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엄마의 첫째 언니(그러니까 나에겐 첫째 이모)가 사과를 보낸 게 올해만 벌써 네 번째다. 아무리 과수원을 하고, 상품성이 떨어지는 사과라고 하더라도 아픈 동생이 여간 안쓰러운 게 아닌 모양이다.
맨날 얻어만 먹는 입장에서는 맛있는 사과를 공짜로 먹을 수 있어서 더없이 고맙지만, 주는 사람은 더 줄 수 없어서 미안한 마음이다. 감사인사를 하러 전화를 하면 늘 “형편이 안돼 이것밖에 못 보냈다”며 말끝을 흐린다.
이모는 사과로 유명한 지역에서 적잖이 넓은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다. 덕분에 일손 한 번 제대로 돕지 않고 덕을 본 건 나다. 어렸을 때부터 1년에 한 번 이상은 꼬박꼬박 사과를 보내주셔서 사과 귀한 줄 모르고 먹어댔다.
엄마는 밥을 다 먹은 뒤에는 후식으로 과일을 준비해놓곤 했는데 사과가 잔뜩 온 날이면 한 달은 부지런히 사과가 식탁에 올라왔다. 먹기 싫다고 손사래 치는 딸내미 입에도 꾸역꾸역 사과 한 조각을 넣어주었다. 그땐 엄마가 주는 사과가 왜 그렇게 귀찮았나 싶다. 지금 이렇게 될 줄도 모르고.
사과를 먹기 싫어하는 딸에게 엄마는 ‘아침 사과는 금’이라든가 '대구의 미인이 많은 이유' 같은 걸 설파한다. 그러면 또 묘하게 설득돼 한 입 더 베어물곤 했다.
이제 엄마는 손이 무뎌져서 사과를 깎는 것은 당연하고, 포크로 집는 것도 힘들어한다. 가끔씩은 사과를 앞에 두고 사과를 찾기도 한다. 갈 길 잃은 포크가 허공에서 움직인다. 그럴 때마다 무너지는 내 모습을 싫어하면서도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이모가 보내주신 사과를 다 먹고 난 뒤에는 으레 엄마와 우리집에 사과즙을 한 박스씩 주문한다. 이마저도 나는 고마운 마음에 주문을 넣는데 이모는 무슨 돈이냐며 머쓱해한다. 동생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감사하기만 하다.
엄마에게 사과즙을 꺼내주며 이모 사과로 만든 것이라고 하면 맛있는지 씩 웃고는 한 잔을 금세 비운다. 예전 같으면 모르고 지나갔을 그 모습이 감사하다. 엄마가 사과즙을 다 먹은걸 본 뒤에야 나도 한 입 마셔본다. 저온숙성한 사과 100%로 만든 즙이라는데 역시 맛이 다른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