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워녕 Jul 19. 2023

지난 1년이 쌓여, 오늘

기도와 다짐과 용기 


 브런치에 1년 만에 글을 씁니다.


 (사실, 작가의 서랍에는 간간이 조각조각 써넣은 글들이 있지만, 차마 그 글을 확장하고 다듬지 못해 발행하지는 못했네요. 오늘 그 몇몇 조각들을 듬성듬성 이어 붙여 조심스럽게 발행을 눌러봅니다. 그동안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속으로 응원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것 또한 다 알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감사감사합니다!)






 많은 일이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나는 나의 첫 가게를 정리했고, 새로운 가게를 열었다. 일련의 과정은 온갖 감정과 느낌이 뒤죽박죽 된 상태로 진행되었다. 슬픔과 아련함과 개운함과 설렘과 부담과 기대감이 한데 모였다. 안 그래도 "지금 기분이 어때?"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 어려운 나는, 정말 이게 무슨 기분인지 알 수도 없었고 표현할 수도 없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하고 울컥울컥 인사를 했고 "안녕하세요!" 하고 또 손님을 만나고 있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2022년의 여름은 드디어 끝이 났고, 현재는 2023년 검은 토끼해를 살아내고 있다.




 결혼한 지 1년이 넘었다.




 아빠가 타던 2007년식 그랜저를 타고 다니다가, 새 차를 샀다. 정확히는 중고차를 샀다. 2007년식보다는 새 차인 검은색 중형 suv에, 큰 부담되지 않는 가격선에서, 기왕이면 예쁘고 멋있었으면 했는데, 딱 그런 차를 샀다.





 새로운 카페는 에스프레소바다. 제대로 된 에스프레소, 제대로 된 커피를 내리려고 노력한다. 감사하게도 남편은 커피대회에서 계속해서 상을 받아오고 있다. 매일 오는 손님들도 있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다. 친구들을 데리고 다시 오는 손님도 있고 가족들을 데리고 또 찾아오는 손님도 있다. 매장 인테리어의 완성은 손님들이다. 손님들의 모습과 분위기가 매장의 분위기를 만든다.  




 남편과 단둘이 연인처럼 친구처럼 알콩달콩 지내는 것도 좋지만, 나의 가족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내게 있어 아빠는 가장 좋은 친구였고, 아빠에게도 내가 가장 좋은 친구였다. 이젠 나도 그런 작은 친구가 한 명 있었으면 했다.


 물론, 어쩌면 나와 엄마처럼 매우 안 친해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내가 엄마에게 작은 힘이 되었고, 엄마 나에게 작은 힘이 되었던 것은 맞다.


 작은 친구든, 작은 힘이든. 그래, 그렇게 작은 아이가 있었으면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포르셰의 카이엔을 좋아했고, 남편은 포르셰의 파나메라를 좋아했다.


 포르셰는 예쁘긴 해도, 이동수단으로써의 차로 선택할 때는 그 가치가 현저히 떨어진다고 한다. 포르셰를 타는 이유는 단 하나, '포르셰이기 때문'이라고. 그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많은 것들을 감수하고 타야 한다고 한다.

 차값도 비싸고, 유지비용도 많이 든다. 보험료도 비싸고, 그렇다고 연비가 좋은 것도 아니다. 정비 한 번 받으려면 꽤 많은 돈이 들고, 수리 한 번 받으려면 더 많은 돈이 든다. 돈도 돈이지만 시간도 많이 든다. 정비센터는 전국에 몇 군데 없어서 일부러 먼 곳까지 시간 내서 예약하고 갔는데 막상 수리하는 데 걸리는 기간만 몇 달이라는 이야기는 너무 흔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안정감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의 이 복잡한 도심 한복판에서 부왕 하고 속도 내며 탈 수도 없는 일이다. 테슬라의 자율주행기능처럼 어떤 특별한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통장에 몇십억, 몇백억씩 쌓아두고 사는 사람이 세컨드카로 두려는 게 아니라면, 이동수단으로써의 차를 구매할 때 포르셰를 선택한다는 것은 용기라고 했다. 용기 있는 자가 포르셰를 산다고 했다.




 아기를 낳아 키울 생각을 하면서 '이건 포르셰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억지로 포르셰를 구매할 수도 있지만 굳이 꼭 그럴 필요는 없는 것처럼, 억지로 억지로 아기를 낳아 키울 수도 있지만 이 험한 세상에서 굳이 꼭 그럴 필요도 없는 게 아닐까. 포르셰가 주는 기쁨보다 아기가 주는 기쁨이 더 크겠지만, 아기를 키우려면 포르셰보다 더 많은 것들을 감수해야 했다. 


 돌봄을 기대할 부모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육아휴직을 받아 푹 쉬면서 아이를 돌볼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나는 밖으로 나가 가게 문을 열고 일을 해야 하고, 아기를 봐줄 사람은 없다.

 



 또 여름이 되었다.


 작년 여름은 너무 길어서 언제 끝나나 싶었는데 이번 여름은 어떨지 모르겠다. 바라기는, 크게 힘들이지 않는 여름이었으면 한다.




 아기가 생겼다.


 임신테스트기의 희미한 두 선을 보며 이게 매직아이인지 아닌지를 분간하던 그 순간부터, 병원에서 초음파로 조그만 점 같은 아기집을 확인하는 순간까지, 엄청난 감동이 물밀듯 밀려왔다. 이보다 큰 감동이 또 있을까. 나의 아기라니. 내가 엄마가 된다니.


 동시에 딱 그 감동만큼의 엄청난 걱정이 물밀듯 밀려왔다. 어쩌지. 어떡하면 좋지.




<유 퀴즈 온 더 블록 138회 중>



 유퀴즈에 출연하신 서울대병원 산부인과의 전종관 교수님은, 태교는 과학적 근거가 없고, 안 해도 되는 거라고 했다. 예전에는 그 말을 듣고 '아, 태교는 굳이 할 필요 없는 거구나'하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그 말이 들린다. '아, 정말 힘들어 하는 엄마들이 많았구나. 특히 아이로 향한 걱정과 죄책감으로 힘들어하는 임산부들이 너무 많았구나.' 그러니까, 교수님의 그런 말은, 아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엄마들이 본능적으로 갖는 당연한 걱정과 미안함과 죄책감을 달래주는 말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 겨우 아기집만 간신히 확인한 임신 5주 차인데, 아이가 생긴 것만으로도 걱정이 한가득이고, 그 걱정을 하다 보면 이 걱정을 하는 나 스스로가 아이에게 미안해진다. '아기가 생긴 것만으로 기뻐하고 좋아하기만 해야지, 걱정이라니. 나의 이 불안과 우울감을 아기도 고스란히 느낄 텐데. 미안해 미안해.'

 그런데 심지어 만약 아이가 잘못되거나, 태어났는데 아프다거나 하면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질지. 무너진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무너지고 무너지겠지. 그래서 교수님은 아마 저런 말씀을 하셨나 보다.


"엄마가 누워있더라도 유산될 애는 되고 매일 돌아다녀도 안 될 애는 안 된다" 

"일하는 여성들, 태교 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태교를 못 한다고) 죄책감까지 느낀다” 

“더 큰 문제는 아기가 이상이 생겼을 때 ‘태교를 못해서 그런 거 아니냐’라고 얘기할 수도 있다" 

"태교를 했을 때 정말 아이들이 좋아지는지 증거가 없다"


 그러니, 그런 생각하지 말고, 엄마 스스로 행복하고 행복해라.




 그래서 나는 기도하고 기도한다.

 나의 삶이 즐겁고 행복하길. 그래서 아기를 충분히 축복하고 축복하길.

 아기가 나에게 준 감동보다 훨씬 큰 감동으로 아기를 사랑하고 지켜내길.  


 용기를 내본다. 




 집에는 말 많은 고양이가 함께 지내고 있다. 집에 돌아오면 고양이가 '야옹야옹' 한다. 그러면 나는 '아, 내가 집에 왔구나' 한다. 지난주에는 고양이 미용을 하고 왔다. 털복숭이 고양이가 벌거숭이 고양이가 되었다. 아기가 생긴 걸 아는지, 자고 있는 내 옆에 와서 드러누워 같이 잔다. 




 만족이 없으면 감사할 수 없다.


 만족했다 해서 안주하는 것은 문제가 되겠지만, 어느 정도의 만족은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주위에 감사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든다. 이 여유는 하나의 힘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힘, 그리고 나아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힘.


 나는 만족으로부터 힘을 얻는 사람이다. 다행히, 나는 크고 작은 많은 것들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고, 나의 주위에는 감사할 것들이 넘치고 넘쳐난다. 내 카페가 가장 좋고, 내 차가 제일 예쁘다. 내 고양이가 가장 귀엽고, 내 남편이 가장 다정하다. 나만의 편협한 만족일 수도 있으나, 뭐 어때. 내가 좋으면 됐지.




 감사다. 감사뿐이다. 오늘도.

 감사할 줄 아는 내가 좋다. 감사하다. 감사할 수 있으니 또 감사하다.


 나는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임밍아웃을 합니다. 허허허

오늘 병원에서 두 번째 진료를 받고 왔어요. 

아기 형태를 보고 아기 심장소리를 들었어요. 

아기는 너무 조그맣고 희미한데 심장이 쿵쿵 뛰네요.

신기해라. 눈물이 펑펑 났어요. 


저희 아기 보여드리며 마칩니다.

혹시 아주 잠깐의 시간이 있으시다면, 아기가 건강하고 튼튼하게 잘 자랄 수 있길, 그리고 세상의 사랑을 받고 감동을 주는 삶을 살길 함께 기도해 주세요. 저는 용기 있는 엄마가 되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안심의 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