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할 작물은 무엇인가?

재배작물 정하기와 배치도 그리기

by 라뮈씨

새해가 오면 새 달력을 마련한다. 제일 먼저 식구들의 생일과 기념일을 달력에 표시한다. 그리고 한 해 동안 할 일을 떠올려본다. 전체적으로 올 한 해는 어떤 흐름으로 살아야겠다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작심삼일 엔딩이 대부분이다.

나는 그다지 계획적인 사람이 아니다. 계획을 세우기는 하지만 내 입맛에 맞게, 또는 상황에 맞게 변경하는 것도 잘한다. 오히려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계획을 참고하여 새로운 일을 하는 편이다. 좋은 말로 융통성이 있는 것이고 안 좋은 말로 즉흥적인 사람이다. 그런 내가 도시농부가 되면서 조금 변한 것이 있다. 텃밭에 한해서는 계획을 조금 더 자세하게 세우고 지키려고 한다. 처음에 주말농장을 시작할 때 랜선스승님들께서 도움을 주시기를 작물을 어디에 어떻게 심을지 계획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제한된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말이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다. 실평수 5평도 안 되는 손바닥텃밭에 나의 욕망을 실현하려면 계획을 잘 짜야할 것 같았다. 그러나 실상은 처음이라 그런지 심고 싶은 게 너무나 많았고 모두 다 잘 키워보겠다는 야심이 컸다. 그래서 랜선스승님들의 조언에 따라 무슨 작물을 어디에, 어떻게 심을 것인가 디자인을 해 보기로 했다. 작물배치도를 그려보는 것이다.

농촌진흥청에서 소개한 여러가지 작물재배 디자인. 출처 - 농촌진흥청

농촌진흥청에서 소개한 여러가지 작물배치 디자인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봐도 모르겠다. 모르는 작물도 많고 뭘 어떻게 심으라는건지도 도무지 모르겠다. 에라, 모르겠다. 내 마음대로 심어보리라 생각했다.


우선 무엇을 심고 싶은지 먼저 적어 보았다. 감자, 오이, 호박, 토마토, 방울토마토, 당근, 상추, 쑥갓, 부추, 아욱, 당귀, 바질, 고수, 땅콩, 옥수수 그리고 메리골드. 이게 손바닥만한 텃밭에 다 들어갈까? 걱정이 되기는 했다. 다시 말하지만 내 텃밭은 실평수가 약 3.5 평정도이다. 이걸 다 심기 위해서는 디자인이 반드시 필요했다. 내 눈은 이글이글 이글아이로 변하고 내 마음속은 너울너울 욕망이 넘실거렸다. 후배가 하던 대로 한 두 개씩만 키우면 이 정도도 못 심겠나 싶었다. 내가 첫 번째로 꼽은 주말농장의 매력은 '다품종 소량생산'이니까.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어


나의 욕망과 현실을 잘 버무려 꼭 맞는 그림을 그려야 했다. 그런데 키우고 싶은 건 많고, 땅은 좁았다. 작물 심는 것보다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가 더 어렵고 고민되는 부분이었다. 넓은 땅에 농사짓는 사람들이야 무엇을 얼마큼 심든 상관없겠지만, 크기가 극도로 제한된 주말농장에서 다양하게 길러 먹기 위해서는 생육기간과 작물의 성질을 잘 따져서 작물 배치를 해야 한다. 함께 심으면 좋은 작물과 그렇지 못한 작물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물을 수확한 후에도 땅을 헛되이 놀리지 않고 최대한 활용하려면 미리 계획을 해 둬야 한다. 씨앗을 파종할 것인가, 모종을 구입할 것인가는 그다음 문제다. 그리고 작물의 크기에 따른 배치가 중요하였다. 모종이나 씨앗은 매우 작지만 작물이 다 자랐을 때의 크기를 생각하며 키가 큰 것은 북쪽에, 작은 것은 남쪽에 배치해야 된다. 작물 사이의 간격도 생각하며 배치해야 한다. 그래야 햇빛을 골고루 받을 수가 있다.


그리고 주말농장에서 작물을 심을 때에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이것은 나중에 텃밭관련 강의를 듣고 안 것인데 덩굴작물이나 키가 높은 작물은 주의해서 심어야 한다. 주말농장은 흡사 공동주택과 같다. 층간소음이 이웃을 불편하게 하듯, 내 작물이 너무 잘 자라서 옆 밭으로 넘어가면 불편한 경우가 발생한다. 특히 호박, 참외, 수박, 고구마 같은 덩굴작물의 경우, 자라는 대로 방치했다가는 덩굴손이 남의 밭작물에까지 뻗어나가서 성장을 방해할 수도 있다. 혹은 덩치가 너무 커져서 주변 밭에 그늘을 드리우게 하여 피해를 주기도 한다. 꼭 키워보고 싶다면 옆으로 퍼지지 않도록 망으로 가드를 설치하든지, 지주대를 세워 덩굴이 위쪽으로 자라도록 유도하는 등의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이것에 대한 자료들은 인터넷이나 유튜브 검색만 해보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숙지하고도 다섯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에 열 종류가 넘는 작물을 계획했다. 상추도 여러가지를 심었으니 각각으로 세면 더 될 것이다. 아 몰라, 간격이고 나발이고 심고 싶은 걸 몽땅 다 심었던 것이다. 욕망이 넘실대는 나의 밭. 인간의 욕심이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다 잘 자랄 수나 있을까?


(좌) 텃밭 전체 사진 (중) 1구역-땅콩 2종/토마토3종/오이2종 (우) 2구역


3구역에만 10종을 심었다.

봄 농사를 갈무리할 때쯤 그렇게 심은 작물 중 삼분의 일 정도만 제대로 수확하고 나서야 작물 간의 거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작물도 자기가 펼칠 세상이 충분해야지, 다른 작물과 간섭이 있으면 서로 못 자란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다. 책을 읽는 것도, 공부를 하는 것도 내가 하지 못한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자 하는 것일 텐데, 왜 직접 몸으로 경험을 해야만 더 깊이 깨닫는 것일까.


사람도 식물도 자기만의 '무대'가 있어야만 잘 자라는구나



욕망으로 이글대던 내 첫번째 봄농사는 다품종 소량생산이 아니라 다품종 극소량 생산이라는 결과를 주었다. 심지어 당근은 아예 수확도 하지 못했다. 아욱과 고수는 이쁘게 발아는 했지만 진딧물이 끌어넘쳐서 단 한 번 수확으로 끝났다. 너무 바짝 심었던 것이다. 또 어떤 작물은 수확은 하였지만 식구들의 기호에 맞지 않아 쓸쓸히 폐기되기도 했다.

이 글을 보는 초보농부 텃린이가 있다면 나와 같은 실수는 경험하지 말기를 바란다. 너무 궁금하다면 한 번 해 보는 것도 괜찮다. 경험은 힘이 세다. 실패의 경험일수록 그 영향력은 강력하다.


라뮈씨의 경험치가 또 하나 더해졌다.


<<다음에 계속>>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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