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우리 엄마가 날 임신했을 때 복숭아를 따는 꿈을 꿨다고 한다. 언덕 한가운데 있는 복숭아나무에서 가장 탐스럽고 예쁜 복숭아를 3개. 한참 뒤에야 그게 태몽인 걸 알고는 내가 딸이라는 걸 직감했다고 했다.
어? 그런데 왜 복숭아가 3개지? 세쌍둥이도 아닌데? 엄마는 10년 뒤에야 그 꿈의 의미를 알았다. 아, 내가 이렇게 딸 셋의 엄마가 되는구나.
엄마에게 내 태몽 이야기를 듣고 나서 복숭아 태몽의 의미를 찾아봤다.
⎾성실하며 인내심이 강하다. 성격이 온순하며 리더십이 있다. 자수성가할 확률이 높다.⌋
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확실히 주변사람들이 생활력이 강하다는 이야기는 하지만, 내가 봐도 성격이 온순하다거나 인내심이 강한 편은 아닌데.
그래도 내 태몽이 복숭아여서 그런지 내가 좋아하는 과일은 단연 복숭아다. 그 중에서도 딱복(딱딱한 복숭아)이를 가장 좋아한다. 황도는 너무 물렁거리고 천도복숭아는 너무 단단하다. 백도 중에서도 물복(물렁한 복숭아)보다는 아기 궁둥이 같이 보드라우면서 딴딴하고, 동그랗지만 발그스름한 게 맛있다.
딱복이라고 다 맛잇는 건 아니다. 잘못 사면 딱딱한 데도 아무 맛이 안나 무를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런 건 별 수 없다. 자잘하게 다져 설탕을 1:1로 넣고 복숭아 청을 만들어야 한다. 뜨거운 여름 낮, 투명한 유리잔에 복숭아청을 한 숟갈 넣고 탄산수를 가득 따른 뒤 함께 마시면 머리가 찡 해질 정도로 시원하다.
딱복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알레르기가 있어서 복숭아를 먹을 때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백도의 털만 닿아도 피부가 빨갛게 부풀어 오르면서 간지럽다. 아무 생각 없이 복숭아를 먹다간 입술 주변이 불그스름하게 부푼다. 털만 잘 씻어서 먹으면 되고, 금세 괜찮아져서 심각한 수준은 아닌데 엄마가 날 위해 복숭아를 한 입 크기로 잘라 입에 넣어주는 것이 좋아 아무 말도 없이 받아먹었다.
결혼을 한 뒤에는 엄마 대신 남편이 이 일을 맡아서 하고 있다. 여름에는 복숭아, 겨울에는 딸기를 못 먹으면 앓아눕는데 딸기는 잘만 씻어먹으면서 복숭아는 괜히 투정을 부리게 된다. 남편이 잘 들을 수 있게 충분히 큰 혼잣말로 “아 복숭아 먹고 싶다”, “아, 난 복숭아를 못 만지지”, “오늘따라 복숭아가 너무 땡긴다”라고 말하고 다니면 남편은 조용히 복숭아를 서너개 사와서 씻고는 먹기 좋게 잘라서 반찬통에 담아둔다.
식탁에 가만히 앉아 남편이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20년 전 엄마의 모습과 괜시리 겹친다. 아, 내가 복숭아를 좋아하는 건 꼭 맛 때문은 아니었구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의 마음이 전달되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