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복학생, 첫 실무에 뛰어들다

훈련은 다시 시작됐다

by 마음을 잇는 오쌤


군을 제대하고 미술학원 강사를 하며

아이들과 반년 넘게 함께했다.


그곳에서 얻은 별명, 오쌤.

나는 그 이름을 가슴 안쪽에 새겨두고 학원을 나왔다.

언젠가 다시, 좋은 인연으로 만나기를 바라면서.


아이들에겐 미안함이 남았고,

학원과 동료들에겐 분한 마음이 남았다.

감정은 정확히 반반이었다.









복학 전까지는 나는

실컷 늦잠을 자고, 밤늦게까지 놀았다.

눈치 볼 사람도 없었다.

지겨울 만큼 쉬었다.


그러다 3월,

다시 학교로 돌아갈 시간이 됐다.


강의실 문을 열자

생글생글한 신입생들 사이에서

나 혼자만 군내무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신입생들과 나는 달랐다.

군에서 배운 건 하나였다.

생존.


외모도, 태도도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거나 먹고, 아무 데서나 자고.


운동복 바지에 슬리퍼,

목엔 수건 하나.

화장실에서 대충 세수하고

그 얼굴로 수업에 들어갔다.


어느 날 후배가 말했다.



“선배, 거지 같은데요.”


웃겼다.

근데 사실이었다.

그때 나는 그냥

주변 시선 신경 안 쓰고 사는 중이었다.


사실 난느 복학하자마자

교수님 연구소 문을 두드렸다.




“배우고 싶습니다. 교수님”


그 말로

내 첫 실무가 시작됐다.


생애 처음으로 돈을 받는 디자인 일이었고,

운 좋게도 첫 프로젝트는

경찰청 시위진압 방패 디자인이었다.



막막했다.

국가 과제였고,

실사용을 전제로 한 공공 디자인이었다.

그래도 도망치고 싶진 않았다.


자료조사, 리서치, 프로토타이핑.

폼보드를 자르고 실에 매달아

방패의 곡면을 손으로 더듬으며 각을 잡았다.

선임이 정리한 보고서를 다시 다듬고

렌더링도 돌렸다.





밤 10시,

연구소 형광등 아래서

졸며 렌더링 바를 바라보던 날도 있었다.


대단한 역할은 아니었지만

실무를 가장 가까이서 봤고,

배웠고, 부딪쳤다.


두 권의 보고서와 시제품이 완성됐고

그 방패는 실제로 납품됐다.

지금도 현장에서 쓰이고

해외로도 수출됐다고 들었다.




좋은 의도를 담은 디자인이었지만

사람들이 보고 웃을 물건은 아니었다.

그건 그런 디자인 이었다.


그 묘한 감정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 무렵 나는

낮엔 수업을 듣고

밤엔 도면을 그리고

틈틈이 컴퓨터실 조교를 했다.

가끔은 라면에 술도 마셨다.




그래도

그렇게 돌아가는 하루가

싫지 않았다.


복학은

과거로의 복귀가 아니라

앞으로의 디자인 훈련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나는 처음으로 실무를 경험했고 알게 됐다.


디자인이란

사람을 관찰하고,

그들이 겪을 문제를

앞서 상상하고,

앞서 설계하는 일이라는 걸.


그 방패를 만들며 배운 것.

그리고 이후로도

계속 디자인을 붙잡고 살기로 마음먹은 것.


이때의 경험은

2026년 현재 나를 떠받치는

디자인의 바닥이 됐다.



글/그림 : 오쌤


※ 이 글은 일기를 바탕으로, 제가 겪은 실제 경험과 기억을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묘사된 상황에는 개인적인 시선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음을 이해하며, 이 글이 상처가 아닌, 공감으로 닿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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