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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블 Jul 28. 2021

엄마,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미역국과 케이크


7월 말, 엄마는 뜨거운 여름의 한 중간에 나를 낳았다. 에어컨을 조금만 벗어나도 땀이 삐질삐질 나는 요즘 같은 날씨를 생각하면 엄마에게 낳아준 고마움보다 태어나서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든다. 예전에는 그저 생일선물과 축하메시지만 기다렸는데 아직 아이도 없는 내가 엄마에 대한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나이가 먹긴 먹은 모양이다.


내 기억 속 유년시절은 늘 여유 없이 빠듯한 모습이다. 외벌이 아빠에 세 딸을 키우느라 지쳐있는 엄마의 모습이 조각조각 떠오른다.


그럼에도 생일엔 다섯식구가 모두 설렜다. 어린 딸들은 누구의 생일이나 누구의 고생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1년에 몇 번 없는 케이크 커팅식만 기다릴 뿐이다. 칼은 당연 생일자가 들지만 거기에 언니고 동생이고 할 것 없이 손을 갖다대니 결국에는 세 자매가 모두 같이 자르는 모습이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 손바닥만 한 케이크는 네조각으로 잘려 첫째, 둘째, 셋째 딸이 한조각씩 챙기고 나머지 한 개는 엄마, 아빠가 같이 조금 먹은 것 같다.


쓰다보니 갑자기 엄청 가난해진 기분인데 그것보단 케이크는 딱 한번 먹을 분량으로 사서 다섯식구가 기분 좋게 한입씩 하는 게 좋았다. 싸구려 생크림과 두툼한 케이크시트는 (지금은 아니지만) 냉장고에 한번 들어갔다 나오면 기름과 크림과 빵이 분리돼 첫입의 감동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케이크를 한입씩 먹고 나면 미역국과 함께 식사를 할 때다. 평소에도 자주 먹는 미역국인데 뭔 호들갑이냐고 할 수 있는데 소고기 미역국이다. 소고기가 무려 한주먹이나 들어간. 한껏 부들부들해진 미역국에 밥 한 공기를 말아 먹으면 말 그대로 ‘게 눈 감추듯’ 사라지는 마법을 볼 수 있다. 그땐 김치고 나물이고 필요가 없다. 후루룩 말아먹으면 자연스럽게 국그릇을 들고 밥과 국을 다시 채워 한 번 더 후루룩 먹게 된다.


스무해 전만 생각하면 생일의 설레는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나는데 요즘은 삭막하게 생일이 그저 많은 날 중의 하루로 여겨진다. 스무해, 짧지 않은 시간인 것 같긴 하다. 키는 그대로인 나는 마음만 쓸 데 없이 너무 어른이 됐고, 작은 것에도 좋아서 날뛰던 아이 같은 모습은 애초에 없었던 듯하다.


한 집 걸러 한 집 있는 카페 쇼케이스에는 집에서 먹던 생크림케이크과는 생긴 것부터 다른, 듣도 보도 못한 케이크가 진열돼 있다. 그마저도 케이크의 감동은 점점 멀어져 요즘엔 거의 입에도 대지 않는다. 아빠 손바닥만 한 케이크는 점점 작아져 내 생일엔 조각케이크나 이마저도 없을 때가 많다.


그래도 여전히 미역국은 좋아한다. 이런 것도 밖에서 사먹냐며 엄마나 아빠가 들으면 놀라겠지만, 미역국 전문점도 꽤 자주 간다. 소화가 안 되거나 입맛이 없을 때도 미역국만 있으면 밥 한 그릇은 금방 비운다.


하나 둘 잊어가는 엄마는 아마 오늘이 내 생일인 것도 모를 거다. 그래도 내가 전화해서 일러주면 누구보다 기쁜 목소리로 “생일 축하해!”를 말해줄 사람이란 걸 안다. 이번엔 내가 먼저 말해야겠다. 이 더운 날, 나를 낳아줘서 고맙다고. 너무 고생하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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