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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블 Apr 22. 2021

거기서 삼겹살을 왜 구워 먹는 건데

삼겹살

이 글을 쓰고 있자니 내 나이가 적지 않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엄마와 함께한 추억의 음식을 끄적이고 있는데 같은 엄마 뱃속에서 나온, 9살 어린 막냇동생은 전혀 기억을 못 하는 이야기가 꽤 있다. 뒷산에서 쑥을 캔 이야기라거나 지금 쓰려는 삼겹살 이야기라거나.


여기서 중요한 건 기억을 못 한다 뿐이지 ‘특이한 경험’이라는 거에는 우리 둘 다 공감한다는 거다.


내가 어렸을 땐 주말이나 아빠가 월급을 받아온 날 즈음에 삼겹살을 특식으로 먹었다. 꽤 작은 주택형의 아파트에 살다 보니 냄새가 빠질 기미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특식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인지 자주 밖에서 먹었다. 여기서 말하는 밖은 식당이 아니라 말 그대로 집 밖 어딘가이다.


내가 주로 기억하는 데는 아파트 뒤 공용공간이나 여기서 자주 나오는 뒷산이었다. 가스버너와 휴대용 프라이팬부터 삼겹살, 김치, 상추, 마늘, 쌈장까지 싹 다 싸들고 밖으로 나왔다. 지금 이걸 쓰면서도 저걸 어떻게 다 들고 나와서 구워 먹었는지 놀랍다. 집 바로 뒤에서 먹을 때는 간간히 부족한 반찬을 가지러 집으로 뛰어가기도 했다.


그곳은 아파트 뒤 자그마한 텃밭이 있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공간이긴 했지만 엄연히 아파트 한가운데였다. 노인정과 연결된 뒷길이었는데 그때는 거기서 고기를 구워 먹는 우리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그 길을 지나가는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우리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냄새는 창문을 꽁꽁 닫고 나온 우리집을 제외한 모든 집으로 들어갔다. 삼겹살 냄새를 맡고 창문으로 나온 이웃들은 우리집인 걸 보고 내려와 같이 먹기도 했다. 쓰면서도 계속 놀랍다.


더 놀라운 건 산에서 삼겹살을 먹은 거다. 지금은 생각도 못할 일이지만 그때는 그리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동생은 산에서 고기를 구워 먹은 거에 놀랐지만 나는 걸어서 20분은 족히 걸릴 그 산까지 삼겹살을 구워 먹으러 온갖 짐을 들고 갔다는 거에 놀라는 중이다.


산 초입에 가스버너가 쓰러지지 않을 만한 평평한 곳을 찾으면 그곳이 오늘 우리의 식탁이 된다. 곧바로 돗자리를 펴고 본격적인 삼겹살 굽기에 들어간다. 아빠는 산의 맑은 공기에 삼겹살과 소주를 얹어 한 주간의 고생을 씻었다. 나와 동생들은 고기를 몇 점 대충 주워먹곤 열심히 흙먼지를 날리면서 뛰어다녔다. 엄마는 그만 좀 뛰라고 하면서도 크게 말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쓰다 보니 시트콤의 한 장면 같은 이 기분.


우리가 식당에서 제대로 된 삼겹살을 먹은 기억이… 있나? 삼겹살은 집에서(주로 집에서) 우리가 준비한 고기로 값싸게 먹는 특식이라는 개념이 있어서인지 엄마, 아빠와 같이 삼겹살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은 적은 없는 것 같다.


딸들이 다 큰 지금에서야 온가족이 모이면 삼겹살을 먹는다. 물론 집에서. 아, 집에서 삼겹살 먹는 게 이렇게 시시한 일이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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