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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 May 19. 2021

[반항의 대중음악가] 밥 딜런①

격변하는 미국 사회, 포크 음악으로 젊은이들의 지향점 제시

 1960년대 들어 미국 사회는 격변하기 시작했다. 당시 기성세대들에게는 국가를 위해 기꺼이 전쟁에 참여하고,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과 달리 1960년대 젊은이들은 반전 운동에 관심을 보였고, 흑인들은 차별에 반대하는 집단행동에 들어갔다. 이전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1950년대 말부터 흑인들 사이에서는 ‘싯인운동’이 유행했다. 싯인운동이란 백인 전용식당에 흑인이 들어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음식을 주문하는 일종의 비폭력 시위였다. 1960년 2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스보로 지역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싯인운동이 벌어졌고, 이를 계기로 흑인들이 거리에 나와 그들의 권리를 외치기 시작했다. 

  흑인 운동의 절정은 1963년 8월 28일 열린 워싱턴 대행진이었다. 이날 25만 명의 시위대가 에이브러햄 링컨 동상 앞에 모여 인종차별 철폐를 외쳤다. 행진에 참여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어느 날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서 옛 노예의 아들과 옛 주인의 아들이 함께 식탁에 앉는 꿈입니다”라는 역사에 남을 연설을 남겼다. 

  워싱턴 대행진에는 사회운동가뿐 아니라 많은 음악가들도 함께했다. ‘가스펠의 여왕’ 마할리아 잭슨을 비롯해 마리안 앤더슨, 피터 폴 앤 메리, 존 바에즈 그리고 밥 딜런이 행진에 참여해 노래를 불렀다. 흑인인 마할리아 잭슨과 마리안 앤더슨의 참여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포크 음악가인 피터 폴 앤 메리, 존 바에즈, 밥 딜런은 모두 백인이었다. 1960년대 포크 음악은 인종과 관계없이 사회적 약자라면 누구나 외칠 수 있는 저항음악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밥 딜런은 이런 포크 음악 중심에 선 인물이었다.

 
 

  당시 포크 음악은 대부분 어쿠스틱 기타와 하모니카 그리고 보컬 정도로 이루어지는 소박한 음악이었다. 딜런의 음악도 소박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의 가사에는 사람들을 이끄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딜런의 음악이 유명세를 탄 것은 아니었다. 1962년 3월 발매된 그의 첫 앨범 《Bob Dylan》은 겨우 수백 장만 팔리는 부진한 기록을 남겼다. 

  이듬해 발매된 두 번째 앨범 《The Freewheelin' Bob Dylan》이 발매되자 대중들은 환호했다. 앨범 커버는 딜런과 그의 당시 애인 수즈 로토로가 팔짱을 끼고 거리를 걷는 평범한 일상을 담았다. 그런가 하면 음악은 평범하지 않은 정치적인 내용을 시적으로 표현했다. 전세계 사회적 약자들이 딜런의 음악을 들으면서 저항의 움직임을 보였다. 

 
 

 ‘사람은 얼마나 많이 걸어야 사람으로 불릴 수 있을까. 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이 항해해야 모래 위에서 잘 수 있을까. 포탄은 얼마나 많이 날아가야 영원히 금지될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 속에서 날아가고 있어. 대답은 바람 속에서 날아가고 있어.’ - <Blowin' in the Wind> 

 
 

  딜런은 1963년 7월 학생비폭력실천위원회(CNCC)의 흑인 투표권 등록 집회 현장에 참여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딜런의 앨범이 성공을 거뒀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전국적 유명인사가 아니었고 사회운동가들 사이에서도 크게 알려진 존재가 아니었다. 젊은이들이 《The Freewheelin' Bob Dylan》에 환호하자 딜런도 이에 화답하며 그들의 움직임에 동참한 것이다. 사실 딜런이 수십 년 동안 음악 활동을 하면서 사회운동 현장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적은 많지 않다. 

  딜런이 젊은이들을 막 움직이기 시작한 1963년 11월,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암살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40대 젊은 대통령이었다. 케네디 대통령이 사망하자 그를 지지했던 젊은이들이 선장 잃은 선원처럼 우왕좌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중들은 케네디 대통령을 잃은 상처를 치유해주고 사회의 변화를 이끌 무언가를 절실히 원하고 있었다. 

  1964년 3월 발매된 딜런의 세 번째 앨범 《The Times They Are a-Changin'》은 그런 대중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이 앨범에서 인종, 빈곤 등 사회의 부정적 이슈를 다루면서 대중들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젊은이들은 딜런의 음악을 들으면서 앞날을 논의했고, 딜런의 가사를 보면서 집단행동을 벌였다. 그들에게 딜런의 가사는 젊은이들의 지향점 그 자체였다. 

 
 

 ‘펜으로 예언하는 작가와 비평가들이여 모여라. 눈을 크게 떠라.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바퀴는 여전히 돌고 있으니 섣부르게 말하지 마라.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지금의 패자가 나중에는 승자가 될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 - <The Times They Are a-Cha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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