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맞춤 그 이후... 텅 빈 나를 통과하는 시간
무너지고, 조각들을 맞추고, 버릴 것들을 골라내는 동안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 안이 너무나 텅 비어 있다는 것.
그건 단순한 상실감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로 아주 큰 것을 잃었다.
'가정'이라는, 한 인간이 평생 붙잡고 살아가는 가장 큰 구조물을 잃은 것이다.
그러니 내가 텅 빈 것은 당연했다.
잃은 크기만큼 비어 있는 것이다.
감정을 정리하고 있었지만 정리된 것보다 정리되지 않은 것이 훨씬 많았고,
이 감정의 폭풍은 금방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건 시간이 많이 걸리는 종류의 고통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견디기로, 버티기로.
그건 마치 신으로부터 받은 어떤 미션 같았다.
사람이 크게 다치면 수술을 한다.
수술이 끝나면 '살았다'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수술 부위는 그때부터 통증을 가져온다.
회복이 시작됨과 동시에 회복의 통증도 시작된다.
나에게 그 통증은 여러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혼란, 상실, 공허, 분노, 억울함, 질투, 자괴감, 두려움, 열등감, 죄책감....
하나의 감정이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감정이 올라왔다. 나는 한꺼번에 밀려 오는 파도를 맨몸으로 받아들이듯 그렇게 통증을 견디고 있었다.
너무나 고통스럽고, 삶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질 때,
사람은 본능적으로 무엇인가를 채우고 싶어진다.
누군가의 말, 누군가의 온기, 새로운 관심, 새로운 인간관계, 새로운 위로...
그 어떤 것이라고, 내 마음을 덜 아프게 만들어 준다면 좀 기대고 싶었다.
이것은 마치, 수술 직후 고통에 시달릴 때
강한 진통제를 삼키고 싶어지는 마음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 그리고 다행히도 - 그 순간의 나는 아주 강한 경고음을 들었다.
"진통제는 한두 번 먹다 보면 중독된다. 너 지금 누구에게든 기대면, 반드시 의존하게 될 것이다."
정확한 그거가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메시지는 너무나 선명했다.
"아직은 아니야. 너는 지금 너무 텅 비었어. 너는 지금 많이 아파. 누군가에게 경계를 세울 힘이 아직 없어.. 아직 아무도 네 안에 들어오면 안 돼."
나는 내 안의 그 경계의 목소리를 따랐다. 새로운 관계도 (이성이던, 동성이던) 어떤 위로도 찾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힘들어 보여 나에게 다가오는 것도 (오래된 친구도, 그냥 아는 지인도, 심지어 가족도) 본능적으로 거리를 두었다.
왜 인지 모르겠지만, 그건 생존을 위한 본능이었다.
통증이 심하고 내면의 힘이 약할 때, 사람을 들이면, 그 사람은 위로가 아니라 진통제가 된다.
그리고 진통제는 잠시 고통은 잊혀줄 뿐 상처 자체를 치유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편한 순간에 의존하면 어처구니없이 나는 그것에 중독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비어 있는 나를 억지로 채우는 대신 그 텅 빈 공간을 견디기로 선택했다.
너무너무 아프지만. 곧 나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그리고 다시 만들어질 내 세계를 단단히 지킨다는 결심이 있었기에...
다음 화부터는 내가 홀로 버티는 시간 동안 어떻게 스스로 아픔을 달래고 회복해 나갔는지를 써 보겠다..
아픔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분들에게 작은 솔루션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