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엔 카모메식당에 가고 싶다.
@Helsnki-zoo(Korkeasaari), 핀란드
Villa Chili에서는 이틀만 자고 다른 도시로 이동할 예정이라 쉬면서 여유롭게 움직이기로 했다. 한 마디로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는 뜻. 기차 타고 나가서 헬싱키 시내를 구경할까-싶었는데, 호스트인 Pia가 아이들과 함께 동물원에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핀란드 가족과의 동물원 나들이라니,
Why not?!
그리하여 Pia와 두 아들, 나, 그리고 Pia네의 refugee god son*인 아프가니스탄 소년(이라고 본인은 주장함)과 함께 나들이를 떠나기로 했다.
Korkeasaari라고 불리(지만 나는 읽을 줄 모르)는 헬싱키 동물원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 중 하나라고 한다. 이곳의 특별한 점은 1)섬에 위치해있다는 것 2)인간을 전시하고 있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간과 시설이 잘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탁 트인 자연에서 동물들을 바라볼 수 있어서 기뻤지만, 실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계산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이 시간에, 이 입장료를 내고 온 만큼의 가치를 누리고 있는가?
이런 계산을 하게 된 데에는 동물원에 대한 불만족 때문이 아닌 다른 배경이 있었다. 함께 다녀 보니 Pia가 두 어린 아들을 혼자 돌보는 것이 버거워 보였다. 아이들을 잘 통제하지 못했고, 그들이 신나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 아무 데나 유모차를 내팽개치고 쫓아가버렸다. 물론 어디에 두든 분실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여긴 핀란드니까.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그녀가 쭉쭉 앞으로 가버리면 그 유모차를 챙기는 건 자연스레 나와 아프가니스탄 소년의 몫이 되었다.
나나 소년이 없었어도 이 나들이가 가능했을까? 묘하게 이용당했다는 배신감이 들어버렸다. 아이들과 함께 다니면 당연히 혼자 혹은 또래와 함께 다닐 때보다 신경 쓰고 배려해야 하는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 그쯤이야 나도 알고 있었고 전에도 이런 상황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유독 이곳에서만 심술이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언어장벽으로 인해 아이들과 더 가깝게 지내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말이 잘 통했다면 더 신나게 같이 놀 수 있었을 텐데.
결국 나는 나에게 화가 났던 것 같다. 잠시 따로 구경하고 오겠다고 용기 내어 말하지 못한 스스로에게. 동물원에 오랜만에 왔다고 해서, 것도 핀란드까지 왔다고 해서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라는 법은 없다. 다만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음에도 벗어나지 못한 스스로에게 화가 났던 것이다.
얕은 언덕 위에 앙증맞은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었고, 더위에 지친 사람들은 너도나도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있었다. 아이들이 떼쓰는 상황, 그래서 Pia가 허둥대는 상황을 만들기 싫어서 아이스크림 하나 조차 사 먹지 못하는 내가 너무 미련하게 느껴졌다. 결국 난 이곳까지 와서도 속만 끓이고 있었던 것이다. 바보처럼. 속상하게.
이후로 각종 전시관에 들어갈 때마다 신나서 마구 내달리는 아이들을 좇아가고, 데려오고, 기다리는 일이 반복되니 다 떠나서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엄마가 거기 가지 말래', '여기서 기다리래', '엄마 곧 온대' 등의 기초적인 의사소통조차 할 수 없으니 직접 아이들의 손을 잡고 엄마에게 데리고 오는 수밖에 없었다. 머리가 나쁘니 몸이 고생한다고, 기본적인 회화조차 배워오지 않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터덜터덜 걷고 있는데 저 앞쪽에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Pia가 말했던 '호모 사피엔스' 우리라는 걸 직감했다. 다가가 보니 진짜 웬 남자가 우리 안에 갇혀있다. 나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아이들이 천진하게 이것저것 물으면 친절하게 대답해주고 있었다. 어른들과는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다가 아이들이 물어보면 특유의 연기 톤으로 대답해주는 게 흥미로웠다. 창살 사이로 손을 넣어 만지거나 때리는 아이들을 보며 이 또한 극한직업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 안에 다양성을 담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며 스타 동물과 헤어졌다.
그렇게 동물원 나들이는 얼추 마무리가 되었다. 이후로 어떻게 하고 싶냐는 물음에 나는 이미 기진맥진해 있으면서도, 고민 없이 외쳤다.
난 시내 구경을 갈래!
그리고 부리나케 페리 표를 끊어 동물원과 육아전쟁에서 탈출(?)했다. 저녁엔 카모메식당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며. 뭔가 보상할 거리가 절실히 필요했다.
*찾아보니 refugee god son이라는 정확한 용어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Pia 말로는, 지역 난민 캠프의 난민들과 가족을 연결하여 교류하는 프로그램에서 맺어진 난민이라고 한다. 아마 적십자나 종교단체 등이 운영하는 민간 교류 같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된다. 그 친구를 픽업하러 갔었는데, 아프가니스탄 난민 소년들이 모여 사는 시설이라고 했다. 교육, 보호 등이 이뤄지는 시설인데, 성인이 되면 이러한 혜택을 받을 수 없기에 많은 난민들이 이곳에서 지내기 위해 나이를 속이고 있다고 한다.
핀란드에서 살며, 일하며, 여행했던 한 여자의 방황기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