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래서 철학을 한다
철학을 한다는 말의 의미는 동사형으로 마치 철학이 무언가 주체가 되어 움직이는 것처럼 읽힌다. 실제 나에게 철학함은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내가 늘 무심코 하는 행동을 잠시 멈추게 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 후 결국 나의 행동을 바꾸는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내가 교실 속에서 철학함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에서부터의 시작이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아이들이 한없이 천사처럼 예쁘고 귀여울 때가 있지만 나도 모르게 정말 이 작은 여섯일곱 살 아이들과 똑같이 화가 나고 미워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런 뾰족한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건넨 말은 언제나 나 자신에게 돌아와 교사로서 나를 작아지게 만든다. 나이가 몇인데 이렇게 어린아이들과 똑같아지는지 가끔은 어리석은 나의 모습에 자괴감이 들고 교사로서 효능감은 바닥을 친다. 그때 내가 손에 들게 된 것은 책, 그리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어떤 모임, 그리고 대화였다. 그 과정에서 나는 위로를 받고 다시 힘을 내 교실 속으로 돌아간다.
특히 책을 읽을 때 나는 종종 글쓴이가 전달하는 이야기가 마치 나에게 하는 이야기처럼 들려 어떨 때는 감시의 눈으로 나의 마음을 쪼그라들게 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나를 한없이 동의해 주며 위로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책과 함께한 시간은 거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내 머릿속에서 재생되며 교실에서 힘든 순간마다 나를 멈추게 하고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사실 책뿐만이 아니다. 인터넷 포털에서 접하는 기사 속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를 비춰보고 드라마 속 인물들 속에서, 매일 만나는 동료 선생님들의 모습에서 나는 나를 본다. 이런 모든 것들이 불쑥불쑥 올라오는 나의 욕구와 욕망을 어느 정도 통제해 주고 나의 행동을 수정해 주는데 나는 이 과정이 철학함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잠깐 멈추게 하는 철학함 덕분에 나는 오늘도 나와 아이를 구했다. 늘 교실을 뛰어다니고 놀잇감을 던지면서 놀이하는 누가 봐도 손이 많이 가는 한 녀석이 친구가 3일에 걸쳐 완성한 작품을 놀이랍시고 엉망으로 만드는 과정을 마주했다. 얼마 전부터 하준이가 만든 작품이 맘에 들었는지 기웃기웃 만드는 과정도 살펴보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물어보고 했었는데 결국은 녀석이 망쳐 놓은 것을 보고 정말 화가 났다. 작품을 만든 하준이는 유성이의 장난이 자신의 작품을 망친다고 생각하기보다 놀이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화가 나는데 당사자인 하준이는 괜찮은 것 같아 그냥 넘어갈까 하다가
"하준아, 이거 만들 때 엄마한테 보여준다고 네가 며칠 동안 열심히 만든 건데 이렇게 된 것 괜찮아?"라고 물어봤다.
"아니 근데 내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데 계속 유성이가 해요."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하준이도 단호한 거절이 없었기에 유성이는 하준이가 좋아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유성이한테 잔소리하고 싶은 마음이 솟아올랐던 순간.
"설마 하준이 작품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샘이나서 그런 건 아니겠지?"라고 하준이와 이야기하는 사이 유성이는 움찔하며 아무 말을 못 하고 있다. 유성이 얼굴을 보며 더 이야기를 이어갈까 하다가 하준이와 작품을 다시 원상 복구하며 어머님께 보여드려야 하니 다시 잘 정돈해 보자고 말했다.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하다 문득 아까 교실에서 유성이의 멈칫한 순간이 떠올랐는데 혹시 유성이도 하준이처럼 잘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만난 유성이에게 하준이 것을 흉내 내어 대충 만들다 만 작품을 이어 만들어 볼 수 있도록 제안했다. 유성이가 완성한 작품들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해 주고 관심을 가져주었더니 유성이는 나에게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유성이와 하준이가 나란히 앉아서 각자의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여전히 둘이 장난을 치고는 있지만 각자의 작품을 완성하는데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잠깐 멈추고 고민하지 않았다면, 또 누군가 한 명의 아이를 문제아이로 만들 수도 있었겠지?
그래서 나는 철학해야 한다. 그게 나를 살리고 아이를 살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