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파스타를 진짜 자주 만들어먹는다. 라면만큼 쉽고 빠르다. 파스타면만 삶으면 특별한 재료 없이 소스만 때려 부어도 어느 정도 맛이 난다. 소스가 없어도 된다. 올리브오일에 마늘과 페퍼론치노 몇 개만 넣고 삶아둔 파스타면을 넣으면 완성이다. 한 그릇에 2만원은 족히 하는 레스토랑 맛은 따라갈 수 없지만 한 끼 식사로는 제법 그럴싸하다.
외식을 할 때 꽤 자주 파스타를 선택하다 보니 입맛도 전보다 까탈스러워졌다. 맛있는 레스토랑이 있다고 하면 일단 체크해두고 나중에 근처에서 약속을 잡을 때 가보자며 추천한다. 집에서 파스타를 만들어 먹을 때도 치즈나 오일 브랜드를 이리저리 따져본다. 파스타도 통밀이나 유기농으로 된 걸 먹으려고 한다. 지금 이 모습, 약간 재수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요즘에는 워낙 대중화돼서 밥보다 파스타를 더 많이 먹는대도 이상하지 않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파스타보단 스파게티라는 이름이 입에 붙었다. 스파게티가 파스타 종류 중 하나라는 건 한참 뒤에 알았다. 그 넓은 파스타의 세계도. 그땐 그저 새빨간 토마토 스파게티가 내가 아는 파스타의 전부였다.
엄마는 가아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스파게티를 만들어줬다. 그때 엄마는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일했는데 엄마도 그때 처음 스파게티를 맛봤을 거다. 그렇다고 내가 파스타를 엄청 잘 아는 것도 아니니 엄마가 스파게티를 해준다면 신나서 제일 야단법석을 떨었다.
파스타는 요상한 게, 생긴 것은 소면보다 조금 굵을 뿐인데 삶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고 라면처럼 덜 익은 상태로 먹으면 별로다. 조리법에 설명된 시간으로 해도 늘 이상하게 조금 덜 삶겨있다. 라면은 꼬들한 걸 좋아하면서도 파스타는 지금도 알덴테가 어색하다.
파스타가 적절하게 익었는지는 엄마만의 확인법으로 알아봐야 한다. 물속에서 펄펄 끓고 있는 파스타를 한 개 꺼내 냅다 부엌 타일에 던져서 붙으면 익은 거고, 맥없이 떨어지면 덜 익은 거다. 과학적 근거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엄마는 늘 그렇게 확인했다. 그리고 옆에서 그 광경이 재미있어 보인 나도 같이 확인한다며 늘 냄비 속 파스타면 건지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만들다 보면 불어터진 스파게티가 완성된다. 덜 익은 면을 피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더 익히는 거다. 그렇게 오버쿡된 면에 소스를 끼얹고 부랴부랴 피자치즈를 조금 얹으면 급식실에서 먹던 그 맛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냉동 스파게티 맛 같기도 하고.
지금 먹으라면 고민해 볼 것 같은데 그때는 뭐가 맛있는지 산처럼 쌓아먹고도 늘 아쉬워했다. 달큼시큼한 토마토소스와 짭쪼롬한 치즈, 후루룩 넘어가는 면의 삼박자가 딱 맞았다. 늘 된장국, 김치찌개만 올라오는 식탁에 올라온 이색적인 비주얼이었다. TV 어디에선가 부잣집 식사 장면으로 본 것 같아서 엄마가 스파게티만 해준다면 늘 마음이 설렜다.
요즘에도 가끔씩은 엄마 파스타가 생각난다. 내 첫 스파게티. 케첩이 많이 들어가서인지 시큼한 소스는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한다. 양 조절에 실패해 어마어마한 양의 홈메이드 파스타. 화려한 샹들리에와 은은한 조명의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채워줄 수 없는 감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