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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대로 삶 Aug 25. 2021

EBS 지식 채널ⓔ X 젠더 스펙트럼

068_독서일기20_북리뷰

                                      


북리뷰-EBS 지식 채널ⓔ X 젠더 스펙트럼     


EBS 지식 채널ⓔ는 세상 곳곳에서 포착한 다양한 테마, 아래 우리가 알고 싶은 이야기, 알아야 할 이야기를 촘촘히 엮어 ‘살아 있는 지식’으로 전하는 EBS 프로그램이다. 5분의 영상 속에 인문, 사회, 과학, 예술 등 우리 삶과 긴밀하게 연결된 주제들을 감각적이고도 예리하게 담아내 큰 호응을 받고 있으며 책으로 새롭게 만나는 지식 채널ⓔ는 권마다 ‘오늘’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를 선정해 다양한 관점에서 다룬 방송 편들을 시리즈로 엮어 나가고 여기서 소개할 책은 젠더 스펙트럼이다.    

 

결론적으로 EBS 지식 채널ⓔ X 젠더 스펙트럼을 읽고 난 소감은, 여성의 문제, 고민, 폭력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현재의 시선으로 다른 여성 관련 서적들에 비교해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립과 비판이 아닌 이해와 협력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최근 젊은 여성과 남성들의 첨예한 대립각에 대한 해결의 메시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EBS 지식 채널ⓔ X 젠더 스펙트럼은 스스로 막연하게 비판하고, 정확한 역사적 이해 없이 부당함을 주장했던 나 자신에게 역사적 흐름 속에서 여성과 남성을 바라보는 데 도움을 받았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 남성과 여성의 갈등은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에서 등장하는 사건, 사고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닌 그리고 일부 과격한 페미니스트들의 구호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옛날이나 지금이나 평범한 일상 속에 산재 되어 있다.      


여기 남편과 나, 대학생인 아들, 고등학생인 딸이 평범한 아파트 거실의 4인용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 풍경이 있다. 아늑한 조명 아래 정성이 들어간 맛있는 음식들이 차려져 있고 즐겁게 먹는 화목한 가정의 모습이다. 하지만 더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일상의 가벼운 에피소드가 어느 순간 첨예한 토론현장으로 바뀌는 것을 알게 된다. 요즘 젊은 한국 남성에 대한 비판이 던져지고 바로 맞대응되어 요즘 젊은 여성들의 문제점과 이기심을 성토하는 사자후가 난무하는 소리로 가득 찬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가족의 대화가 지역감정에서 젠더 갈등 양상으로 바뀌어 갔음을 실감한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식탁에서는 상대가 싫어하는 주제나 민감한 주제를 다루지 말라는 엄포에 이르렀다. 직장 동료에게 이러한 고민을 토로했는데 자기 집에서도 그렇다면서 그래서 대화를 더 안 하게 되었다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지금 대한민국은 젊은 세대의 젠더 갈등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고 그에 대한 해법으로 기성세대가 사랑과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인내와 양보를 이야기하는 것이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그리고 해법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지금, 여기에 여성, 남성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누구를 옹호하고 누구를 비판하는 것이 아닌 왜 우리가 이렇게까지 대립하게 되었는지 고찰하게 만든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해법의 실마리를 찾는 첫 단추가 되지 않을까?     


목차    

 

Part 1 : 상식과 법률 사이

Part 2 : 만들어진 가족, 만드는 가족

Part 3 : 보이지 않는 노동

Part 4 : 혐오에서 존중으로 

Part 5 : 미래가 현재에게          


책과 생각 속으로 


젠더: 사회, 문화적으로 만들어지는 성

박스: 성별에 따라 주어지는 틀   

  

이제 젠더 박스 바깥으로 나오려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다.

‘젠더 박스, 그 상자를 나오면 아이는 틀에 가둘 수 없는 한 사람일 뿐이다’라고 사회가 만든 그 틀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성 역할 고정관념도 문제로 드러났다. 가족들의 저녁 시간을 보여 주는 교과서의 삽화에서 다른 가족들은 앉아 있는데 엄마 혼자 과일을 준비하는 것은 돌봄 노동은 당연히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다. 직업도 마찬가지다. 의사는 남자, 간호사는 여자라는 식으로 사회의 통념을 답습하는 것이 미래의 주역에게 어울릴지 의문이다. 교과서가 사실을 공정하게 전달하는 데도 부족했다는 지적이 있다. 남성 못지않게 치열하게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가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그런 경우다. 사실 성별 고정관념이 강화, 재생산되는 것은 남자아이에게도 유해하다. 남자아이는 강해야 하고 상황을 책임지고 통제해야 하며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고, 즉 남자다울 것을 끊임없이 요구받는다. 이 모든 것은, 여자아이를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억압적이고 남자아이를 불행하게 만든다. (p27)     

인간이 사회화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핑계로 가정과 학교에서 의도적으로 그리고 비의도적으로 여성과 남성이 구별되어 학습되고 잘못된 문화와 인습도 전승된다는 것을 깨달는다. 그래서 가정과 학교의 역할이 정말 중요한데 어느 순간 그곳이 전쟁터가 되어버린 거 같아 안타깝다.  

    

사회적으로 여성의 몫이 부족한 것도 여성들이 지나치게 경쟁하며 서로 견제하고 남성적 요소에 집착하게 되는 원인이다. 아홉을 놓고 경쟁하는 남성들보다 하나를 놓고 경쟁하는 여성들이 더 많이 싸울 수밖에 없고, 이렇게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는 여성성을 포기한 여성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유리천장을 뚫고 남성 중심적 질서의 꼭대기까지 올라간 여성이 여성 친화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여성성이든 남성성이든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이제 고유한 인간성을 성별을 가두는 편협한 이분법을 폐기할 때가 됐다. (p31)     


문득 마음에 안 맞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과 식사나 모임을 함께할 기회가 있다면 대화의 소재를 여성과 남성의 문제로 삼는다면 싸우고 감정을 상할 확률이 아주 높아진다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더 나아가 아주 친한 사람,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여도 그러한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논쟁이나 토론으로 대화는 격렬해지기 쉽고 친했던 취미가 같았던 지인들에게서 느껴지는 벽, 그리고 시각의 차이를 아주 절감하게 될지 모른다고 말이다.  

    

자전거가 일으킨 가장 큰 변화는

코르셋과 속치마를 벗고 바지를 입으면서

‘여자다운 것’에 저항하기 시작한 여성들

자전거를 타고 남성의 도움 없이

혼자 다닐 수 있는 자유를 쟁취한 여성들(p47)   

  

나에게 자전거의 의미는 건강과 운동의 상징이며 걷기보다 빠른 걷기로 선택되는 대안이었는데 평범하고 흔한 자전거 속에 그런 숨은 역사와 의미가 있는지는 처음 알았다.     

다음은 이 책을 읽고 평상시 고민했던 가사노동, 가족관계에서 느꼈던 것들에 대한 내가 앞으로 채택할 나름의 논리를 찾은 것들이다. 이 책의 장점은 막연한 문제를 뚜렷하게 만들고 나름의 해법을 찾도록 고민하게 만든다. 그 고민은 생각만큼 힘겹지가 않게 느껴졌다.    

전통이 아닙니다.


며느리 또는 여성의 명절 노동이 혹자가 말하는 것처럼 정말 우리의 전통일까? 한마디로 답하자면 아니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윤회봉사’, ‘분할 봉사’가 흔했다. 윤회봉사란 자손들이 제사를 돌아가면서 지내는 것이다. 제사를 작년에 큰아들이 모시고 올해에는 둘째인 딸이 모실 때 윤회봉사다. 분할 봉사란 말 그대로 제사를 나누어 지내는 것으로, 아버지 제사는 아들이 모시고 어머니 제사는 딸이 모시는 식이다.

제사를 이 집 저 집에서 지내지 않고 한곳에서 도맡으면, 그 집에 힘이 생기기 마련이다. 17세기 이후 조선 사회는 부계 중심으로 힘을 재편하고 싶어 했고, 바라던 대로 이루었다. 관혼상제 의식을 담은 <주자가례>에 따라 적장자, 즉 본처가 낳은 맏아들의 단독 봉사가 널리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결국, 명절에 여성이 시가에서 제사 모시는 노동을 당연히 수행해야 한다는 통념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며 우리 민족의 전통도 아니다. 조선 초기에는 가족 간 평등하게 재산을 분배하고 부계와 모계를 모두 존중했으며, 족보에 남녀가 함께 기록되었다. 유교 자체가 남존여비를 당연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p66~p68에서 발췌)     

평등한 관계를 부르는 이름

결혼한 여성은 남편의 아버지를 ‘아버님’이라고 부른다. 결혼한 남성은 부인의 아버지를 ‘장인어른’이라고 부른다. 익숙한 말이지만 장인이라는 호칭은 그냥 나이 많은 남자에 대한 존칭에서 왔다. 

여성은 남성의 아버지를 ‘부모’로 여겨야 하지만, 남성은 여성의 아버지를 ‘그냥 나이 많은 남자’로 여겨도 된다는 생각이 그 말에 스며있기 때문이다.

언어는 세계관을 형성한다. 


‘애완견’과 ‘반려견’이라는 단어가 같은 대상을 가리키지만, 그 대상에 대해 전혀 다른 생각을 나타낸다. 애완견이 단순히 개를 사랑하며 가까이 두고 즐기는 인간의 시각만을 반영한다면, 반려견이라는 말에는 같이 살아가는 가족으로서 개라는 존재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애완견 대신 반려견이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인다면 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지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가족 간 호칭도 단순한 단어 선택이 아니라 세계관과 위계질서에 관한 문제다. 


도련님과 아가씨가 높임말인 것과 달리 남편이 아내의 여동생과 남동생을 부르는 ‘처제’, ‘처남’에는 높임의 의미가 없다. 이런 호칭 때문에 여성은 남편의 동생을 자연스럽게 존대하게 되고, 남편은 아내의 동생에게 하대하는 것이 당연해진다. (p69~p70)     


책에서처럼 단어 하나 바꾸는 것으로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현실은 단어 하나 바꾸는 것도 어렵고 힘들지만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인지하고 사용하는 것과 모르고 사용하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집안 안에서 이러한 용어를 이슈화시켜 싸울 생각은 없다. 하지만 서서히 내 스스로 ‘도련님’, ‘아가씨’라는 단어를 안 쓸 예정이고 딸과 며느리에게도 사용하지 말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남편과 아들에게 처남, 처제, 장인어른 이라는 용어 대신 동생과 아버님으로 부를 것을 계속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러한 용어는 역사속에서 사라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위기는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

2020년 전염병의 펜데믹 상황에 사회적 돌봄이 모두 무너진 자리에서, 돌봄이 가족의 몫으로 돌아갔다. 가족 가운데 돌봄을 떠맡게 되는 사람은? 당연히 여성이다. 2020년 7월 31일 기준 가족 돌봄 휴가 신청자의 비율을 보면 여성이 62.1%, 남성이 37.9%다.

필수적인 돌봄 노동을 수행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대부분 여성이다. 보육교사, 간호사, 요양보호사 같은 직군이 대부분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로 채워져 있다.

여성 돌봄 노동자들은 과도한 노동량과 낮은 임금, 불완전한 고용을 감내하며 일하고 있다. 사회가 돌봄을 여성이 모성을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한 값싼 공동체로 여기고 낮은 가치를 매긴다.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사회 구성원보다는 가족 구성원으로서 구실을 먼저 요구받는다. (p93~95 발췌)     

보이지 않는 성


가족을 위한 식사 준비, 자녀 양육, 청소, 빨래, 다림질, 설거지 등 끝없는 가사노동, 한나라의 경제 활동을 측정하는 국내총생산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왜일까?

“가사노동은 사고팔거나 교환할 수 있는 재화를 생산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고 돈으로 환산할 수 없으므로

경제 활동에 해당하지 않는 가사노동,

그래서 주류 경제학에서 여성은  

비생산적인 존재로 평가되었다. (p129)  

   

여성과 남성과 그저 다를 뿐이다.  
   

하지만 지배 권력을 차지한 남성은 여성을 대상화하며 억압하고 여성의 영역을 제한했으며 이에 맞서는 여성들의 투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젊은 남성들 가운데 여성이 차별받는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남자가 피해자’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더 나아가 페미니즘을 ’악‘으로 규정하고 무차별적으로 비난하는 남성도 적지 않다. ‘페미니즘 비난’이 남성 주류 문화의 일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젊은 남성들에게서 이런 시각이 더 도드라지는 이유는 군 복무라는 억압적인 경험, 신자유주의 시대의 불안한 취업 시장, 여전히 틀에 갇힌 남성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일부에서 근본적인 문제는 외면한 채로 이런 현실을 사회 전반의 여성 우대 경향에 따른 결과로 보고, 결국 남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있다는 피해 의식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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