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좋아하는 게 뭔지 물어보면 첫째딸은 염치도 없이 자꾸만 작아진다. 30년 넘게 엄마 곁에 있으면서 엄마가 어떤 색깔을 좋아하고, 어떤 음식을 싫어하는지 모른다. 그래도 빵 이야기를 할 때는 조금 면이 선다. 엄마는 팥이 그득그득 들어간 단팥빵을 참 좋아한다.
요즘은 맛있는 빵집이 참 많다. 빵집이라고 하기엔 뭔가 어울리지 않는 고급스러운 베이커리집은 요즘 집 앞만 나가도 한 집 걸러 한 집씩 있다. 색색이 곱게 물든 마카롱이나 과일이 가득 올라간 타르트를 보면 이따금 엄마가 생각날 때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구움과자를 봐도 같이 먹고 싶어진다. 아, 우리 엄마도 이런 거 먹으면 좋아하겠지.
엄마네 집에 잠깐이라도 들를 시간이 있으면 너무 달아서 뇌가 멍해질 케이크나 갈색으로 설탕 코팅이 예쁘게 입혀진 까눌레를 들고 간다. 주로 내가 먹고 싶은 걸로 골라서. 이걸 씁쓸하면서도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과 마시면 테라스에서 들어오는 잔잔한 바람과 따뜻한 햇빛을 느낄 여유를 부리게 된다. 늘 바쁘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나도 그때만큼은 시간이 멈춘 듯이.
엄마도 딸과 함께 있는 시간을 참 좋아한다. 그 딸이 들고 온 빵과 커피도 좋아한다. 딸이 엄마를 생각하며 사온 것이라 더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래도 엄마에게 다음에 먹고 싶은 빵을 물어보면 단번에 단팥빵을 외친다. 강남 어디에서 사온 1개에 만원도 넘는 케이크도, 회사 근처의 유명한 베이커리집 베이글과 스프레드도 맛있다고는 하지만 단팥빵에게는 늘 적수가 못 된다.
단팥빵이라면 이성당 성심당 같은 전국구 빵집의 것도, 파리바게뜨나 뚜레쥬르의 보급형 맛도, 한평 남짓한 시장 구석의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 결국 내가 엄마네 집에 들고 가는 것도 단팥빵일 때가 많다.
엄마는 그 좋아하는 것도 딸에게는 아낌이 없다. 같이 먹자며 반을 갈라놓고는 팥이 더 많은 쪽을 건넨다. 촌스러운 맛이라며 고개를 젓는 딸에게 뭐라도 더 주고 싶은 게 엄마 마음인가 보다.
나도 경주 황남빵은 좋아한다. 단팥빵과 같은 듯 더 보드랍고 팥이 더 많이 들어있는 게 내 취향이다. 이걸 사러 경주까지 갈 수는 없고 찾아보니 서울에도 파는 곳이 있어서 반갑다. 이번 주말 디저트는 황남빵으로 해야겠다. 2박스를 사서 한 개는 그 자리에서 다섯식구가 다 먹어치우고 한 박스는 엄마만 먹으라고 깊숙한 곳에 숨겨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