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누구에게 물어봐도 돈가스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 있을 거다. 일단 튀긴 음식이 맛없을 리 없고 거기에 고기가 들어가 있으면 더 맛있다. 달콤한 소스에 푹 찍어먹으면 그야말로 '실패 없는' 맛이다.
아직 저녁시간까지 1~2시간이 남았는데도 부엌에서 쾅쾅쾅, 소리가 나면 십중팔구는 엄마가 돈가스를 만드는 중인 거다. 적당한 시간이 날 때 엄마는 부엌 한편에서 돼지고기를 펴 밀가루, 계란, 빵가루를 순서대로 묻힌 뒤 반찬통에 쌓곤 했다. 주먹만 한 돼지고기가 가차 없이 몽둥이질을 당하고, 세 번의 옷을 입고 나면 어느새 손바닥보다 커진다. 그때도 시장에선 튀기기만 하면 되는 돈가스를 팔았을 것 같은데 엄마는 조금 더 싸게, 맛있는 걸 먹이고 싶었는지 품이 더 들더라도 직접 만드는 쪽을 택했다.
재미있어 보이는 작업에 나도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 부엌은 금세 난장판이 된다. 밀가루는 날리고 계란물은 싱크대 문짝을 타고 흐른다. 돼지고기에 두툼하게 입혀진 옷은 맛이 없다. 엄마는 그래도 꽤 진지한 내 작업을 방해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돈가스가 꽤 높은 층을 쌓으면 엄마는 기름을 올려 튀길 준비를 한다. 그때는 엄마가 본격적으로 음식을 했던 때라 집에 튀김기도 있었다. 식용유를 가득 채운 튀김기는 맹렬한 열기를 내뿜으며 돈가스가 입수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타다다다닥. 엄마는 가족수에 맞춰 돈가스를 튀긴다. 접시 위에 군침 돌게 익은 황금빛 돈가스가 올려져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양배추와 콘이 잔뜩 올라간 샐러드며, 그때의 내 주먹만 한 잡곡밥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맛이야 말해 뭐 하나. 우리가 아는 그 '겉바속촉' 돈가스에 들큰한 샐러드 맛이지.
집에서 만든 돈가스의 장점은 무한리필이 가능한 것이고, 단점은 그만큼 채소를 먹어야 하는 것이다. 깨끗하게 한 접시를 비우고 나면 그 자리에 마치 처음인양 갓 튀겨진 돈가스와 샐러드가 있다.
그때 엄마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엄마도 돈가스를 한입 먹었겠지? 그리고 두 딸이 옴뇸뇸 먹는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고 있었을 거다.
어렸을 때 어렴풋이 엄마, 아빠와 경양식집에 간 기억이 있다. 말간 수프와 함께 나오는 돈가스는 우리집에서 먹던 것보다 더 두툼했다. 칼질이 서툰 어린 딸을 위해 집에서는 엄마가 가위로, 경양식집에서는 아빠가 칼로 돈가스를 슥, 슥, 잘라주었다. 그 모습이 너무 어른 같았다.
어렸을 때 너무 곱게(?) 자라 대학교 가서도 칼질을 헤맸다. 회사에 취직하며 왕왕 스테이크를 먹을 일이 있었는데 그때도 칼을 쥔 오른손에 힘이 너무 들어가 썰다 보면 손이 저릴 정도였다. 할 수 없이 서너점씩 잘라먹었고, 이걸 알 리 없는 주변인들이 스테이크를 먹을 줄 안다며 치켜세웠다.
칼질을 잘하게 된 지금은? 돈가스든 스테이크든 다 썰어놓고 먹는다. 왜냐고? 그래야 쉼 없이 먹을 수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