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농부의 텃밭 가꾸기 3
주민센터에 주말농장을 신청할 당시 자치센터에서 말하길 '텃밭교육'이 있을 것이라 했었다. 관공서에서 하는 일이니 이런 교육도 있구나 생각했었다. 농사에 대해 먼지만큼도 모르는 무지렁이에게 누군가가 농사지식을 알려준다는 건 사하라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 같은 절호의 기회였다. 한편으로는 말 그대로 구색이나 맞추는 '요식행위'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자치센터의 실수로 내 연락처가 누락되는 바람에 참석을 못할 뻔했다. 약간의 소란 후에 다행히 늦게나마 참석했다. '요식행위'라 하기엔 너무 고급 정보가 많았던 강의였다. 거기서 몇 종류의 씨앗을 얻었는데 그것이 궁금증의 시작이었다. '우리 동네 농약방에 가면 매년 봄마다 여러 가지 모종들을 파는데 저거 사다 심으면 되는 거 아냐?'라고 간단히 생각했다가도
'저 씨앗은 뭐지?'
'씨앗을 심어도 되는 거야?'
'씨앗으로 심는 게 있고, 모종으로 심는 게 따로 있단 말이야?'
'씨앗은 언제 뿌려?'
'모종은 언제 심어?'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었다.
우리가 텃밭에 심을 수 있는 모든 작물은 씨앗부터 시작한다. 모종도 육묘업자가 씨앗부터 싹 틔우고 길러낸 것이니까. 농사교육을 받으면서 감자나 고구마는 씨앗을 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대부분의 텃밭작물들은 씨앗부터 싹을 틔워 기른다. 씨앗으로만 키워야 되는 것, 모종으로만 키워야 되는 것이 따로 있지는 않다. 그러기에 텃밭농부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전문농업인처럼 대량으로 재배하는 것도 아니고, 또 그만한 지식도,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수량의 문제도 있지만 작물의 종류, 비용과 시간의 문제도 있다.
씨앗과 모종을 시간과 비용면에서 단순하게 비교를 해보았다. 씨앗은 작물에 따라 한 봉지에 수십 개에서 수천 개까지 들어있다. 모종 몇 개 사는 비용으로 비교적 많은 수량을 확보할 수가 있다. 물론 발아가 모두 성공하고 잘 자랐을 때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씨앗을 모종만 하게 키우기까지 최소 한 달에서 두달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발아한 모종이 튼튼한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한편, 모종은 개당 가격이 씨앗에 비해 비싸다. 그러나 전문 육묘업자가 육성한 만큼 튼튼하고 실한 것이 많다. 가장 큰 장점은 발아부터 모종만 하게 자랄 때까지의 시간과 노력이 생략된다. 모종값은 씨앗값에다 그 크기만큼 실하게 길러낸 값을 더한 것이다.
이 단순 비교를 가지고 전문농업인과 취미로 텃밭을 경작하는 도시농부와 비교를 해보았다. 전문농업인과 같이 농업이 직업이거나, 대량으로 재배하는 경우는 분명 모종보다는 씨앗이 비용이 적게 든다. 생업이기에 파종하는 일 또한 생산활동에 포함된다. 반면 주말농장을 경작하는 도시농부들은 다섯 평, 열 평 정도의 소규모 경작지를 가진다. 거기에 심을 수 있는 게 몇 개나 되겠는가? 텃밭 전체를 한 종류로만 심는 게 아닌 이상 대용량은 필요치 않다. 많아봐야 고작 열개 내외다. 제대로 된 육묘시설도 갖추지 못한 가정에서 파종을 해서 한 달여의 시간 동안 농약방에서 파는 모종처럼 키워낸다는 것은 쉽지는 않은 일이다. 발아온도를 맞추고 빛을 조절하느라 식물등을 켜고 끄고, 적당히 수분공급도 해야 하고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모종의 단가가 비싸더라도 이러한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모종을 사는 편이 훨씬 낫다.
그렇다면 도시농부들이 원하는 모종은 농약방에 다 있느냐? 그것은 아니다. 규모가 있고 수요가 있는 곳은 다양한 모종들을 판매한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모종도 갖추고 있는지는 살펴봐야 한다. 농약방에서는 대체로 수요가 어느 정도 있는 것들을 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몇 년 해 본 도시농부들은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작물들보다 판매하지 않는 어느 정도의 희소성이 있는 작물을 찾는 경향이 있다. 씨앗을 받아 이듬해 다시 씨앗을 파종할 수 있는 토종작물이나공심채나 패션푸룻(백향과)같이 외국에서 맛 본 적이 있는 것들이다. 아니면 신품종 작물들이거나. 이것이 인터넷 카페나 동호회 등에서 일정한 트렌드를 만들어 낸다. 이런 경우는 씨앗을 구해서 파종해서 키우는 수밖에 없다. 희소성 때문에 씨앗이나 모종 가격이 형성이 되어 있지도 않을뿐더러 모종이 있는 경우도 거의 없다. 내 인생 첫 번째 농사교육장에서 받은 씨앗은 청주오이, 사과참외, 그리고 땅콩이었다. 청주오이, 사과참외는 토종작물이라고 했는데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모종가게에서 본 적도 없고 씨앗은 더더군다나 본 적이 없는 것들이었다.
씨앗을 바로 밭에 파종해서 키워야 하는 작물도 있다. 주로 무나 당근 같은 뿌리채소들이다. 이들은 장소를 옮기면 결과가 별로 좋지 않다. 가끔 장갑처럼 생긴 무나 인삼처럼 배배 꼬인 당근을 볼 수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작물을 옮겨 심었거나 모종을 심은 경우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반대로 감자는 씨앗이 아닌 싹을 틔운 감자를 심는다. 고구마는 고구마 싹을 틔워 자란 가지가 자랐을 때 잎으로부터 5~6마디 이상 되는 부분을 잘라서 심는다. 부추는 씨앗대신 뿌리를 찢어서 심고, 쪽파는 마늘같이 생긴 종구라고 하는 쪽파대가리를 심는다. 이것들은 씨앗이라고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열매나 뿌리 자체가 씨앗 역할을 하니 파종이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혹여 도시농부가 실험정신이 강해서 작물의 한살이를 씨앗부터 보고 싶을 수도 있다. 직접 모종을 만들어서 키워보고 싶을 수도 있다.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그리고 발아가 엄청 쉬운 작물이 있다. 콩, 호박, 오이는 앞 구르기 하고 툭 던져도 발아가 잘 되었다.
씨앗파종과 모종, 어느 쪽을 선택하든지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심는 시기이다. 그것만 잘 지키면 절반은 성공이다. 지난 글에서 모종은 5월 5일 이후에 심는 게 좋다고 했었다. 그런데 농약방을 나가보면 3월 하순부터 별별 종류의 모종이 나 좀 데려가라고 풋풋한 연두색을 뽐내면서 손짓하고 있다. 주말농장에 가서 밭을 갈고 있다 보면 이웃들이 농장 개장하자마자 각종 모종을 갖다 심는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초보농부는 불안하다. 남들 다 심는데 나만 늦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함. 자칫 저 텃밭주인은 게을러서 아무것도 안 심고 놀고 있다는 오해를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다. 분명 교육시간에 오이, 토마토, 호박은 5월 상순에 심는 거라고 들어놓고 4월 중순에 모종 심은 이웃들을 보고 너무나 조바심이 났다. 4월 한 달은 거의 땅이 비어있으니 뭐라도 채워야만 할 것 같고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었다. 농약방에 물어봤다. 5월에 심는 게 왜 이렇게 일찍 나왔냐고. 사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3월 중순에 나오는 모종은 노지에 심는 도시농부의 몫이 아니다. 그것은 하우스를 가진 농부들 몫이다. 노지에 심는 도시농부들은 제발 어린이날 지나고 심으라고 했다. 4월 하순까지도 서리가 내리기에 그 추운 날씨에 어린 모종이 견딜 수가 없단다. 실제로 우리 주말농장의 발 빠른 도시농부들의 여리디 여린 모종은 4월 하순의 서리 한 방에 냉해를 입고 굿바이 엔딩을 맞았다.
씨앗이냐 모종이냐의 궁금증은 사실 삼 년차까지도 계속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 도시농부학교 과정을 수강하면서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나는 첫해에는 받은 씨앗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종을 샀고, 이듬해에는 씨앗과 모종의 비율이 반반이었다. 삼 년째였던 작년에는 토마토를 제외한 나머지 작물은 모두 집에서 모종을 길러 작물을 키웠고 올해는 고추를 제외한 나머지를 씨앗으로 파종하여 길렀다. 짧은 경험으로나마 파종만이 농사의 정도가 아니고, 모종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걸 느꼈다. 집안에 모종판을 늘어놓고 식물등 따로 시간 지켜서 비춰가며 관찰하는 것도 쉬운 일이 결코 아니었다. 재작년부터 올해 초까지는 언젠가 내 밭에 심는 작물의 모종값이 0 에 수렴하게 해보자는 게 목표였지만 내년에는 모종으로 살 수 있는 건 모종을 사는 것으로 선회하였다.
나의 결론은 이것이었다.
시중에 모종을 안 파는 작물, 발아가 잘 되는 작물은 씨앗 파종으로
쉽게 구할 수 있고 모종값이 저렴한 작물, 발아가 어려운 작물은 모종으로
도시농부를 부캐로 갖고 있는 어느 교수님은 복잡한 세상 더 복잡하게 살지 말고 편하게 농사짓자고 했다. 생업이 아닌 취미로서의 농사를 전문농업인들처럼 하게 되면 금방 지친다고. 그 말에 백번 동감한다. 취미는 고통보다는 즐거움이 커야 오래 할 수 있다. 모종을 집에서 키워보니 키우는 값보다 사는 값이 훨씬 덜 드는 것 같다. 어렵사리 구해서 발아부터 시킨 작물인데 의외로 맛이 별로일 수도 있다. 온갖 귀찮음을 견뎌가며 모종을 냈는데 밭에 적응을 못하고 죽어버리면 진짜 내가 왜 이른 봄부터 이 고생을 했나 후회가 밀려올 수도 있다. 실패한 경험도 값지고 귀하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취미생활인데 성공의 경험이 더 기회비용이 크지 않을까? 나의 시간과 노력과 비용은 한정적이니까.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상추나 토마토, 고추 같은 작물은 모종을 사다 키우는 것이 훨씬 낫다. 상추 모종은 흔하기도 하지만 가장 큰 장점은 모종을 심고 한달 이내에 수확이 가능하다. 그러나 파종을 하면 약 두 달 정도를 기다려야 수확할 수 있다. 토마토나 고추는 발아는 잘 되나 거의 두 달을 꽉 채울만큼 더디게 자라기 때문에 좋은 모종을 골라서 심는 게 더 낫다. 발아 온도를 맞추는 것도 어렵고, 겨우 발아에 성공한 것도 본 잎을 틔우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요즘 말로 '복세편살'이라는 게 있다.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농사는 하늘의 이치에 맞게 짓는다던가 건강한 먹거리의 생산이라든가 하는 거룩한 본질을 폄훼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취미농부니까 농사를 대충 짓자, 흉내만 내자는 게 결코 아니다. 농사 본연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문명의 이기를 적절히 이용하자는 것이다. 비록 모종을 사다 키운다 하더라도 모종을 키워 결실을 보는 것은 취미농부라도 농부가 할 일이다. 모종을 사다 키운 작물이라도 씨앗부터 키운 작물에 비하여 그 노력이 작지 않다. 씨앗부터 키우지 않았더라도 내 밭의 작물은 다 귀한 내 새끼이므로.
그래서, 씨앗 파종과 모종 심기. 당신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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