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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블 Jul 23. 2021

그땐 이게 귀해질 줄 몰랐지

밑반찬


밑반찬은 자취생이나 이제 막 살림을 시작한 신혼부부에게는 고기보다 귀한 음식이다. 그중에서도 나물은 단연 귀하다. 삼겹살이나 소고기 같은 건 집이나 밖에서 쉽게 먹을 수 있지만, 내 입에 딱 맞는 밑반찬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나도 결혼을 한 뒤에야 엄마 반찬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김치는 엄마 집에서 한통 가지고 오거나 마트에서 사면 적당히 입에도 맞고 꽤 오래 먹을 수 있는데 밑반찬은 괜히 욕심부려 많이 가져오면 금방 상해 버리기 일쑤다. 몇 번 버리고 나면 괜히 미안한 마음에 엄마가 싸준대도 손사래를 치게 된다.


그렇다고 반찬가게에서 사먹기엔 괜히 아까운 마음이 든다. 엄마네만 가면 냉장고 한 가득 쌓여있는 게 밑반찬인데. 먹고 싶은 반찬을 대여섯개만 담아도 3만원은 금방 넘는다.


그게 아까워 두 팔 걷어붙이고 만들자니 그 맛이 안 나는 게 문제다. 음식에선 늘 ‘적당히’가 가장 어렵다. 정확한 계량과 시간을 말해주면 좋으련만 레시피에는 항상 ‘적당히’ 넣고 ‘적당히’ 데치란다. 시금치를 ‘적당히’ 데친 것 같아 꺼내보면 죽처럼 풀어헤쳐져 있다. ‘적당히’ 삶은 계란은 날달걀이다.


밑반찬이란 게 이상해서 사실 안 먹어도 그만인 경우가 많다. 엄마가 차려준 밥상에는 밥과 찌개, 생선이나 고기, 김치, 그리고 몇 종류의 밑반찬이 정갈하게 올려져 있지만 맞벌이 신혼부부의 2인상에는 밥과 찌개, 김치 정도가 전부다. 이정도만 내 손으로 차려도 꽤 잘 챙겨 먹는 거라고 자위한다.


그래서 냉장고에 반찬이라곤 김치와 단무지밖에 없는 날이 꽤 자주다. 엄마나 시어머니께서 반찬을 싸준대도도 그때뿐이다.


그러다 최근 엄마가 아프고 엄마네에 음식을 가져다 줘야겠다고 마음먹은 뒤로 반찬을 하나 둘 하기 시작했다. 젓갈이나 김자반, 무말랭이 같이 기성품이 더 잘 나오는 건 굳이 하지 않는다. 내가 만들면 손과 돈만 들고 맛은 별로다.


대신 내가 평소에 돈 주고 사먹긴 아깝지만, 안 먹으면 생각나는 반찬을 주로 만들기 시작했다. 보통 제철음식이나 마트에서 세일하는 식재료를 사와서 블로그나 요리책을 보고 만들곤 한다.


가장 최근에 만든 건 참나물무침이다. 나물무침은 늘 처음 한두 번은 실수를 하는데 참나물무침은 아직 실패 없이 잘 만들고 있다. 미나리와 시금치를 섞어놓은 듯한 향기가 제법 상쾌하고 입맛을 돋운다.


모든 나물이 그렇듯 참나물무침의 포인트도 ‘적당히’ 데친 뒤 ‘적당히’ 간을 하는 거다. 숨이 죽을 정도로 데친 참나물을 찬물에 씻어 물기를 짜고 다진마늘과 참치액, 참기름, 깨를 넣으면 꽤 그럴듯한 맛이 난다.


멸치볶음도 요즘 열심히 만들고 있는 반찬 중 하나다. 지난 추석 때 멸치 2박스를 선물로 받아 냉동실에 넣어두고 외면해 왔는데 더 이상 그럴 수 없어 앉은 자리에서 6시간 동안 다듬었다. 내 정성과 노력이 들어간 재료는 무조건 자주, 많이 만들어줘야 생색을 낼 수 있다.


멸치볶음은 한 번 고추장 베이스로 만들고 나면 그다음엔 간장 베이스로 만든다. 딱히 정량은 없고 역시 ‘적당히’ 양념을 넣고 볶아준다. 멸치는 기본간이 있어서 싱겁진 않고 가끔 짜게 될 때가 있는데 그럴 땐 당황하지 않고 원래 계획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견과류나 꽈리고추 같은 부재료를 넣어주면 된다.


멸치볶음과 비슷한 양념으로 진미채볶음이나 새우마늘쫑볶음, 황태채볶음 같은 건어물 반찬을 만들면 얼추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맛은 난다.


익을 대로 익은 김치가 처치곤란일 때는 김치볶음이나 김치찌개 대신 주로 씻은지볶음을 하는 편이다. 양념이 과하지도 않고, 식당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음식도 아니라서 꽤 자신 있게 만든다.


김치를 반포기 꺼내 겉에 뭍은 양념을 물에 씻어준 뒤 송송 잘라 들기름을 넣은 팬에 볶으면 된다. 설탕과 참치액으로 간을 하고 마지막에 깨만 조금 넣으면 금방 짭조름한 밥반찬이 된다.


명란무침도 냉장고에 두고 먹기 좋은 반찬이다. 두툼한 명란 너댓개의 껍질을 벗겨 다진마늘, 다진파, 고춧가루, 참기름, 깨를 넣고 섞으면 완성된다. 명란무침만 있으면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명란무침은 내가 가장 자신 있어하는 ‘밥도둑’ 반찬이다. 임신한 형님이 입덧으로 고생할 때 우리집에서 집들이를 한 적이 있는데 식탁 위에 올려진 명란무침 덕분에 한동안 입덧 걱정 없이 식사를 했다고 했다. 그때 식탁에 놓고 남은 명란을 싸주면서 레시피도 알려드렸는데 시어머니께서 해주신 맛은 내가 해준 맛이 안 난다며 첫 조카를 낳은 이후에도 몇 번씩 이야기하곤 했다. 솔직히 맛의 비법은 모르겠고, 저염의 비싼 명란을 써서 그런 것 같다.


이쯤되면 반찬에 자신이 생길 법도 한데 늘 실패하는 반찬도 있다. 주로 고춧가루를 팍팍 넣어 빨간 양념맛에 먹는 콩나물무침이나 무생채가 그렇다. 우선 재료손질부터 애를 먹는다. 콩나물을 아삭아삭하게 삶거나 무를 가지런히 채 써는 것부터 실패다. 레시피를 보고 양념을 따라해도 양념은 곤죽이 되고 만다. 요즘에는 깔끔하게 포기하고 식당에서만 먹는다.


계란말이로 계획한 계란물은 늘 스크램블로 끝난다. 깔끔하게 마는 건커녕 그냥 마는 것도 힘들다. 사각팬을 사봐도, 약불에 천천히 해봐도 내 마음처럼 되지 않아 정신건강을 위해 반찬가게에서 보이면 한개씩 사들고 간다. 예전에 엄마는 계란말이 안에 다진채소는 기본이고 치즈, 김을 넣고도 깔끔하게 말았는데 보통 실력으로는 턱도 없다.


최근 들어 엄마 몸이 더 안 좋아져서 혼자서는 거의 식사를 못하는 편이다. 앞에 놓인 반찬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젓가락질 하는 손도 점점 무뎌지고 있다. 식구들이 주로 숟가락 위나 밥그릇에 반찬을 얹어주곤 하는데 반찬과 밥이 한 숟가락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잘 못 먹어서 밥을 먹을 때마다 신경 쓰이고 마음이 아프다.


이번에 엄마네 가는 길에는 베란다에 있는 감자로 감자조림을 해가야겠다. 엄마 숟가락에 잘 올라갈 수 있게 적당한 크기로 잘라 엄마가 좋아하는 매콤한 양념을 더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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