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은 딸기와 복숭아다. 봄에는 딸기를, 여름에는 복숭아를 먹다 보면 어느새 다시 딸기를 먹을 때가 돌아와 있다. 딸기철이 오면 매년 0.1톤을 목표로 열심히 먹어대는 ‘딸기 귀신’이다.
요즘에는 딸기도 킹스베리니 설향이니 품종이 너무 다양해서 뭘 먹어야 할지 고민될 때가 많다. 맛 차이는 잘 모르겠고 빨갛게 익어 새콤달콤한 향이 나는 것을 주로 장바구니에 담는다. 그리고 가격을 보고 깜짝 놀라지. 프리미엄 이름을 달고 나온 딸기들은 가격이 너무 비싸 꽤 자주 손이 떨린다.
얼마 전에 정말 탐스럽게 생긴 딸기가 한 개씩 낱개로 예쁘게 포장돼 있어 골랐는데 12개에 1만8000원이었다. 애플망고나 샤인머스캣이 비싼 건 고개를 끄덕이면서 딸기는 프리미엄이라니 나도 모르게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 딸기는 고민 끝에 포기했다. 입이 고급스럽지 않아서 그런지 프리미엄이 아니어도 싸게 많이 먹는 쪽이 더 좋다.
초등학교 즈음, 엄마와 시장에 가면 빨간 다라이(바구니라고 하면 이상하게 맛이 안 산다) 한가득 담긴 딸기가 3000~4000원 정도였다. 딸기를 좋아하는 딸을 둔 엄마는 시장에 가면 가장 먼저 과일가게에 들러 딸기를 한 바구니 샀다.
요즘엔 시장 갈 일이 거의 없는데 엄마와 가끔 집 근처 채소가게에 가보면 여전히 다라이에 파는 딸기가 확실히 싸다. 같은 1만5000원인데도 이쪽은 수북이 쌓인 딸기를 두 다라이나 받을 수 있다. 몇 날 며칠 먹고도 남을 양이다.
시장에서 산 딸기는 싼 대신 맛이 복불복일 때가 많다. 크기가 너무 작아 산딸기만한 것도 있고 너무 물러서 식감이 영 별로일 때도 있다. 맛있는 딸기를 쏙쏙 골라 먹고 나면 B급 딸기만 한가득 남는데 그때 엄마는 그 딸기들을 모아 딸기잼을 만들었다.
무른 딸기가 잼을 만들 때는 더 맛있다. 물 같은 잼이 아니라 적당히 식감이 느껴져 맛이 재밌다. 딸기씨도 알알이 씹힌다.
잼과 청은 과일과 설탕을 적당한 비율로 섞어 새로운 음식을 만든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청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잼이 손이 많이 간다.
청은 과일과 설탕을 켜켜이 담아내 반나절 정도 두고 먹으면 되지만 잼은 과일과 설탕을 약불에 끓이며 뭉근하게 녹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불 조절을 잘못하면 금방 눋거나 타서 먹지 못하게 된다. 그 시간과 정성을 알기 때문에 요리에 꽤 관심이 있어도 잼은 시도조차 안 하고 있다.
엄마가 만들어준 딸기잼은 액체처럼 묽었다. 그래도 맛없는 딸기가 달콤한 잼으로 변신했으니 어렸을 때는 그게 퍽 대단해 보였다. 엄마는 딸기뿐 아니라 늘 남는 과일로 사과잼이며 귤잼 같은 걸 만들어줬다. 그 잼들은 때때로 요거트와 곁들이거나 식빵에 발라먹는 데 좋은 요리가 됐다.
엄마가 만들어준 잼이 설탕이 거의 들어가지 않은 건강식이라는 건 한참 뒤에 알았다. 결혼하고 더 이상 수제잼을 먹을 수 없게 되면서 딸기잼을 사먹게 됐는데 머리가 띵, 해질 정도로 달았다. 그 전에도 밖에서 꽤 자주 잼을 먹었지만 1회 분량으로 담긴 적은 양을 먹다 보니 전혀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보통 잼을 만들 때는 과일과 설탕의 비율을 1:1 정도로 하는데 엄마는 설탕을 정량의 반도 안 되게 넣었고, 시판용 잼은 정량을 훨씬 넘게 넣어서 그렇겠지. 엄마 잼이 시판용보다 유달리 묽었던 것도 설탕이나 올리고당 같은 걸 조금 넣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러고보니 딸기철이 얼마 안 남았다. 완연한 봄이 되면 딸기는 단맛이 빠져 점점 물 같은 맛이 난다. 올해는 비싼 딸기밖에 안 보여 아직 0.1톤을 못 채운 것 같은데…. 얼른 부지런히 먹어야겠다. 마음이 조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