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6월에 접어들었는데 벌써 해가 뜨면 뜨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어느새 마트 제철과일 코너에는 딸기나 귤은 사라지고 토마토와 수박이 그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새빨갛게 익은 토마토만 보면 8월, 지금보다 더 뜨거운 한여름 한가운데 외할머니네가 생각난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2~3년에 한 번 정도 일주일 동안 외할머니네에 놀러를 가곤했다. 버스를 여러번 갈아타야 하는 꽤 먼 거리라 주로 엄마, 동생과 함께 시골길을 굽이굽이 따라갔다.
한여름 땀을 뻘뻘 흘려 도착하면 할머니는 일찌감치 냉장고에 넣어둔 새빨간 토마토를 꺼내 우리 입으로 하나씩 넣어주었다. 우리는 그저 아기새처럼 선풍기 바람을 쐬며 그걸 받아먹으면 됐다. 쇳그릇에 숭덩숭덩 잘라 설탕에 절여둔 토마토는 웬만한 아이스크림 부럽지 않을 정도로 달고 시원했다. 귀가 아플 정도로 매미가 울어대고 한참을 걸어와 몸과 머리는 익을 대로 익었는데 할머니식 ‘도마도’(할머니는 토마토를 도마도라고 불렀다)를 먹고 나면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이 났다.
토마토에서 우러나와 설탕과 섞인 달큰한 국물까지 꿀떡꿀떡 마셔야 그 맛이 완성된다. 설탕물 도마도는 외할머니네 가야만 맛볼 수 있는 특식이었다.
설탕물 도마도는 실수로 쏟은 듯 설탕을 듬뿍 넣어야 제 맛이 난다. 한 숟갈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토마토를 설탕물에 치덕치덕 담가 한입에 우적우적 먹으면 혀에 닿자마자 행복회로가 돌아간다.
평소 토마토만 잘라 접시에 담아주던 엄마도 외할머니네서 만큼은 설탕을 듬뿍 뿌려 토마토를 담아줬다. 평소 집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집에 돌아와 설탕물 도마도를 해달라고 졸랐는데 웬일로 엄마는 별 말없이 토마토를 잘라 설탕을 한 꼬집 넣어주었다. 평소에도 큰 불만 없이 음식을 먹는 편이라 설탕양은 아쉬웠지만 투정 없이 입에 넣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달큰한 맛이 입에 계속 맴돌았다. 엄마가 넣은 게 소금이라는 건 한참 뒤에 알았다.
요즘에도 여름만 되면 토마토를 부지런히 먹곤 한다. 요즘엔 노란색, 주황색 예쁜 방울토마토도 나오고 검붉은색 흙토마토도 나와서 신기한 마음에 몇 번 사먹은 적이 있다. 몸에 좋은 영양소 뭐시기도 많이 들어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먹고나면 왠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져 다시 찾진 않게 된다.
편하게 먹긴 아무래도 방울토마토가 좋지만 최근에는 완숙토마토를 더 자주 찾게 된다. 스테비아토마토의 단맛보다는 은은하게 감도는, 할머니네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먹던 주먹만 한 토마토의 단맛이 더 좋다.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