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희망

내 세계의 파편을 다시 맞추는 일에 대하여…

by 서이든

배신을 당한 사람이 겪는 감정은 “가슴이 아프다”, “상처받았다” 같은 말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

진짜는 이거다.

내 세계가 산산조각 난 느낌

내가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린 느낌

내가 믿어온 모든 현실이 동시에 사라지는 순간


이 감정은 평생 잊히지 않는다. 왜냐하면 배신은 단순한 “감정의 상처”가 아니라, 내가 살아온 전체 세계가 무너지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신의 트라우마라는 말이 있는것이다.

세계가 깨지는 순간은 이런 식으로 찾아온다.


그날, 그 순간. 이상하게 현실이 멈춘다. 공기의 소리가 사라지고, 몸이 무거워지고, 눈앞의 모든 것이 낯설게 보인다. 사람들은 말한다. “충격 받았겠네.” “많이 아프지?”

아니다. 그보다 훨씬 크다. 이건 파괴다.


믿음이 파괴되고, 질서가 사라지고, 안전감이 사라지고, 내가 누구인지 흔들리고, 내가 살아온 기억들까지 의심된다.
특히 어린 아이들이 있다면, 안전감이 사라진 그 순간의 공포는 극단적이다. 언제든 맹수가 나타나 나와 아이들을 공격할 것 같은 느낌. 몸 전체가 초경계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 순간은 내 인생의 밑그림이 통째로 찢겨 나가는 경험이다.
그리고 한 번 그걸 겪은 사람은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절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 배신 이후의 고통은 ‘재조립의 고통’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신의 첫 충격만 이야기한다.
하지만 진짜 고통은 그 다음이다. 바로 조각난 세계를 다시 맞춰야 하는 고통이다.

내 세계의 파편 하나하나를 맨손으로 주워 다시 붙여야 한다.
혹시 나와 같은 경험을 한 독자가 있다면 이 부분을 반드시 기억하라. 파편을 손에 쥐는 일 자체가 고통이다.

손에서 피가 날 만큼 쓰라리다.
하지만,
반드시,
절대로,
그 조각은 당신이 직접 집어 들고 직접 맞춰야 한다. 이 부분만큼은 정말 명심하길 바란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다. 이전의 세계는 다시 만들 수 없다는 것.

예전 모습의 집은 재건되지 않는다. 지도는 달라지고, 뼈대는 바뀌고, 내 안의 기준도 완전히 새로 태어난다.
매우 낯설 것이다. “이게 맞나?” 의심도 끝없이 밀려온다. 왜냐하면 한 번도 그려본 적 없는 지도를 나 혼자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틀려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계속… 붙여 나가는 것이다.


내가 나의 파편들을 다시 들어 올리면서…


지나고 보니 내가 했던 모든 노력은 내 세계의 조각을 다시 맞추는 일이었다.
비현실감을 느끼면서도, 두려움에 떨면서도, 상실감에 울면서도 내가 계속 했던 일들이 있다.

아이들을 예전처럼 챙기는 것

회사에 몰입하는 것

운동을 하는 것 (트레드밀 위에서 울어도…)

집안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것

감정을 글로 써 내려가는 것

스스로를 돌보는 것 (목욕을 하고, 차를 마시고, 산책을 하고, 화장을 하고, 좋아하는 향수를 뿌리고…)


이 모든 행동이 사실은 산산히 깨진 내 세계를 조용히 재조립하는 과정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게 하나의 길이었고, 어쩌면 유일한 길이었다.

새로 맞추는 세계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기억해라. 이전으로 똑같이 돌아가려고 고집하는 것은, 아무렇지 않은것 처럼 행동하는 게 강한 자라고 믿는 것은 자기 기만이다.
당신은 절대 같은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돌아갈 필요도 없다.


회복의 본질은 다른 모양의 세계를 새로 만드는 일이다.

지도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전의 지도는 타인의 신뢰 위에 세워져 있었고, 결혼이라는 틀 위에 그려졌으며, 가족이라는 환상 위에 만들어졌다면, 이제 새로운 지도는 이렇게 그려진다.

나를 중심으로

아이들의 안전을 기준으로

현실성을 바탕으로

책임과 경계를 기준으로

나만의 질서로


사람은 배신 이전의 세계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지만, 더 단단한 세계로 재탄생하는 것은 가능하다.

부디, 내 세계가 파괴된 것을 “내가 잘못해서 벌 받은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또는 상대를 원망하면서 붙잡지 말고, 세계가 바뀌어야만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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