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그림은 느리고, 손은 굼뜬데
나는 누군가의 길잡이가 될 수 있을까?
그게 늘 마음의 돌멩이처럼 걸려 있었다.
근데 이상하지.
그 학원으로 가는 발걸음만은 항상 가벼웠다.
제대 후라 손은 덜 풀렸는데, 말은 잘 나왔다.
몸은 녹슬었어도 마음은 열려 있었던 거다.
나는 다른 선생님들처럼 ‘와’ 하는 그림을 그리진 못했지만,
대신 보이는 구조, 가르칠 수 있는 체계가 있었다.
선생님으로 처음으로 맞이하는 아그립바 석고상.
그 녀석은 학생 때와는 다르게 보였다.
학생 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던 그 입체..
이제는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해석되었다.
그림을 그리다가 막힐 때 옆에 와서 슬쩍 묻는 아이들,
“샘, 잘 안돼요, 이거 왜 이렇게 되죠?”
그 질문이, 내 하루를 채워갔다.
밤엔 선생님들과 늦게까지 술자리를 가졌다.
학원의 미래를 걱정하는 김 선생님의 긴 한숨.
그 안에서 나는, 조금씩 이 선생님들 사이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원장님이 말했다.
“오쌤, 네가 학원 좀 맡아줄래?”
심장이 멎을 뻔했다.
그건 그저 ‘믿는다’는 말 이상의 의미였다.
나는 진심으로 이 학원을 생각하게 됐다.
단순히 먹고살기 위한 곳이 아니라,
학생과 선생이 함께 성장하는 학교.
사실 나는 다른 회화 전공 선생님들 보다는
멋진 그림을 그리지는 못했다. 대신 학원의 시스템을 설계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실수하지 않고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 무렵 나는 웹컴 미술학원 홈페이지도 게시하고,
입시생들을 위한 인터넷 온라인 강의 자료도 만들기 시작했다.
예비대학 프로그램, 모의 실기,
과거와 현재 그림을 비교한 시각적인 피드백.
“멋진 그림”이 아니라, 눈에 보이게 조금씩 발전하는 그림
“실행 가능한 그림”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나를 ‘오쌤’이라 불렀다.
그 이름이 좋아서,
나는 그 이름을 지금도 간직한다.
묵묵히 있으면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그렇게 믿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다르더라도 자신을 드러내는 것도 실력이다.
디자인이란 결국 사람을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걸 찾아서,
그걸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이어주는 일.
나는 이제야 안다.
그 시작이 바로 그때였다는 걸.
학생들이 “오쌤”이라는 주문으로 불러주었던
그 봄과 여름, 그리고 눈물 나던 겨울.
나는 그 안에서
‘교육자’로 살아가는 나를 꿈꾸고 그리기 시작했다.
글/그림 : 오쌤
※ 이 글은 일기를 바탕으로, 제가 겪은 실제 경험과 기억을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묘사된 상황에는 개인적인 시선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음을 이해하며, 이 글이 상처가 아닌, 공감으로 닿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