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둘, 둘. 엄마가 타먹던 커피의 황금비율이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밀린 집안일을 해치우고 한숨 돌릴 때면 커피와 프림, 설탕을 두 티스푼씩 넣고 커피를 마셨다. 달콤하면서도 부드럽고, 부드러우면서도 씁쓸한 그 맛.
엄마가 나름 심각하게 커피를 타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여 내가 나서면 커피는 늘 한강이 됐다. 그래도 엄마는 고맙다고 씩, 웃고는 한 모금씩 천천히 마셨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하는 건 뭐든 하고 싶은 게 딸의 심리다. 엄마가 베란다 너머를 멍하니 쳐다보며 찬찬히 마시는 커피가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어른이 되어 이렇게 입에 달고 살 줄도 모르고.
엄마는 초등학생인 내가 커피를 마시려고 하면 엄한 표정을 지었는데, 그렇다고 안 마실 내가 아니다. 엄마가 외출하고 없을 때면 몰래 찬장에서 커피며 프림, 설탕을 꺼내 조심스럽게 제조에 들어갔다. 표정만 보면 실험실 과학자 같았을 거다.
엄마 몰래 마시는 커피는 생각보다 썼다. 프림과 설탕을 반 숟갈씩 더 넣었다. 이제야 내 입에 맞다.
엄마를 따라 에이스도 커피에 퐁당, 담가먹었다. 에이스를 맛있게 먹기 위해 커피를 타기도 했다. 에이스는 커피잔에 너무 담그면 녹아서 커피잔 밑으로 가라앉기 때문에 3초 정도 담갔다가 꺼내 바로 먹는 게 포인트다.
밤새 공부하느라 졸린 눈을 뜨기 위해 고등학교 때도, 어른이 됐다며 카페 이곳저곳을 다녔던 대학교 때도 커피는 마셨지만 커피를 본격적으로 '들이붓기' 시작한 건 직장인이 되고 나서도 한참 뒤였다. ‘왜 저런 맛없고 쓰기만 한 블랙커피를 마셔?’ 하던 아이는 투샷 아메리카노를 하루 세 잔씩은 마셔야 일을 할 수 있는 어른이 됐다. 간헐적으로는 시럽이 잔뜩 들어간 달달한 커피도 ‘주유’해줘야 빠릿빠릿하게 움직인다.
서른이 넘어 커피 맛을 제법 안다고 느꼈는데 내가 마시던 커피는 맛보단 각성효과를 위해 마시는 약 같은 거였나 보다. 주로 잠을 깨거나 일을 할 때 마셨다. 점심을 먹은 뒤에도 으레 하는 행위 중 하나였다. 행선지를 잃고 어딘가로 달음박질하듯 심장은 요동치고 그 심박수를 메트로놈 삼아 일했다.
하지만 엄마와 나란히 식탁에 앉아 마시는 커피는 느긋해서 좋다. 어느새 손등에 쪼글쪼글한 주름이 생긴 엄마는 내가 타주는 커피라면 지금도 뭐든 맛있다고 한다. 커피 물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못 맞춰서 믹스커피도 한강이다. 카누를 타면 보리차나 다름없다. 민망한 마음에 한 포 더 뜯으려고 하면 엄마는 딸이 해주는 건 뭐든 맛있다며 그대로 마신다.
엄마 앞에 앉아 나도 천천히, 향을 느끼며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진짜 커피 맛을 알아가고 있다. 엄마와 자주 커피를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