와서 나한테 신기한테 좀 잘 대해 주라고 하더라고. 극단 안 나가게 좀 도와달래. 그런 일 있은 뒤로는 신기 씨가 갑자기 나한테 대본을 써오네. 내 성향 파악을 한 거야. 내가 진짜 작품을 하고 싶은 사람이란 걸 파악한 거지. 작품을 써가지고 오더니, 이걸 같이 만들어 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어봐. 그러고 나서 그 작품을 같이 했지.


신기 씨는 어릴 때 환경이 너무 좋지 않아서, 정말 겪어보지 않은 일이 없어. 죽다가 살아난 일도 있어. 그 뒤로 완전히 다시 태어난 거야.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안 해본 일이 없고 지금도 새로운 이야기를 들어.(웃음) 어떤 면에서는 측은지심이 들 때도 있어. 난 남자를 만나면 경험 많은 남자를 만나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그래서 이렇게 경험 많은 남자를 만났나 봐.(웃음) 나도 특이한 사람이야. 웬만한 사람한테는 매력이 안 느껴졌는데, 이 사람한테는 매력이 느껴지니까. 신기 씨 재능은 정말 특출 나. 어릴 때도 그림을 그리면 그게 홍대 미대생이 그린 것처럼 보였대. 나도 학교 다닐 때 미술로 상도 받았는데, 김신기에 가려져서 나는 빛을 못 받았지.(웃음) 연기도 잘해. 워낙에 개성이 뛰어난 예술가다 보니까 이 사람이랑 결혼하면 내가 평생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겠다 생각했지. 이 사람이 좀 어렵게 살고 있었거든. 주변에서 반대할 정도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이었어. 우리 부모님이 정말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주변에서 다 반대하는데도 부모님은 신기 씨를 너무 예뻐하셨어. 남의 자식 같지가 않고, 그냥 마음이 가는 막내 같다고. 세상에 못난 자식이 어디 있냐고, 내 자식은 뭐가 그렇게 잘났냐고 반대하는 사람들한테 뭐라고 하셨지. 그 고생하고 사셨으면서도, 내 선택을 존중해 주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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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터지는 싸움의 결과물


Q. ‘금설복합예술소’의 작품들은 늘 시대를 앞서가는 특별한 작업들이었어요. 두 분이서 어떻게 작업을 해 오셨는지 궁금해요.


송은경 결혼하고 애를 낳고 살았지만 부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 오히려 동료라는 느낌. 우리는 맨날 밤새서 이야기했어. 부부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라고 생각해. 대화 끊기면 끝난 거야. 우리는 작품 하나 만들 때도 정말 많이 싸워. 미친 듯이 싸워. 각자의 개성이 너무 강하니까 더 그랬어. 이 사람은 너무 예술적으로만 가려고 하고 나는 또 조율을 하려고 하고. 신기 씨가 작품 구성안을 써와서 막 설명을 해줘. 그러면 “그건 너만 아는 거잖아. 나도 알아야지. 나도 알고 일반인들도 알아야지. 그럴 거면 산속에 들어가서 혼자 보는 작업 만들어.”(웃음) 이랬지. 작품 하나 만들 때마다 피 터지게 싸웠어. 다시는 너랑 작업하나 봐라 할 정도로. 피 터지게 싸운 결과로 작품이 이렇게 나오는 거야.



Q. 한국 인형극 최초로 성인 인형극도 하셨잖아요. 아직까지도 '인형극' 하면 아이들을 위한 공연이라고 생각하는데, 처음 그 공연 올리셨을 때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송은경 늘 새로운 시도와 연구를 했던 것 같아. 우리는 아무도 안 했던 형식이나 내용의 작품을 먼저 만들었던 것 같아. 앞서도 너무 앞섰지. 시대에 안 맞아.(웃음) ‘금설복합예술소’ 만들기 전에 ‘그무슨현상’이라는 팀을 만들었어. 1998년쯤인데, 그때 이미 성인 인형극을 만들었어. 그건 정말 공연할 데가 없었어. 홍대 쪽으로 찾아갔는데 그쪽에서는 호기심을 갖더라고. 그래서 공연을 하기로 한 거야. 그런데 공연 날이 되니까, 인형극이라고 아이들이 온 거야.(웃음) 그게 우리나라 최초의 성인 인형극이었으니까 인식이 아직 아닐 때였지. <꽃다방>이라는 공연을 만들고는, 신기 씨가 제주도 성박물관에 기획안을 가지고 찾아가서, 거길 뚫은 거야. 박물관 안에 상설 극장을 아예 만들었어. 그렇게 공연을 했는데 박물관 쪽 하고 소통이 잘 안 된 거야. 작품에까지 간섭을 하니까. 버티면서 공연을 하다가 결국 망한 거야. 그래서 신기 씨한테 이야기를 했지. “다 싸가지고 올라와. 우리가 언제 돈 가지고 살았어? 내가 있잖아. 다시 올라와.” 그때는 다니던 극장들이 있으니까, 신작 만든다고 이야기하면 같이 날짜 조정해서 바로 공연 날짜를 잡을 수가 있었거든. 올라오자마자 딴생각 못하게 신작을 바로 한 거지. 그때 <공룡엄마> 만들어서 바로 공연하고, 김천국제가족연극제에 가서 수상하고, 바로 그 작품으로 중국 투어 공연을 했어. 상하이에서부터 북경까지. 그때 아들이 중학생이었는데 오퍼레이터로 앉히고, 한 명 더 해서 총 네 명이서 중국 투어 공연을 다녔지.



Q. 두 분이 인형극을 하시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어떻게 버텨오셨나요?


송은경 나는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 내가 원하는 일을 선택한 것뿐이고, 돈이 없을 뿐이야. 젊으니까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지. 우리가 공연만 하고 살았던 건 아니야. 보험 설계사도 해봤어. 나는 내가 잘할 줄 알았다? 서른네 살에, 아이가 아직 어리니까 시간을 오래 낼 수가 없잖아. 그래서 친구 언니 따라서 간 거야. 교육에서 점수도 높고 내가 활발하게 생겼잖아. 그래서 지점장이 “교육시키기도 아깝다.” 그랬어. 그래서 교육 완료하고 현장으로 나갔다? 그런데 가게에 혼자 들어가서 말도 못 하겠더라고.(웃음) 한 달을 현장에서 하는데 실적도 없었어. 아, 엄마 것 하나 했다. 그동안 바빠서 못 만났던 사람들 얼굴 보는 걸로 지냈어. 그건 좋더라.(웃음) 그러다가 공연 하나 해야 할 게 들어온 거야. 그래서 회사에 다시 공연하러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더니, 너무 반갑게 “네, 그러세요.” 하는 거야.(웃음) 무대에서는 되는데 일반적인 데서는 사람 만나는 것도 잘 안 되더라고. 그런데 텔레마케팅 일은 잘했어. 사람을 안 보고 하니까 너무 재밌는 거야.(웃음) 연기하듯이 했어. 얼마간 일하다가 공연해야 해서 가야 한다고 하니까 그때는 거기서 붙잡았지.(웃음) 40대 중반에는 빈티지 옷가게를 한 적도 있어.


사람들은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배우만 할 것처럼 생각하거든. 내가 피 터지게 싸우면서 공연 만드는 걸 아무도 몰라. 말하면 놀라. 공연 나 혼자 다닌 것도 몰라. 그래서 내가 지금 신기 씨한테 큰소리칠 수 있는 거야.(웃음) 내가 운전을 못하잖아. 집도 시골이라서 어디 가려면 두 시간 반, 세 시간 반이야. 하루에 세 번씩 공연하고 그렇게 살았어. 그게 젊어서, 에너지가 있어서, 책임감, 아이 키워야 되니까 가능했던 거지. 공연 비수기 때 신기 씨는 맨날 작품 구상만 했어. 나는 나가서 돈 벌었어. 알바라도 해. 뭐라도 찾아서 하는 거야. 당장 들어가는 돈이 있잖아. 그래서 누구에게도 손을 벌려 보고 산 적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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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요즘에 김신기 선생님은 다른 일을 하시지요?


송은경 이제는 신기 씨가 인테리어를 하고 있어서 그나마 숨통 트고 사는 거야. 인테리어는 완전히 다른 장르잖아. 그런데도 인테리어 업체가 하는 것을 보고는, 신기 씨가 자기도 할 수가 있을 것 같더래. 그러고 업체를 차렸고, 그게 처음부터 대박이 난 거야. 방송까지 타고 그랬다니까. 처음 시작이 잘된 거지. 그러다 거의 1년 정도 힘들게 위기가 오기도 했는데, 지금은 다시 괜찮아져서 만회를 하고 있지. 그때가 코로나 때여서 공연으로는 돈을 아예 못 벌었거든. 살면서 내가 돈 벌어 오라고 했던 적이 없었어. 그런데 코로나 때는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야. 그때는 처음으로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더라고. “나는 더 써주는 사람도 없어. 나는 이제 돈을 벌 수가 없을 것 같아. 이제부터는 당신이 나를 책임져 줘야 해.” 그랬더니 알겠대, 걱정하지 말래. 그래서 지금은 경제적으로 많이 안정이 되고 도움이 돼. 물론 지금까지 같이 공연을 했으면, 또 계속 공연 만들고 했겠지. 그런데 쳇바퀴야. 똑같았을 거야. 이제 지금 수입을 내주니까 고맙지. 남편 사무실은 공주에 있어. 전국구로 다녀야 하니까 공주가 위치적으로 좋대. 지금은 떨어져 살지. 부부가 떨어져 있으면 다시 합치기가 힘들어. 떨어져 살지 마. 이제 만나면 잔소리를 하게 돼. 눈에 거슬리는 게 너무 많은 거야.



Q. 그래도 두 분의 작품을 더 보고 싶어요. 앞으로 함께 작업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송은경 작품 하나 정도는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아. 지금까지 거의 모든 작업을 신기 씨랑 둘이서 했거든. 남편이 너무 바쁘고 작업할 수 없는 환경이었을 때는 다른 사람들하고도 해봤는데, 신기 씨랑 둘이 했던 게 제일 재밌었던 것 같아. 둘이서 함께 만든 작품이 만족도가 제일 높아. 일인극을 할 수도 있겠지만 발동이 안 돼. 같이 이야기 나누며 치열하게 하면 할 텐데. 우리는 음막만 빼고 모든 것을 다 했거든. 그래서 혼자 하는 게 선뜻 나서 지지가 않아. 사실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공식 초청받아 공연하러 다녀온 것으로 인형극에 대한 내 꿈은 이룬 것 같아. 더 이상 공연 안 해도 돼. 공연으로는 여한이 없어. 나는 남편에게 공연은 취미로 할 거고, 앞으로 내 로망이었던 일을 하겠다고 했어. 그런 것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는 거잖아. 마라톤도 버킷리스트에 있었어. 원예프로그램 지도사도 배우고 있어. 그것들을 하나씩 하고 있어.



Q. 자녀분은 어떻게 양육하셨는지 궁금해요.


송은경 우리 아들한테는 공연할 생각 꿈에도 꾸지 말라고 했어.(웃음) 예술 쪽에도 재능이 보이는데, 디저트 쪽에 관심이 많아서 중학교 때 이미 쇼콜라티에 자격증을 땄어. 그래서 고등학교를 한국외식과학고등학교로 갔어. 기숙형 고등학교인데, 3년을 정말 즐겁게 다녔어. 거기서도 목소리가 좋아서 무대 서야 하는 일은 다 했더라고. 지금은 스물다섯 살이고, 바리스타를 하고 있어. 아들은 치열하게 사는 걸 싫어해. 요즘에는 돈을 벌더니, 나한테 좋은 걸 막 사줘. 왜 사주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맨날 동묘 가서 옷 사 입잖아. 그동안 엄마가 고생한 것 아니까 지금이라도 엄마가 좋은 거 입고 좋은 화장품 쓰고 그랬으면 좋겠어.” 그래. 엄마 수준을 높여주고 싶었대. 엄마가 고생해 온 걸 알고 있더라고. 그리고 아빠의 자상함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아들도 자상한 거야. 신기 씨도 내가 갖고 싶은 손목시계가 있었는데, 돈이 없으니까 자기 책 다 팔아서 사줬거든.(웃음) 그래서 나도 기쁜 마음으로 선물을 받고 있어. 나중에 여자 친구 생기면 그 애한테 잘하라고 하면서.(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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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는 잠깐 다른 일을 해 봐


Q. 저희 같은 후배 예술인들에게 조언 부탁드려요.


송은경 나는 간간히 공연을 하고 있지만, 지금 공연하는 분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 어마어마하게 공연하던 팀들도 지금은 폐업 위기야. 예전에는 그냥 내가 일을 만들면 가능했어. 공연하자, 하면 장소 만들고 포스터 붙이고 기획하면 다 돼. 그런데 지금은 소극장이 아예 없잖아. 지금은 공모지원, 지원사업밖에 없어서 오히려 설 자리가 없어지는 느낌이 들어. 평생 살면서 우리도 대충 한 적 없고, 하는 작품마다 인정받고 주목받았잖아. 그렇지만 그때뿐이고 현실적으로는 답이 안 나오는 거야. 우리도 마흔 살 넘어서부터 현실적인 고민을 시작했어. 맨날 앉아서 ‘장사할까?’ ‘옷 장사보다 먹는장사가 남잖아?’ 이런 이야기하고. 주변에서는 공연 고민 안 하고 장사 고민 한다고 뭐라고 했어. 그런데 어떻게 해? 그게 우리 상황인걸.


지금 힘들지? 약간 슬럼프지? 그럼 한번 다른 일을 해 봐. 그럼 내가 공연을 얼마나 행복하게 했었는지를 몸소 느끼게 돼. 그래서 결국 다시 돌아와. 이것을 깨닫게 되면, 공부하면서 새로운 관점으로 찾아봐. 공연만 하지 말고, 프로그램을 같이 진행할 수도 있고.


우리가 버티고 공연해 오면서 살아온 것, 지금 생각해 보면 기적이야. 하고 많은 장르 중에서 그것도 인형극으로 말이야.




[금설복합예술소]


1997년에 창단했다.

인형과 오브제를 재료로

새로운 형식의 인형 제작과 오브제의 움직임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주로 2인 미만의 소규모 작품들의 순수창작을 꾸준히 이어왔으며,

개성 있는 화법과 미술적 표현을 중시하는 단체다.

한국 최초로 인형극의 연령층 확대를 위한

성인 장르 작품 제작 및 장르 융합의 여러 시도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대표작

거울아거울아

크락션

이불꽃

어린왕자

연극같은 내 인생

대어

공룡엄마

걱정엄마

페르소나

꽃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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