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녹이는 말
치과에 갔다. 진료 순서를 기다리며 소파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진료실에서 앳된 얼굴의 여학생이 나왔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그 학생은 조금 지친 기색이었다. 그 학생은 밖으로 나오며 누군가를 찾았다. 친구와 함께 온 모양이었다. 내 옆에서 앉아 핸드폰을 하던 그 학생이었다. 기다리던 친구는 드디어 진료를 마치고 나온 친구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보고 싶었어!" 그러자 진료를 마치고 나온 학생은 이렇게 답했다. "나도!"
내가 다니는 그 치과는 동네 치과다. 규모도 별로 크지 않은 그곳에 몇 년째 계속 다니는 이유는 진료가 지나치게 꼼꼼하고, 모든 치료가 다 끝난 이후에도 어떻게든 책임을 져주려고 하며 귀찮게 하는 느낌이 좋아서였다. 그러다 보니 한 사람당 진료시간이 꽤 긴 편이었는데, 아마 그날 그 학생도 한 시간 정도 붙잡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진료를 받는 친구는 꼼짝없이 한 시간 동안 치과 진료의자에 누워있었고, 기다리던 친구는 꼼짝없이 한 시간을 그저 기다린 셈인데, 둘 다 얼마나 힘들고 지루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세상에! "보고 싶었어"라니! "나도"라니!
같은 말이라도 더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똑같은 말이라도 훨씬 더 듣기 좋게 하는 사람이 있다. 억지로 돌려 말하는 게 아니다. 포인트는 '이만큼 내가 힘들었다'가 아니라 '너를 보니 좋구나'이다. 똑같은 말이라도 '지겨워 죽는 줄 알았네'라고 말했을 때와 '보고 싶었어'라는 말을 했을 때는 주변 공기가 달라진다.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감정에 솔직하므로 용감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도 생각할 수 있으므로 지혜롭다.
나는 참 훌륭한 파트너와 함께 일을 한 적이 있다. 그 사람과 일을 하면서 일처리에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완벽히 빨리 해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싸울 때 서로 기분 상하지 않게 싸우는 법도 배웠다. 의견이 다른 경우에 자기 의견을 똑바로 주장하면서 상대방의 의견을 어떻게 존중하는지를 그 파트너와 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우리는 자유롭게 일하는 가운데 하나의 규칙을 두었는데, 바로 '다운(down)은 한 사람만'이라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다운(down)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함께 진행하던 일이 잘 안 풀려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 오거나, 아예 취소되는 일이 생기면 우리는 함께 괴로울 수밖에 없다. 일을 하다 보면 당연히 같이 지쳐가고, 화나고 짜증 나는 일은 비일비재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철저히 이 룰을 지켰다. '다운(down)은 한 사람만'.
파트너로 일을 하다 보면 당연히 하루 종일 붙어 앉아서 같은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면 상대방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빤히 읽힌다. 몇 가지 프로젝트가 한꺼번에 몰려 있을 때 상대방이 어떤 순서로 일을 하려고 하는지, 어디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감정이 나에게로 옮기도 한다.
그래서 파트너로 일을 할 때는 서로의 기분과 감정이 정말 중요하다. 파트너가 속상해하면, 세세한 내용을 몰라도 같이 속상해지는 것이다. 어떤 모욕적인 말을 들었는지, 어떤 비난을 받았는지 따로 말해주지는 않지만, 그가 속상한 그 느낌이 나에게도 옮는다.
어떤 거래처는 아주 기분 나쁘게 전화통화를 하는 걸로 유명했다.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기분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그 지저분한 여운에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건 시간이 지난다고 괜찮아지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기분은 점점 더 안으로 파고드는 경향이 있어서 사람을 점점 더 침울하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날 그곳과 또 전화통화를 해야 했으니까.
바로 이때, '다운은 한 사람만'이라는 우리의 룰은 참 바람직한 것이었다. 한 사람이 다운되어 있을 때, 다른 한 사람은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기분 풀어"와 같은 아무 소용없는 말도, "괜찮아?"와 같은 직접적인 위로도 하지 않았다. 그런 말은 파트너가 함께 다운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다운되었을 때, 다른 사람은 그로 인해 어떤 영향도 받아서는 안된다. 내가 잠시 멍하니 있어도 파트너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을 해야 한다. 내 파트너는 정말 괜찮은 파트너였어서, 그때 내 앞으로 걸려온 전화를 대신 받아 "담당자가 잠시 후 전화드릴 수 있도록 메모 남겨놓겠습니다"라고 해주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무심하게 했다. "Jason Mraz 노래 너무 좋지 않아?" 같은 이야기들. 덕분에 나는 그 사람이 어떤 것들을 좋아하는지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노래, 좋아하는 색깔, 좋아하는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밑도 끝도 없이 "난 배스킨라빈스에 가서도 바닐라 아이스크림만 먹어."와 같은 황당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나는 레인보우 샤베트를 좋아한다는 그런 말들.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는 조금씩 업(up)되었다. 우리는 다시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날, 그 기분 나쁜 거래처와 또 전화통화를 해야 했는데, 내 파트너가 몇 시에 전화할 거냐고 물어봤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니 한 시간쯤 후에 할 거라고 했던 것 같다. 파트너는 금방 돌아오겠다며 외투를 챙겨 나가더니 배스킨라빈스 특유의 핑크색 종이 봉투를 들고 나타났다. 봉투 안에는 (무려) 쿼터사이즈의 아이스크림 2통이 들어있었다. (패밀리 사이즈로 사려다가 아무래도 그건 너무 큰 것 같아서 쿼터를 샀단다.) 한 통에는 바닐라만 가득했고, 다른 한 통에는 레인보우 샤베트만 가득했다. 무슨 이런 극단적인 사람이 다 있나 싶어 식겁했다. 파트너는 일단 반만 먹자고 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각자 한 통씩 끌어안고 아이스크림을 반씩 퍼먹었다. 그리고 나는 그 거래처와 전화통화를 했고, 또 기분이 다운되었는데, 그러자 파트너는 남은 아이스크림이나 먹자고 했다. 우리는 또 각자 한 통씩 끌어안고 남은 아이스크림을 퍼먹었다. 그 거래처 욕을 실컷 할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그저 각자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나 실컷 퍼먹었다.
그런 걸로 나를 달래려고 한 그 사람과, 그런 걸로 정말 달래진 나. 우리는 참 괜찮은 파트너였다. 난 지금도 배스킨라빈스에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볼 때면 그 사람이 생각난다. 도대체 그 사람은 그 많고 많은 아이스크림들 사이에서 왜 꼭 바닐라 아이스크림만 좋아했는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상황을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술술 말하는 것만으로도 분위기를 주도할 수 있다. '좋다'는 말은 묘한 힘이 있어서 그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좋은 기분'에 둘러싸이게 하기 때문이다. 내 파트너가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술술 말하면서 나의 분위기까지 이끌어주었던 것처럼.
그래서 '좋음'은 힘이다. 종류는 상관없다. 그게 무엇이든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강하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내면의 깊은 어둠 속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있고, "나는 이런 게 좋아"라고 말하는 순간 주변의 공기를 바꿀 수 있다.
좋아하는 마음을 속으로 삼키지 않는 사람은 매력적이다. 좋음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사람은 사랑스럽고, 심지어 섹시하다. 더군다나, 그 '좋음'이 나 때문이라면, 녹아내릴 수밖에. '당신 때문에 내가 너무나 좋습니다'라는 메시지를 표현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보고 싶었다'는 말을 들으면 나는 녹는다.
우리 집 치와와랑 하루에 한두 번 치와와 타임을 갖는다. 애정 듬뿍 시간이다. 그 시간은 나도 귀찮지 않고 치와와도 귀찮지 않은 시간이어야 한다. 우리는 그 시간에 쏟을 애정을 쏟고 받을 애정을 받는다. 치와와는 이때 미친듯한 애정을 쏟아내는데, 그 애정에는 망설임이 없다. "좋아해! 좋아한다고!" 하며 자기의 모든 에너지와 힘을 다해 온 몸으로 나를 애정한다. (그래서 사실, 나는 이 시간이 좀 부담스럽다.)
이 치와와 타임은 내가 함부로 끝낼 수 없다. 오죽하면 '치와와 타임'이다. 치와와는 이 시간만큼은 나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내가 "자, 이제 그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몸을 돌려도 치와와는 계속 달려든다. 내가 "제발 그만, 그만하면 안 될까?"라고 아무리 애원해도 치와와는 멈추지 않는다. 너는 너무 열정적이라고, 사람이 밀당도 좀 하고 그래야지 이러면 금방 질린다고 내가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없다. 치와와는 오늘만 사는 것처럼 나를 애정한다.
마침내 그 시간이 끝나고 나면 치와와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개인 시간을 가지러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데, 이때 뒤돌아 걷는 치와와의 엉덩이는 무척 매력적이다. 이 매력은 질리지 않는다. 밀당 따위 하지 않는 치와와라서 기특하다.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좋다니 좋구먼.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치와와는 벌떡 일어나 나를 반긴다. 아니, 무슨, 쓰레기만 버리고 5분도 안되어 집에 돌아왔는데도 치와와는 소리소리 지르며 나를 반긴다. "보고 싶었잖아! 보고 싶었다고!" 나는 녹아내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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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집에 돌아오는 길에 10살쯤 되어 보이는 어떤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자기 집으로 달려 들어가며 "엄마가 해준 밥이 어어~얼마나 맛있게요!"라고 소리쳤다. 곧이어 열리는 문틈으로 보이는 엄마의 환한 얼굴. "좋다니, 좋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