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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블 Apr 16. 2021

소울푸드가 소울푸드인 이유

떡볶이


지금 먹고 싶은 음식 묻는 질문에 열에 대여섯은 떡볶이라고 답할 거라고 자신한다. 인터뷰이가 여고생이라면 그 비율은 더 올라갈 테고. 내 소울푸드 역시 떡볶이다. 여중생 때도, 그보다 더 어렸을 때도 떡볶이는 내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음식이었다.


소울푸드가 소울푸드인 이유는 보통 추억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책상에 앉아 열심히 받아쓰기 숙제를 하고 있는 초등학생 딸의 뒷모습을 보며 기특한 엄마가 부엌에서 새빨간 떡볶이를 만드는 모습… 이면 좋겠지만 이상하게도 엄마가 해준 떡볶이의 기억은 거의 없다.


아무래도 엄마가 만들어준 떡볶이는 맛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내 입에서 먼저 “엄마, 나 떡볶이 만들어줘”라는 말이 나온 적은 거의 없다. 엄마가 “떡볶이 만들어 줄까”라고 물어봐도 얼른 괜찮다고 답했다.


떡볶이 맛의 핵심은 양념에 있는데 엄마는 딸의 건강을 생각하느라 ‘황금비율’을 크게 벗어난 양념을 했다. 떡볶이 맛집의 레시피를 보면 설탕이 생각 외로 무지막지하게 들어가지만, 엄마는 고추장에서 미세한 양의 설탕 맛을 잡아내려고 했다. 부족한 단 맛은 양파, 양배추, 파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떡볶이는 어느새 떡 사리가 들어간 맑은 고추장국이 됐다.


그래도 밖에서는 엄마와 꽤 자주 떡볶이를 사먹었다. 동네시장 옆 허름한 떡볶이집은 국물떡볶이를 한 그릇 가득 퍼주는 곳으로 유명했다. 학교가 끝나고 엄마와 시장에서 만나면 특별한 말이 없어도 양 손에 저녁 찬거리를 잔뜩 들고 그 집으로 향했다. 동생들은 모르는 엄마와 나만의 데이트 장소로.


메인은 떡볶이지만, 만두도 못지않게 많이 나가는 메뉴다. 떡만이는 떡볶이와 만두를 반반 섞어주는, 여기에만 있는 메뉴인데 당면으로 가득 찬 만두를 반으로 갈라 떡볶이 국물에 적당히 비벼 먹으면  그게 또 그렇게 맛있다. 떡볶이와 만두를 따로 시켜 섞어먹으면 의외로 그 맛이 안 나서 애초에 시킬 때 떡만이를 시켜 만두에 떡볶이 국물을 촉촉하게 입혀줘야 한다. 적당히 달큰한 게 엄마와 나는 한 그릇을 금방 비워냈다.


집을 살짝 벗어난 동네에도 떡볶이로 유명한 분식집이 있었다. 옷이나 가방 같은 걸 사고 배가 출출해지면 그 분식집을 찾았다. 떡 많이, 쫄면이 조금 들어간 떡볶이가 세숫대야에 담겨 나왔다. 맵지도 않고 적당히 퍼진 떡볶이가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맛이다. 이 집은 돈가스로도 유명한데 손바닥만 한 돈가스 3조각에 밥도 한 공기는 넉넉하게 나와 배가 터지도록 먹어도 늘 절반은 남았다.


엄마를 닮아 딸도 매운 걸 잘 못 먹는 탓에 엽기적으로 매운 그 떡볶이를 먹은 건 손에 꼽을 정도다. 늘 순한 맛을 시켜 서너명이 달라붙지만 반도 못 먹고 하나둘 나가떨어진다. 작은 사이즈의 쿨피스 하나로는 부족해 물과 우유로 배를 채우고 나면 저녁까지 밥 생각은 안 난다.


나도 엄마 손맛을 닮았는지 맛있는 떡볶이를 만든 기억이 없다. 내가 먹어도 맛이 없다. 남편은 떡볶이를 제발 만들지 말아달라고 한다. 밖에서는 김밥천국이나 이름도 없는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먹어도 맛만 좋은데 집에서는 이상하게 내 입에 딱 맞는 떡볶이가 안 나온다. 요즘에는 밀키트가 워낙 잘 나와서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되는데 결국엔 엄마처럼 이것저것 넣다보니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떡볶이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집에서만 먹으면 괜히 채소를 너무 듬뿍 넣는 게 문제다.


역시 떡볶이는 과하게 맵고 짜고 달아야 한다. 자극적인 음식에 건강한 식재료를 곁들이는 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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