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기억은 대부분 조그만 부엌 안에 채워져 있다. 15평 작은 집의 더 작은 부엌에서도, 내 키보다 긴 지금의 부엌에서도 싱크대에서부터 식탁까지 세 걸음이 채 되지 않는 공간 속에 담겨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엄마는 자그마한 몸으로 싱크대 앞에서 쌀을 씻고 있다. 퇴근길에는 시장에서 잔뜩 사온 찬거리를 부엌까지 낑낑대며 들고 온다.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고등학생 딸과 함께 식탁에 앉아 책을 폈고, 지금은 직장인이 된 그 딸과 커피잔을 마주놓고 앉아있다.
엄마가 더이상 음식을 못하게 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여겼던 엄마의 집밥이 불현듯 생각나곤 한다. 냉장고 가득 채워져 있던 색색의 나물반찬, 이제 막 완성돼 뜨끈하고 구수한 밥 냄새,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온종일 쭈그려 앉아 속을 채운 김장김치. 이젠 내 기억 속 그 장면들은 머리 속에 박제돼 이따금 가슴을 뻐근하게 만든다.
20년 넘게 엄마가 해준 밥을 먹었지만 항상성에 갇혀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다. 밥 먹기 전에는 늘 “잘 먹겠습니다”라는 인사는 했지만 내가 ‘잘’ 먹고 있다는 생각은 없었다. 인사는 밥 먹기 전 으레 하는 행위였고, 밥은 당연히 엄마가 차려야 한다고 여겼다.
뒤늦게 엄마의 맛을 곱씹으며 흉내내보려 해도, 음식을 곧잘 하게 된 지금도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 음식을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다. 다른 이가 만들어준 맛있는 음식도 엄마의 맛을 대체하진 못한다.
그래서 더 그립다. 뒤늦게 알아버린 엄마의 따뜻했던 음식과 그 추억이.
엄마와 나의 ‘개인적 경험’이라 쓰기 고민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안의 내용은 어느 가정에서나 있는 ‘보편적 정서’라고 믿는다. 엄마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차리고, 어린 딸은 어른이 되고도 한참 지난 후에야 엄마의 마음을 그저 조금 이해할 뿐이다. 엄마의 따뜻한 온기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