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틀을 달다
스물두 살.
제대를 하고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나는 복학할 용기가 없었다.
군대에서는 하루를 버티면 하루가 지나갔지만,
민간의 시간은 ‘버틴다’라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됐다.
뭔가를 증명해야 할 것 같은,
그 막막함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춰 있었다.
그때, 다시 나를 부른 곳이 있었다.
웰컴미술학원.
1997년, 처음으로 연필을 제대로 쥐었던 곳.
어느새 2002년 6월 1일,
나는 그곳에서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으로 서 있었다..
“오늘부터 나오는 거야?”
원장님의 목소리는 예전과 똑같이 느긋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강사 생활이 조용히 시작됐다.
첫날엔 손끝이 떨렸다.
내가 알고 있는 게 학생들에게도 통할까?
이해할까?
혹시 아무 도움도 안 되면 어떡하지?
방법을 바꿔가며 설명하고,
학생들의 표정을 읽고,
내 마음도 계속 들여다봤다.
‘가르친다’라는 단어가
내 마음속에 아직 허락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학생들의 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안한 선, 흔들리는 농담,
그리고 그림 앞에서 조심스레 멈칫하는 모습들.
그 모습이 어쩐지 과거의 나 같아서
이상하게 마음이 움직였다.
그 순간, 나는 속으로 조용히 말했다.
“이제는 내가 이 친구들을 지켜야 할 차례구나.”
어느 날 밤,
학원 선생님들과 맥주를 마셨다.
나와 동기였던 친구와 원장님의 결혼 이야기,
학생 지도에 대한 의견들…
모두들 자기 자리를 자연스럽게 점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대화를 들으면서
아직은 그 자리에 어깨를 들이밀 용기가 없었다.
내가 꺼내 앉아도 되는 자리인지
잘 모르겠던 때였다.
‘웰컴미술학원 강사 – 오쌤.’
이름표가 가슴에 붙던 순간,
나는 더 이상 학생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한 학생의 아그립바를 첨삭하던 날.
선은 틀려 있고, 비례는 흔들렸고, 명암도 엉켰다.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그러나 정확하게 말했다.
“여기선, 이 방향이 조금 더 좋을 것 같아.”
그 말이 내 안에서 울렸다.
“내가… 누군가에게 방향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구나.”
학원은 바빴다.
전시회를 준비하며 5호선 길동역까지 이젤을 나르던 날,
집에 가는 길에 혼자 맥주 한 캔을 털어 넣던 밤,
자전거로 학교까지 가겠다는 화실 형님의 허세에 웃었던 순간.
그 모든 장면 속에서
나는 여전히 어색하고, 조금은 외로웠다.
그러다 정말로 들렸다.
누군가의 목소리.
“오쌤!”
처음엔 대답하지 못했다.
너무 갑자기, 너무 낯선 이름이라서.
그 이름은 선생님들에게나 어울리는 말이었다.
아직 그만큼의 사람이 되었는지
스스로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름이란 게 이상하다.
부르는 사람의 마음이 얹히면
그 말이 갑자기 따뜻해진다.
그 이름 속에서
나는 아주 작은, 말 못 할 뭉클함을 느꼈다.
나는 아이들이 미래를 향해 나아갈 때
그 길을 밝히는 사람이고 싶었다.
비록 아직은 어색하고 서투른 ‘오쌤’이었지만,
그 이름은 어느새 나에게도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글/그림 : 오쌤
※ 이 글은 일기를 바탕으로, 제가 겪은 실제 경험과 기억을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묘사된 상황에는 개인적인 시선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음을 이해하며, 이 글이 상처가 아닌, 공감으로 닿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