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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블 Jul 25. 2021

나만 몰랐던 숨은 다이어트 맛집

건강식


최근 몇 년 사이 남들이 말하는, 마름과 날씬 사이의 몸매를 잃었다. 야식이나 배달 음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내가 어떻게 새끼돼지 한 마리를 몸에 달고 사게 됐을까. 그동안은 술 핑계를 댔지만 술이 100% 원인은 아닌 것 같다. 술은 내가 법적으로 마실 수 있게 된 바로 그날부터 10년 넘게 꾸준히 마셨지만, 내 몸에 살이 붙기 시작한 건 그보다 훨씬 뒤다. 과거로 한 걸음씩 돌아가보니 내가 더 이상 엄마의 밥을 먹지 못했을 때부터 군살이 붙기 시작한 것 아닐까 싶다.


남들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는 우리집에서는 오후 8시만 돼도 야식으로 취급한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면 본능적으로 하루의 마감을 준비하게 된다. 6시에 저녁을 먹고 9시에 다같이 뉴스를 본 뒤 10시 전에 침대에 눕는 패턴은 몸속 깊게 박힌 유전의 힘 같은 것이다.


보통 아침은 무조건, 저녁은 때에 따라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식탁에 올리는 음식만 잘 먹어도 균형 잡힌 식사가 완성된다. 현미, 조, 콩 같은 게 섞여있는 잡곡밥과 끼니마다 오르는 생선이나 고기, 엄마 손맛이 묻은 나물반찬 몇 개와 김치는 ‘탄단지’를 고루 갖춘 건강식이다.


그런 내게 어학연수는 자극적이면서도 끊을 수 없는 ‘마라맛’ 같은 경험이었다. 함께 연수를 떠난 이들의 주 활동시간은 보통 저녁 8시에 시작했다. 술이든 밥이든 그때부터 먹고, 때때로 하루를 넘기기도 했다. 대쪽 같은 성격을 갖고 있지 않는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변인들의 영향을 받기 마련인데 보통은 더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쪽으로 옮아간다. 절간같은 내 라이프스타일을 따라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변에 쉽게 휩쓸리긴 해도 DNA 자체는 건전하다. 술에 취하면 주변을 배회하는 일 없이 곧바로 귀소본능이 작동한다. 문제는 시끄러운 소리가 사라진 새벽 한가운데에 들어서면 갑자기 신체리듬이 엄마네 집 텐션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세네시간 부지런히 먹어댄 것들은 소화되지 못한 채 나와 함께 잠들었다. 그리고 그게 이 몸매의 시작 버튼이겠지.


이후 짧은 자취생활과 현재진행형인 결혼생활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몸뚱이엔 덜어내는 데도 한참이 걸릴 쓸 데 없는 살이 여기저기 붙어있다. 얼마 전 건강검진에서 “키 대비 몸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아 보통체형이신줄 아셨죠? 근육은 없고 지방만 많은 전형적인 마른비만입니다^^”라는 진단을 자극 삼아 본격적인 다이어트 다짐을 했다.


한끼라도 굶으면 죽는 줄 아는 삶을 살아온 내 사전에 1일1식이나 간헐적단식 같은 단어는 없다. 몸에 좋은 음식을 조금 먹는 수밖에 없다.


내가 감량을 하겠답시고 만드는 음식은 그동안 엄마가 해준 밥과 큰 차이가 없다. 즉석밥이긴 하지만 백미대신 귀리밥이나 단호박솥밥 같은 잡곡밥을 렌지에 돌린다.(요즘엔 즉석밥이 참 잘 나온다) 메인메뉴는 손질된 냉동 고등어나 소고기를 간단하게 구워 준비한다.(냉동식품도 잘 나온다) 귀찮으면 반찬을 생략할 때도 있지만 쌈채소나 간이 약하게 된 나물을 조금 올려 먹기도 한다.


다이어트식이라고 그럴싸하게 말했지만 아직 눈에 띄는 효과는 없다. 나이는 먹고 근육은 없고 운동은 싫어하니 내 살들은 이제 평생 함께 갈 동료 같기도 하다. 그래도 배달음식이나 인스턴트보다는 건강할 거라는 생각으로 시간이 나는대로 열심히 챙겨먹고 있다.


엄마의 말도 내 다이어트에 자극을 줬다. 엄마가 진지한 듯 아닌 듯, 흘러가는 말인듯 진심인 듯 “이제 슬슬 살 뺄 때도 되지 않았어?”라는 물음에 3초 동안 아무 말도 못했다..... 언제는 살쪄도 내가 제일 예쁘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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