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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블 Apr 18. 2021

치킨이 이렇게 감성적인 음식이라고?

치킨


어렸을 적 아빠는 주말 저녁 비정기적으로 치킨을 사주곤 했다. 그땐 지금처럼 휘황찬란한 치킨 브랜드가 없을 때라 브랜드는 이미 정해져 있다. 후라이드치킨이냐 양념치킨이냐를 두고 고민할 필요도 없다. 반반이면 된다.


요즘 유튜브를 보면 ‘1인1닭’은 기본이라고 하지만 우린 ‘5인1닭’이었다. 어른 2명과 어른이 되어가는 학생 2명, 아이 1명은 둥그런 상에 앉아 TV를 보며 치킨을 뜯었다.


어디 가서 적게 먹는다는 소리를 듣는 편은 아닌데 치킨은 지금도 유독 약하다. 삼계탕도 (배가 터질 것 같긴 하지만) 1마리를 뚝딱 해치우는데 치킨은 절대 그게 안 된다. 욕심이라도 부려 많이 먹으려치면 누군가는 배가 고플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치킨은 적당히 세네개를 먹곤 손을 닦게 되는 음식이다. 그 와중에도 꼭 한두덩이씩 남아 그날 밤 소주병을 기울이는 아빠의 술안주가 됐다.



전남친(이자 현남편)이 우리 엄마와 처음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 건 아마 집 앞 호프집이었을 거다. 그는 뒤늦게 사춘기를 맞은 듯 방황하고 힘들어하던 20대의 나를 위로해주다가 딸의 귀가가 걱정돼 집 앞을 서성이던 엄마와 마주쳤다. 엄마는 화를 냈고, 나는 울었고, 그는 당황했다. 수습을 위해 찾은 곳이 그 호프집이다.


사실 거기에서는 별 기억이 없다. 병아리나 다름없는 치킨 한마리와 맥주 3잔을 앞에 두고 엄마는 그를 향해 여자를 잘못 만나 고생이라며 미안해했(내 친엄마가 맞는지 살짝 의심했다). 그는 집에 늦게 보내 죄송하다고 했다. 진상 역할을 맡은 나는 맥주나 마시자며 잔을 들다 취기에 그대로 기절했다.


그 후로도 내가 사고를 칠 때마다 꽤 자주 엄마와 전남친회동을 가졌다. 호프집 간판은 몇 번 바뀌었지만 멤버는 그대로였다. 아빠와 남편이 만난 건 그 후로도 한참 뒤였다.


꼭 ‘호프집 회동’ 때문은 아니지만 내 기억 속 엄마는 꽤 능숙하게 엄마의 역할을 소화해 냈다. 엄마 본인은 힘들었겠지만.


흔히들 ‘나도 엄마는 처음이라’라는 표현을 쓰는데 내가 아는 기억 속 엄마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외모도, 성격도 다른 딸들을 혼낼 때도, 가르칠 때도, 사랑할 때도 늘 적극적으로 표현했고 서툰 행동을 하는 딸을 품었다. 늘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지 못할 걸 알면서도.


아, 치킨이 이렇게 감성적이고 슬픈 음식이었나. 내 기억 속 엄마, 그리고 가족과 같이 먹은 치킨은 떠올때마다 모래알을 씹은 것처럼 불편하고 마음 쓰린 음식이다.


그래도 어느새 세 딸은 모두 직장인이 되어 나름 사회생활을 착실하게 하고 있다. 주머니가 두툼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치킨 두 마리 정도는 시킬 능력이 된다. 최근에는 둘째가 막내동생 생일이라며 호기롭게 치킨을 시켰다. 눈치 보지 않고 다리부터 하나 챙겨도 아직 세 개가 더 있다. 그다음엔 날개 하나, 봉 하나를 뜯었다. 굳이 가슴살을 먹지 않아도 먹을 게 많다.


실컷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치킨이 반마리는 넘게 남았다. 그나마 한 마리는 해치웠으니 식사량이 늘었다고 좋아해야 하나. 이 가족은 치킨에 유독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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