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에서 시작해 얼터너티브 록의 상징적 밴드로 우뚝
2000년대 들어 R.E.M.은 음악보다 사회 운동 분야에서 더 자주 등장했다. R.E.M.이 관심을 보인 곳은 다름 아닌 미얀마와 아웅산 수치였다. 수치는 2000년대 초반 서방국가와 접촉하면서 미얀마의 인권 문제를 호소하다가 2003년 미얀마 군부에 의해 구금됐다. 국제사회에서는 수치의 석방을 촉구했으며 한국 국회의원들도 수치의 석방과 정치적 자유보장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심지어 정치적으로 수치와 반대편에 있을법한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도 수치의 석방을 촉구했다.
2004년, 수치를 지지하는 음악가들이 모여 앨범 《For the Lady: Dedicated to Freeing Aung San Suu Kyi》를 발매했다. R.E.M.을 비롯해 폴 매카트니, 에이브릴 라빈, 콜드플레이, 펄 잼, U2, 에릭 클랩톤, 스팅 등 정상급 음악가들이 함께한 앨범이었다. 앨범 작업에 특히 적극적으로 임한 사람은 스타이프였다. 그는 2004년 9월 22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그녀를 위해 당당하게 설 것이다. 그녀도 스스로 다시 당당하게 설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R.E.M.은 2005년 6월 19일 수치의 60세 생일을 맞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공연을 열었다. 스타이프는 공연장에서 “우리는 그녀의 생일을 마음으로 기도한다. 수치는 그녀의 사람들 사이에서 당당히 걸을 날이 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수치의 가택 연금은 5년이 지난 2010년에서야 해제됐지만 2021년 다시 구금되면서 미얀마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고, 현재까지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스타이프는 2004년 미국 대선에서도 존재감을 보였다. 당시 민주당은 재선을 노리는 부시 대통령에 맞서 존 케리 상원의원을 후보로 내세웠다. R.E.M.은 대선을 앞두고 케리를 지지하는 공연 『Vote for Change』에 참여했다. 『Vote for Change』는 미국 전역에서 약 10일 동안 동시 다발적으로 열린 공연으로 R.E.M.은 워싱턴, 필라델피아 등을 돌며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스타이프의 기대와 달리 부시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다.
R.E.M.은 정치적 활동에 적극적인 2000년대를 보냈지만 음악적으로는 평가가 엇갈린다. 2004년 앨범 《Around the Sun》은 느려진 템포로 인해 과거와 같은 R.E.M.만의 파워가 사라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치적인 목소리만 내다보니 메시지에만 집중해 음악성을 잃은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이 때문인지 《Around the Sun》는 빌보드 차트 13위라는 1990년대 이후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헤비메탈 사운드를 접목시킨 2008년 앨범 《Accelerate》는 빌보드 차트 2위에 올라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효과였고, 50대 중반인 그들에게 이전과 같은 힘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2011년 《Collapse into Now》를 마지막으로 R.E.M.은 해체를 결정했다. 당시 R.E.M.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다음과 같이 알렸다.
‘우리의 팬들과 친구들에게 : R.E.M. 그리고 오랜 친구들이자 동료로서, 우리는 밴드의 해산을 결정했다. 우리는 그간 이룬 것에 대해 감사, 놀라움, 마지막의 감정을 가지고 간다. 우리의 음악을 들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
갑작스러운 해체 소식에 팬들은 놀랐지만 사실 이전부터 멤버들은 해체를 논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30년 이상 R.E.M. 활동을 하면서 개인적인 삶을 보내지 못한 그들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스타이프는 R.E.M. 해체 후 <Drive to the Ocean> 등 솔로곡을 내기도 했지만 크게 이슈가 되지는 못했다.
2010년대 이후로는 R.E.M.이 왕년에 잘 나갔던 밴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평가를 받고 있다. 크게 존재감을 드러낼 일도 없고, 얼터너티브 록이 인기를 회복하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이프와 R.E.M.은 얼터너티브 록의 처음과 끝을 함께한 음악가로 록 본연의 저항정신을 항상 유지했다. 전성기가 짧았던 너바나, 멤버 교체가 잦았던 펄 잼과 비교하면 한 곳에서 변함없이 얼터너티브 록을 연주한 R.E.M.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평범한 대학생이 대스타가 됐으면 인기에 취할 법도 하지만 항상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움직인 R.E.M.의 정신은 먼 훗날에도 귀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