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시대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편인가? 질문을 해본다. 신제품이 나오면 제일 먼저 사거나 새로운 것이 등장하면 일단 경험해보려고 하는 편이 아니어서 빠른 편이 아니고 그렇다고 신제품이나 새로운 것에 아예 모르고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라서 뭐라고 답해야 할지 잠시 망설여진다.
새벽배송은 이미 일상화되어서 새로운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내가 새벽배송을 이야기하는 건 이제야 처음 경험해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새벽배송이라는 것이 정확히 맞는지 모르겠지만 ‘마켓컬리’에서 신선한 야채를 아침새벽에 신선하게 배송해준다는 것으로 아이가 어려 직접 장보러 가기 어려운, 늦은 귀가로 미처 장을 보지 못하거나 볼 시간이 없는 직장엄마들에게 선풍적인 인기가 끌면서 대형 유통회사들도 참여하면서 경쟁이 뜨거워졌다. 쿠팡의 로켓배송처럼 빠르면서 어제 저녁에 주문하고 잠자고 일어나 출근 전에 현관문 앞에 도착해있는 장바구니를 신문처럼 들고 들어오면 되는 것이다.
편리하고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내 속마음은 ‘왜 굳이’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같다. 집과 직장이 가깝기도 하지만 아이들도 다 큰 상태라서 매일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마다 직접 가서 필요한 만큼만 사는 게 훨씬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란 생각에서였다. 지난 달 업무와 과제로 성과 없이 마음만 바쁘고 머리만 복잡했고 대충 있는 것들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고 한시간정도의 잠깐 장 볼 시간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 달에 한번 주말에 남편과 함께 2L생수병 6개 들어있는 묶음을 집근처 대형마트에서 3묶음정도 사오는데 생수만 사러가도 하는 거, 사는 거 없이 한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그런데 생수만 사온 적은 대형마트 이용한 이래 한 번도 없다.
평상시 물을 끊여 마시고 중간 중간 사다놓은 생수와 병행해서 마시는데 물을 끊일 시간도 사다놓은 생수도 거의 떨어져 나가자 새벽배송이라는 것을 이용하게 되었다. 온라인상에서 장바구니에 넣을 시간에 사러가지라는 생각은 바쁜 일상과 진행하지 못하는 과제들 때문에 놓쳤고 결정적으로 내일부터 딸아이의 원격수업 때문에 낮에 간단히 에어플라이어기에서 해먹을 간식이 필요했다.
4만 원 이상만 되면 무료배송이라 생수 3묶음과 계란, 그리고 딸아이가 집에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급하게 전날 저녁에 주문을 했다. 배송요구사항에 1층 현관비밀번호 적기가 좀 그래서 초인종 눌러달라고 메모를 남기고 잠자리에 들었다. 알람처럼 6시전에 초인종이 울렸고 문을 열었다고 생각하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어느새 물건만 놓여있었다. 무슨 소풍가방처럼 튼실한 장바구니에, 열어보니 식품과 비식품을 따로 분리해서 비닐로 싸여있었고 화분에 줘도 상관없는 에코 아이스 팩에 냉동딸기와 함께 싸여있는 드라이아이스까지 내 손안에 들어오기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손길들이 그려졌다. 할인까지 받아서 훨씬 저렴하게 구매하고 생수병 3묶음의 무게를 알기에 너무 쉽게 물건들을 손에 넣은 거 같아 여러 가지 생각이 오고갔다. 뭐 이렇게까지 정성 드려 포장해서 보낼 필요까지 있을까? 잠도 못자고 이렇게까지 배송해 받아야만 하는 걸까? 이렇게 해서 남는 게 있기나 할까? 이렇게 편하고 좋은데 앞으로 나도 이용할 거 같은데 아파트 앞의 작은 슈퍼들, 편의점들 씨앗까지 말라버리는 걸까?
정성어린 꼼꼼한 포장에 감동받은 나는 남편에게
“정말 쓸데없는 걱정인데 이렇게 해서 남는 게 있을까 너무 걱정된다. 그리고 너무 감동적이다.”
다소 촌스러운 나의 반응에 남편은
“남는 게 있으니까 하겠지. 지금은 처음이라 많은 회사들이 달려들어 이렇게 치열하게 출혈 경쟁하지만 나중에는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은 몇 개의 회사만 존재하게 되면 또 달라지겠지. 두고 보는 수밖에”
이런 것이 말로만 듣던 ‘라스트마일 딜리버리(Last Mile Delivery)’라는 거구나! 깨달았다. 즉 주문한 물품이 배송지를 떠나 고객에서 직접 배송되기 바로 직전의 마지막 거리(혹은 순간)를 의미하는 것으로 유통회사들의 미래전략의 하나로 평가받으며 소비자들에게 안전하고 신속하게 전달해주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지금은 현관문 앞 까지겠지만 미국의 월마트처럼 우리 집 냉장고 안에 넣고 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모임에 나의 이런 경험을 이야기했더니 주변에서는 이미 일상처럼 이용하고 있었고 코로나가 끝나도 그리고 가격이 올라도 이 배송서비스는 포기하지 못할 거 같다고 했다. 또 한 친구는 세탁물도 런드리고라고 밤 11시 전에 신청하면 다음날 밤까지 도착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대면하지 않고, 하루 만에 모든 세탁물이 완료되어 도착하는 것이 너무 좋다고 거짓말 조금 보태서 침을 무지 튀겨가며 이야기했다.
안에 들어있던 아이스 팩과 비닐도 이름이 적혀있는 택을 잘 떼어내 접어 왔던 장바구니에 고스란히 넣어 다시 현관문 앞에 내다놓는다. 그럼 자장면처럼 다시 장바구니를 가지러 오나? 라는 순진한 질문에 남편이 답한다. "아니, 다음에 주문할 때 물건 배송하면서 회수하지. 그동안 고객은 현관문을 오고갈 때마다 그 장바구니를 보면서 구매를 자극받겠지. 장바구니도 마케팅의 일종이야"
모든 것, 모든 순간이 다 고객의 마음과 심리를 꿰뚫어보는 마케팅방법들이 다 숨어있다는 생각에 또 한 번 놀란다. 아무튼 새벽배송 대단하다 한마디 하면서 나도 새벽기상해서 책도 보고 운동도 하는 혼자만의 놀라운 시간을 만들고자 다짐한다. 그 옛날 할머니들이 늘상 하는 말처럼 ‘세상 참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