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 은 Oct 10. 2024

놀랍도록 귀한 애였어


00동 복도식 아파트 살 때부터 날 보던 수요장의 반찬 아주머니가 계셨다. 엄마는 본가인 지방에서 살다가 올라와 나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경상도식으로 젓갈 많이 들어가고 간이 센 반찬을 그리워했다. 그분께서 입맛에 딱 맞게 만들어 파셔서 엄마는 자주 들러 반찬을 샀다고 했다. 다른 동네를 거쳐 이제껏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수요장에도 공교롭게도 그분이 장을 펴신다는 것은 이사 후에 우연히 알게 되었다.


나는 수요일 낮에 집에 있는 날이 드문데, 몇 달 전 엄마랑 같이 장을 보러 나갔다가 반찬장을 들렀다. 아주머니가 한눈에 날 알아보셨는데, 다른 동네에도 분명 장을 펴실 텐데도 20년 전 나를 정확하게 기억하셨다.


'정말 놀랍도록 귀한 애였어. 알고 있어? 너는 정말, 특별한 아이였어. 맨날 너희 엄마한테 나중에 크게 될 거라고 두고 보라고 내가 볼 때마다 얘기했어. 아줌마가 그땐 젊었으니까 열 개도 넘는 동네에 장 펴고 그랬거든? 너 얼마나 똑똑했는지 너는 모를 거야. 아줌마는 겨우 걸어 다니고 말 뗐을 때의 너가 정말 아직도 눈에 선할 정도로 너무 기억에 남아. 

정말 잘 컸다, 아줌마 기억해? 예전엔 이 테이블이랑 키가 비슷했는데 말이야. 있잖아, 니가 시장을 걸어 다니면 동네 아줌마들이랑 시장 사람들 눈이 얼마나 너를 쫓아다니던지 말도 못 하게 사랑스러웠어. 반찬이 다 매우니까 너가 오면 꼭 멸치볶음을 이쑤시개로 찍어서 줬거든, 그러면 너가 '아줌마 이거는 물고기예요 물고기! 아기 물고기!' 하면서 나한테 가르쳐줬어.'


나는 이 얘기가, 저분의 어조와 말투마저 자주 생각난다. 나에게도 그렇게 귀하고 특별했던 때가 있었다는 걸 몰랐다. 그때는 우리 집이 훨씬 어려웠고, 동생도 없었고, 방 두 개에 집도 좁았는데.


생각해 보면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의 피 튀기는 장면은 아빠 등에만 숨으면 안 볼 수 있었고, 집에 엄마가 없으면 옆 집 초인종을 눌러 언니 오빠랑 간식 먹으며 놀 수 있었고, 푹 찌는 여름에 엘리베이터 앞 복도에 돗자리를 펴고 소풍놀이를 했었다.


그런 기억은 어느 날 문득 찾아와 웃음 짓게 하거나, 수요장이 선 길을 지나면서 괜스레 더 힘차게 발을 내딛게 한다. 감사함을 담아 나 하나를 따라다니던 동네 이웃들의 눈과 표정을 상상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친절하지 않음은 불친절함이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