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부터 우리 집에는 치와와 한 마리가 있다.
우리는 참 많은 일을 함께 겪었다. 내가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그리고 졸업 후 1년이 넘는 외국 생활을 두 번 하고 돌아오는 동안 우리 집에는 이 치와와가 있었다. 이후 우리는 집을 두 번 이사했고, 가족들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근데 사실, 이 치와와는 좀 이상하다.
우리 집 치와와는 개인생활이 중요한 치와와다. 다른 강아지들은 하도 앵겨붙어서 내가 귀찮아할 때가 대부분이었지만, 이 치와와는 내가 건드리는걸 귀찮아할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 산다. 이 치와와는 나에게 애견도 아니고, 반려견은 더더욱 아니다. '동거견' 정도면 적절하다.
우리는 하루 종일 서로 끌어안고 부비부비 하는 사이가 아니다. 그런 건 하루에 한 번이면 된다. 작년에는 이 치와와와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작가가 억지로 그런 장면을 연출하려고 하자 나는 정색하며 말했다. "그냥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으로 찍어주세요. 그거면 충분해요."
치와와는 무척 예민해서 보통은 깊게 잠들지 않지만 가끔 침대에서 함께 잘 때면 깊게 잔다. 그럴 때 치와와는 굳이 이불 위에서 이불을 깔고 자는데 그게 더 폭신하기 때문이다. 같이 자더라도 서로 끌어안고 아름답게 자는 일은 없다.
이불을 덮고 있는 나로서는 무거워진 이불 때문에 잠을 깨기 일쑤다. 그러다 아주 가끔, 한 번씩 새벽에 잠이 깬 내가 "야, 너 좀 일어나! 너가 그러고 자니까 내가 잘 수가 없어!"라고 하고 치와와를 내가 바닥에 내려놓으면 그때부터 전쟁이 시작된다. 치와와로써는 자다가 봉변을 당한 셈이니까. 폭신한 이불에서 꿀잠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기를 깨우고 내치다니! 치와와는 밤새 온갖 짜증을 다 발산한다. 나는 결국 한 잠도 자지 못한 채 밤을 꼬박 새운다. 잠자는 치와와를 깨우면 이렇게 된다.
도대체 내가 강아지를 키우는 건지, 얹혀사는 동거인이 한 명 있는 건지 모르겠는 이상한 기분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이런 치와와라도, 그래도 '강아지는 강아지구나' 싶을 때가 있다.
매일 똑같은 밥을 먹으면서도 어쩜 그렇게도 밥이 맛있는지. 밥을 먹는 치와와에게 "맛있어? 입맛에 맞아?"라고 물어보면 치와와는 쉬지 않고 입을 오물거리면서 "뭐지? 뭔데 이렇게 맛있지?"라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곤 한다. 내 짧은 소견에는 너무 맨날 똑같은 밥만 먹는 것 같아 가끔 통조림이라도 까서 주면 치와와는 "이건 또 뭐지? 뭔데 또 이렇게 맛있지?" 하며 허겁지겁 먹는다. 다음날 다시 원래 먹던 밥을 다시 주면서 "오늘은 그냥 밥이야. 통조림은 나중에 또 줄게"하며 미안해하면 치와와는 "응. 근데 이거 진짜 맛있는데?" 하며 또 정신없이 먹는다.
개들은 잘 때 죽은 듯 잡니다. 눈을 뜨면 해가 떠있는 사실에 놀라요. 밥을 먹을 때에는 '세상에나! 나에게 밥이 있다니!'하고 먹습니다. 산책을 나가면 온 세상을 가진 듯 뛰어다녀요.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다시 자요. 그리고 다시 눈을 뜨죠. '우와, 해가 떠있어!' 다시 놀라는 겁니다.
- 박웅현, <여덟 단어>
강아지가 귀여운 이유는 단순히 인형처럼 생겨서는 아닐 것이다. 인형처럼 생겨서 귀여운 거라면 집에 인형을 두면 될 일이다. 강아지가 귀여운 이유는 신기해할 줄 알고 감탄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것도 매일.
우리 집 치와와는 꽤 귀엽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아기가 귀여운 이유도 이런 맥락인 것 같다. 어떤 아기는 (미안하지만) 참 안 예쁘게 생겼는데, 귀엽긴 하다. 아기는 늘 신기해하고, 늘 감탄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닌 물병을 보고도 신기해 어쩔 줄 몰라하고,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면 크게 감명한다. 아기는 나의 표정 하나, 손짓 하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기는 단지 자기 눈 앞의 세계를 즐기고 있는 듯했다. 아기에게 중요한 건 자기 눈 앞에 있는 세계일 뿐이었다. 놀라움으로 가득 찬 세계였다. 아기는 자기 스스로 '아기'라는 생각이 없었다. 내가 나라는 생각, 나에게 가득 차 있는 '나'의 이미지. 아기에게는 자기에 대한 생각이 없어서 자신이 지금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가 이루고 싶은 뭔가를 위해 틀어박혀 있지도 않았고, 지금 내가 이럴 때가 아니라며 마음을 다잡지도, 내일은 더 멋진 해온이가 되어야지 다짐하지도 않았다. 아기는 지금만을 살고 있었다.
- 여란지의 브런치 <엄마 된 지 1년> 중에서
아기가 "옆집 아기는 이런 거 안 무서워하던데 왜 나는 이런 게 무섭지..." 이런 식으로 자책하는 것을 본 적 없다. 또 아기가 "난 왜 이런 걸 무서워하는 성격일까"라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도 본 적이 없다. 어쨌든 아기는 자기에 대해서 별 생각을 하지 않는다. (...) 나는 사소한 것에 소스라치게 놀랐다가 사소한 것에 경기 일으키면서 웃는 우리 아기가 (제일) 좋다. 사소한 것에 놀랐다며 고민하는 아기 말고, 경박하게 경기 일으키며 웃었다고 후회하는 아기 말고 말이다.
- 여란지의 브런치 <나에 대해 고민하지 않기> 중에서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 있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표현할 줄 알고, 감동하고 환호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사람. 기쁠 때 기뻐하고, 즐거움을 즐기는 사람. 더할 나위 없이 반가워하고, 극진하게 고마워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귀엽다.
모름지기 사람은 일단 귀여워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뛰어난 능력을 갖추는 건 그다음이다. 귀여움을 장착한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은 환히 빛난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귀여운 문제는 나이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나이가 어려도 징그러운 사람이 있고, 나이가 많아도 귀여운 사람이 있다. 가끔 어떤 할머니는 매우 귀여우신데, 뭐 때문에 이렇게 귀엽게 느껴지는 건가 하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바로 그런 이유다. 몇십 년씩 세상을 살았으면 더 이상 놀랄 일이 없을 것 같은데도, 늘 신기해하고 감탄하신다.
와카미야 마사코 할머니는 82세 때 아이폰 게임 앱을 개발한 할머니다. 컴퓨터를 시작한 이유는 '컴퓨터가 있으면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많은 사람과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솔깃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계 최고령 앱 개발자', '노인들의 스티브 잡스', '100세 시대 롤모델' 등의 말보다는 '마짱'이라고 불리고 싶다는 이 귀여운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뭔가에 감동하거나 놀라는 순간을 소중히 하자."
'어머니 돌보기와 수다 떨기, 둘 다 하고 싶어'라는 소망 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던 3개월이라는 고난의 기간을 거치고나니 저를 맞이해준 것은, 컴퓨터 화면에 커다랗게 찍힌 "마짱, 환영합니다"라는 문장이었습니다. 지금도 처음 그 문장을 본 순간의 감동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어요.
- 와카미야 마사코, <나이 들수록 인생이 점점 재밌어지네요>
최근 1년의 나는 주로 좋은 글귀를 보았을 때, 그리고 좋은 노래를 들었을 때 울었다. 슬플 때와 우울할 때는 오히려 눈물이 나지 않았던 것 같다. 한 문장, 한 마디 멜로디가 내 마음에 훅 들어오면 나는 일순간 '일시정지'된다. 나를 둘러싼 모든 공기가 잠시 멈춘다. 눈도 깜박이지 못한다. 나는 숨 쉬는 걸 잊는다.
책을 보다 말고 일시정지, 음악을 듣다 말고 일시정지되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그런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는 게 최근 1년간의 나의 자랑이다.
그렇게 '일시정지'되는 순간을 그냥 지나쳐 보내기 아까워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조그만 노트를 따로 하나 마련했다. 글을 적어두고, 음악도 적어둔다. 그렇게 일기 아닌 일기를 쓰면서 내 주위 공기를 가득 채웠던 그 감동들을 챙겨둔다.
시간의 흐름이나 돈의 흐름이 아닌, 감동의 흐름으로 기록되는 나의 하루들은 그 자체로 또 감동이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지?', '그날 내가 얼마나 쓰고 얼마나 벌었지?'가 아닌 '그날 무슨 감동이 있었지?'로 떠올려보는 나의 하루들. 그 감동을 떠올려보는 것만으로 나의 지나간 시간들은 오색찬란해진다.
그때의 감동이 지금 또 감동이 되는 건 더없는 축복이다. 그때 나를 '일시정지'시켰던 책과 음악이 나를 다시 또 '일시정지' 시키다니.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꿈은 책방 할머니가 되는 것이었다. 내가 보고 싶은 책을 내 공간에 가져다 놓고, 내가 재밌었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주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시간과 공간을 내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채우는 것. 그 꿈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는 지금도 책방 할머니가 되고 싶다. 이 꿈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꿈이다. 일단 할머니가 되어야 하니까.
나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책이 재밌었으면 좋겠다. 돋보기를 낀 채 '아니,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하고 재밌게 책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책을 보고 늘 감동하고 놀랐으면 좋겠다. '이건 이래서 이렇게 된 거겠지, 뻔하네'하고 구태의연하게 반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계속 '일시정지'되느라 책 한 권을 끝까지 보는데 오래 걸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좋은 책이 앞으로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재밌게 봤던 책을 다시 보면서 또 재밌어했으면 좋겠다. 밑줄도 치고 따로 기록도 해 놓았던 구절들을 보면서 다시 또 밑줄을 긋고 싶어 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여러 번 본 책들이 파랗고 빨간 밑줄들로 채워졌으면 좋겠다. 손때 묻어 너덜너덜해진 책은 내 짙은 감동의 흔적이다.
책을 읽다 보면 그 책 속에서 또 다른 책을 발견한다. 전에 봤던 책을 떠올리기도 하고, 새롭게 보고 싶은 책이 떠오르기도 한다. SNS를 타고 타고 돌아다니는 것처럼 책을 타고 타고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책을 사고, 본다. 내 안에는 책이 쌓인다. 이렇게 10년, 20년, 30년이 흘러 쌓이면 내 안에 얼마나 많은 책이 쌓일지. 할머니의 스펙트럼! 너무 멋지다. 어서 할머니가 되었으면.
할머니가 되어서도 새로운 노래를 듣고 몸을 들썩일 수 있으면 좋겠다. 최신 음악을 들으면서 '아니, 이렇게 좋은 노래가 있다니!'하고 흥분했으면 좋겠다. 새롭게 알게 된 새로운 가수의 모든 곡들을 찾아 들으면서 콩닥콩닥 사랑에 빠졌으면 좋겠다. 한 줄 한 줄의 가사를 정성껏 기록하면서 줄줄 울었으면 좋겠다. 눈물이 말라 쭈글쭈글해진 노트는 내 황홀한 사랑의 흔적이다.
새로운 노래를 들으면서, 가끔씩은, 지나간 노래들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난 때때로 특정 노래를 들으면서 전혀 다른 노래를 연상하는 이상한 재주가 있는데, 잔나비를 들으면서 이문세를 떠올렸고, 혁오밴드를 들으면서 Adele을 떠올렸다. 장범준의 노래들을 연속해서 들으면서는 넬(NELL)이 떠올랐고, 최근 너무나 사랑하게 된 모브닝(MOVNING)을 들으면서는 김동률이 떠올랐다. '대체 왜?' 싶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랬다. 나의 이상한 감성이다.
덕분에 여러 음악들이 한 번에 내 온몸을 관통하는 것 같을 때가 종종 있다. 이 버라이어티한 나만의 음악세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버라이어티해진다. 듣는 음악이 점점 많아지니까. 이렇게 시간이 흘러 할머니가 되면, 나의 음악세계는 얼마나 다채로워질지. 어서 할머니가 되었으면.
(얼마 전 모브닝이란 밴드의 노래를 우연찮게 들었는데 풍부한 음악과 피아노에 1차 일시정지, 손끝 발끝까지 채우는 리듬과 에너지에 2차 일시정지, 수수한 듯 그러나 모든 것을 쏟아놓은 노랫말에 3차 일시정지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시정지의 순간에 나를 만지는 목소리, 목소리... 요즘 이들의 곡 전부를 반복해서 듣고 있다. 덕분에 요즘 나는 계속 운다. 이 미친 아름다움에 탄식하며 울고, 타오르는 열정이 애절해서 운다.)
할머니가 된 내가 재미있게 본 책을 다른 사람에게도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귀엽다. 이 노래 들어봤냐며 가장 트렌디한 최신 음악을 들려주는 모습도 너무 귀여울 것 같다.
그러면서 지금 감동과 예전 감동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예전에 나를 '일시정지' 시켰던 것들, 현재 나를 '일시정지' 시키는 것들. 그 감동들을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그들의 감동에 대해서도 들으면서 함께 '일시정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겠지. 나의 단호박, 나의 달, 그리고 나의 치와와.
자신의 감동과 사랑을 소개해주며 눈을 반짝이는 할머니는 얼마나 귀여운지. 상상하니 설렌다. 어서 할머니가 되었으면.
오늘 달은 반달도 아니고 보름달도 아니다. 이제 곧 다가올 보름달을 준비하는 통통한 달이다. 이 통통한 달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달이다. 왜 좋은지 그 이유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봤는데, 너무 다 괜히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좋으면 그냥 좋은 거지, 이유는 무슨. 내가 좋다는데. 이렇게 좋다는데.
나는 이 통통한 달만 보면 괜히 그렇게 흐뭇하다. 흐뭇한 밤이다. 나는 또 잠시 '일시정지'된다.
집에 들어왔더니 치와와의 분홍색 귀가 나를 반긴다.
치와와는 오늘도 "너무 맛있어! 어떻게 이렇게 맛있지?" 하며 밥을 먹는다.
온통 귀여운 세상이다.
+)
모브닝은, 사실, 저 혼자만 알고 싶은 그런 밴드예요.
하지만, 브런치는 특별하니까, 큰 맘 먹고 알려드립니다.
모브닝은 morning과 evening을 합친 말로, '아침부터 저녁까지'라는 뜻이래요. 이름 너무 예쁘죠ㅠㅜㅜ 음악은 더 예쁘답니다.
'극야(polar night)' 들어보세요.
두 번 들으세요. 세 번도 들으세요.
들어보고 괜찮으시다면, 시간도 좀 있으시다면, 다른 노래들도 좀 들어보세요.
'폼페이(pompeii)', '그날의 우리는 오늘과 같을 수 있을까(twilight of youth)', '내가 사랑한 모든 것들은 나를 눈물짓게 할 테니까(everything I love will make me cry)', '칵테일 얼음이 녹기 전에(before the cocktail ice melts)', '내가 있을게(falling with you)', 'you're a rainbow', 'turning light', 'delayed letter', 'for a better now'도 들어보세요. 아니 그냥, 다 해봐야 몇 곡 안 되니까 그냥 전곡을 들어보세요.
저 너무 흥분했죠. 지금 한 달째 이러고 있답니다. 미쳤죠. 근데 모브닝 음악은 더 미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