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음식은 이상하리만치 신기하다. 한 상 멋들어지게 차려놓고 먹는 건 맛이 없다. 널따란 프라이팬에 지글지글 구워서 나오자마자 후후, 두어번 불고 먹는 게 제일 맛있다.
제대로 씻지도 않아 꾀죄죄한 얼굴로 집안 가득 기름 냄새를 풍기며 몇 시간째 전을 굽느라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지만 이제 막 구워 뜨끈한 배추전을 한 입 먹고 나면 어느새 꼬치전을 구울 힘이 난다. 그렇게 꼬치전을 먹고는 다시 동태전을 굽고, 동태전까지 한 입 먹은 후에야 몇 시간에 걸친 모둠전이 완성된다.
어렸을 때 시골에 가면 엄마와 큰어머니는 부엌 한 켠에 앉아 전을 끊임없이 굽고 있다. 나는 간을 본답시고 저녁 배가 남아있지 않을 만큼 이제 막 나와 뜨끈한 전을 입 안 가득 밀어넣었다. 살아남은, 얼마 안 되는 전은 평상 구석에 자리 잡아 열을 식히고 있다. 그러면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와서는 몰래 종이를 들춰내고 또 한 입을 베어문다. 그러고는 둥둥해진 배로 할아버지방 아랫목에 앉아 까무룩 잠이 들곤 했다.
결혼하고 나서는 시댁에서 몇 번 구웠지만 요즘엔 이마저도 안한다. 명절 때마다 무슨 전을 이렇게 하냐고 궁시렁 댔지만, 막상 기름 냄새 한 번 못 맡고 명절을 보내고 나면 그게 또 못내 아쉽다.
명절 음식이 이상한 건 또 있다. 평소에는 생각도 안 나는데 설이나 추석 즈음만 되면 그 맛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직접 장을 봐서 재료를 다듬고 전을 굽자니 엄두가 안 난다. 명절 분위기나 내보자며 시장에서 만들어진 전을 사오면 그건 그거대로 아쉬운 게 모둠전 맛의 8할은 아무래도 기름 냄새에서 나오는 것 같다.
이번 설에는 냉동 제품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동그랑땡 5개, 꼬치전 4개, 동태전 일고여덟개가 봉지 안에 가지런히 담겨있다. 맛이야 직접 만든 것보다 못하지만 비주얼은 꽤 그럴싸하다.
추석에는 모둠전이나 만들어볼까 싶다. 벌려놓고 나면 후회할 게 뻔하지만 아무래도 모여앉아 전을 부치며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그 분위기가 그리운 것 같다. 가족이라고는 하지만 명절은 돼야 겨우 다같이 만날 수 있는데 이제야 전을 부치는 시간만큼 귀한 게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