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뒤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재건의 기술
배신은 한 사람의 세계를 깨뜨린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깨진 뒤” 시작된다.
그 뒤에 남는 것은 수천 개의 파편들이다. 정말 지독한 고통은 이 파편들을 내 손으로 쥘 때부터 시작된다.
이 파편들이란 감정, 기억, 현실, 자존감, 아이들, 미래, 나라는 사람…
내 삶 전체다. 누구도 대신 맞춰줄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내 손에서 피가 나더라도 그 조각을 남에게 넘기지 말라. 반드시 내 손으로 맞춰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맞추는가?
파편을 재조립하는 순서는 이렇게 시작된다.
재건의 첫걸음은 이것이다.
“나는 지금 산산조각 난 상태다.” 이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
억지로 괜찮은 척하면 조각은 더 부서진다. 조각난 상태를 정확히 바라본 사람만이 다시 세울 수 있다.
“나는 무너졌다. 그래서 다시 세울 수 있다." 이 말은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 단계에서 수치감을 느낀다. 나 역시 그랬다.
“당할 만하니 당했지.”
“당한 사람도 멍청한 사람이지.”
“순진해서 그렇지.”
“똑같은 일을 또 당하는 사람이 문제지.”
이런 수치스러운 말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 계속 올라왔다. 배신 이후 내가 맞서 싸운 첫 번째 난관이 바로 이 수치감이었다. 나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이 수치심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첫 번째 방식은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강하게, 의식적으로 나 자신에게 되새기는 것이었다.
나는 늘 내가 선택한 일에는 책임을 지려 했고, 희생하는 것이 책임지는 한 방식이라고 믿었다.
가정을 깨고 싶지 않았고, 나 중심적인 판단으로 아이들의 삶을 흔들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 ‘나’가 되는 게 누구보다 두렵고 싫어서, 견디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고 있는 길 위에 어떤 병신 같은 자가 기름을 부어 나를 미끄러뜨렸다면,
미친 짓을 한 그 자가 문제이지, 넘어지게 된 내가 병신인 것은 아니다.
중앙선을 침범해 나를 들이받았다면, 질서와 약속을 어기고 선을 넘은 사람이 잘못이지 치인 내가 바보인 것은 아니다.
다만, 근본적인 신뢰가 여러 번 깨졌음에도 고집스럽게 매달려 결국 나와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린 것은…
그건 솔직히 바보 같은 선택이 맞다. 이 부분만은 나는 인정했다.
즉, 거부해야 할 수치감은 단호히 거부하고, 인정해야 할 부분은 명확히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치감은 본질적으로 ‘부끄러운 감정’이지만, 더 이상 위험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단, 그 결단을 내린 나 자신은 결코 부끄러운 존재가 아니다. 새로운 지도를 그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이 수치심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조각들은 크기가 다 다르다. 처음부터 예쁘고 완벽하게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일 큰 조각부터 집어야 한다. 큰 조각들은 내가 사는 현실의 뼈대다. 그 큰 조각이란 이런 것들이다.
아이들
생계
일상
집
건강
기본적인 안전감
나에게 큰 조각은 엄마로서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조각, 회사를 지켜야 한다는 조각, 가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각이었다. 아빠가 없다고 가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아빠를 뺀 나머지로 구성된, 내가 그토록 지키려 했던 내 가정 말이다.
나는 이 큰 것들부터 손에 쥐었다.
세상이 무너진 직후에는 감정의 파편들이 눈앞을 가득 메운다.
울고
분노하고
원망하고
복수하고 싶고
배신의 이유를 찾고
상대의 심리를 분석하고…
하지만 이 작은 조각부터 맞추기 시작하면 세계는 절대 다시 세워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큰 조각이 자리를 잡지 않은 상태에서 작은 조각들은 아무리 맞춰도 전체 구조가 다시 무너져버리기 때문이다.
“삶이 무너지지 않게 잡아주는 근본 구조”다.
아이들
집
생계
내일
기본적인 안전
하루 루틴
내 몸
현실 감각
이것들이 삶의 뼈대다. 건물로 말하면 기둥과 기반이다. 이 뼈대가 세워져야 그 위에 작은 감정 조각들이 얹혀도 흔들리지 않는다. 왜 먼저 이걸 붙잡아야 하는가? 이것들이 바로 삶이 다시 굴러가기 위한 최소 단위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감정만으로 살 수 없다. 현실 위에 서야 한다.
트라우마 직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해석이 아니다. 생존이다. 나는 배신으로 인한 이혼이 트라우마급 사건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배신으로 세계가 깨졌다고 해서 삶은 친절하게 멈춰주지 않는다.
아침은 오고, 아이들은 밥을 먹어야 하고, 집세는 나가고, 할 일은 계속 쌓이고, 출근은 여전히 필요하다.
내가 앞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 이자 내가 지금 당장 버텨야 하는 기반인 이 큰 조각들이 없다면
슬픔은 공포로
공포는 무기력으로
무기력은 더한 붕괴로 변한다.
부디 나와 같은 경험은 한 독자가 있다면 꼭 기억하길 바란다. 우리는 밥그릇이 있어야 밥을 담듯이
삶의 그릇이 있어야 감정을 담고 소화할 수 있다.
그런데 트라우마급 사건은 그 감정의 충격이 너무 커서 자꾸 감정부터 손에 잡으려고 한다. 감정부터 다루려 하면 그릇 없이 뜨거운 국물을 손으로 받는 것처럼 모든 게 흘러넘치고 뜨겁고 고통스럽다.
퍼즐을 해본 적이 있는가? 먼저 테두리와 큰 덩어리를 맞추면 작은 조각들이 어디 끼워지는지 자연스럽게 보인다. 반대로 처음부터 자잘한 돌가루 같은 조각부터 잡으면 퍼즐은 절대로 완성되지 않는다.
인생이 깨졌을 때도 똑같다.
아이들을 평소처럼 똑같이 돌보기
(트라우마 상태에서는 시간 감각이 흐려져 루틴 유지가 어렵지만, 의식적으로 잡아야만 한다.)
식사 챙기기 – 먹어야 몸이 버틴다
매일 정시 출근 하기
매일 주문 처리하기
계좌 정리하기 (저축, 대출, 투자, 보험, 카드 대금, 세금 등 모든 계좌를 파악하고 내 주머니 사정을 정확히 인지한다.)
비용 관리 – 더 이상 백업은 없다. 필요없는 지출은 최대한 줄인다.
집 정리 – 외부가 정리되면 내 마음도 조금 정리된다
최소 일주일에 2번 이상 헬스장 가기– 정신은 결국 몸으로 다스려진다
나는 울면서 샤워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불안한 채로 운전을 하고, 가슴이 아린 상태로 청소를 했다.
어느 때는 숨이 조여 오는 듯한 통증도 느꼈다 그럴 때는 처방받은 항 불안제를 먹기도 했다.
아이들이 잠들었을 때 침대 밑으로 내려와 눈을 감고 기도를 했고, 기도를 하다가 또다시 울었다.
새벽에 눈을 뜨면 가슴이 두근 거려 다시 침대 밑으로 내려와 심호흡을 몇십 분씩하고 다시 눕기를 반복...
그렇게 최대한 조용하게 타인과의 공유를 최소한으로 내 큰 조각들을 주워들었다.
나는 감정이 완전히 부서진 상태였지만 이 큰 조각들을 붙잡았기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정신과를 찾은 것도 같은 이유였다. 몸이 따라주지 않아, 이 뼈대를 세우기 위한 최소한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길 권한다. 단, 명심해야 한다.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퍼즐 조각을 대신 맞춰달라는 것이 아니다. 조각을 드는 일은 반드시 내가 해야 한다.
도움은 내가 그 조각을 들어 올릴 수 있도록 견딜 힘과 에너지를 조금 보태주는 것에 대한 도움이다.
내 새로운 세계를 타인이 그리게 두지 말라. 타인이 그리면 그건 더 이상 당신의 세계가 아니라 타인의 세계에 종속되어 버리게 되는 것이고, 다른 말로 하자면 이용당하거나 지배당하게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