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복원하는 기술 1 - 식물 키우기

말 없는 존재와 다시 사랑을 연습하다.

by 서이든

말 없는 존재와 다시 사랑을 연습하다.

식물 키우기, 나를 살려낸 첫 번째 기술


이혼 후 한동안, 나는 아무도 들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그저 내 통증이 사라질 때까지 내면에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었다.


새로운 사람도, 새로운 관계도, 심지어 새로운 동물도... 그렇게 아무것도 들이지 않은 내가 들인 것이 있었다.

그것은 식물이었다. 말이 없고, 요구가 적고, 그저 조용히 자라나는 존재들.

나는 식구가 한 명 줄어 꽤나 적막했던 거실의 공기를 채워보고자 3개의 식물을 샀다.


잎 하나하나가 마치 하늘의 빛을 향해 올라가려는 몸짓으로 보이는 극락조

둥글고 부드러운 입꼬리에 완만한 곡선으로 부드럽게 안아주는 듯한 느낌의 파인 트리

어디선가 많이 본 듯, 그리고 쉽게 잘 자란다고 추천받은 홍콩 야자.


그렇게 식물 3개를 거실의 끝 두 모서리에 두었다. 초록색의 잎들이 보이니 왠지 마음이 조금 깨끗하고 편안해지는 듯한 느낌도 덩달아 들더라..

아이러니하게도, 전남편과 살았을 때 키우던 식물들은 사는 대로 1년을 못 버티고 거의 다 죽었다. 햇빛도 잘 들고 물도 그럭저럭 잘 준 것 같은데 이상하리만큼 오래 가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의 집에서 이 3개의 식물은 모두 건강하다. 이게 참 놀랍다. 초록색 잎이 매끈하게 빛나고, 새잎이 통통하게 올라오고, 특히 극락조는 매일 눈에 띄게 잘 자란다.


나는 이 현상이 단지 '환경이 좋아서'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렇게 느낀다.


'지금 내 안의 생명력이 건강해지고 있어서.. 그 에너지가 식물에게도 전해지는 건 아닐까.."


식물은 내 상태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됐다.

우리 집 공기의 온도,

이 집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 나와 나의 아이들.

내가 요즘 얼마나 무너져 있는지, 혹은 안정되어 있는지.



사랑을 줄 대상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식물이 필요한 이유


이혼을 경험하고 나면 사람은 '사랑을 줄 대상'을 한 번에 잃는다.

나는 남편에게, 가정에게 사랑을 주던 사람이었다.

우리 식구의 먹을 것을 챙기고, 함께 보내는 주말을 계획하고, 여행을 짜고, 막연한 우리 네 식구의 미래를 위해 모으고 아끼고, 보이지 않는 각각의 감정까지 읽어내면서.. 가정을 중심으로 내 몸이 움직였던 사람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 가정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움직일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사랑을 줬던 대상이 통째로 사라진다.


남편도 없고,

예전의 가정도 없고,

나도 의식하지 못한 채, 내가 공들여 맞춰왔던 세계가 통째로 없어졌다.


그런데 사랑을 주는 습관은 그대로 몸에 남아 있는 거다.

그래서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사람은 사랑을 줄 대상을 상실하면 방황한다. 그래서 이혼 직후 엉뚱한 연애,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시작하는 관계가 흔히 일어나는 것 같다.


자기도 모른다. "나는 사랑을 받고 싶어서"라고 하지만,

사실은 "내가 사랑을 주던 그 습관이 갈 곳을 잃어서"

몸이 초조해지는 것이다.


나는 이걸 나중에야 알아챘다.

그리고 이렇게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


"사랑을 주는 본능을, 다시는 나를 망가뜨릴 방식으로 쓰고 싶지 않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식물이다. 식물은 가장 안전한 사랑의 대상이다.

식물은 나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나를 조종하려 들지 않는다.

내 감정의 틈을 이용하지 않는다.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저

내가 주는 만큼 자라고,

내가 돌보는 만큼 반응하고

내가 잠시 무너져도 나를 비난하지 않는다.


엉뚱하게 동물이나, 새로운 인간을 먼저 들이지 말자.

마음이 너무 아픈 시기에는 내가 누군가에게 의존하게 되기도 쉽고,

또 누군가가 나의 혼란을 이용하게 되기도 쉽다.


식물은 그 사이를 지켜준다.

내 안의 사랑을 쏟을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사랑 연습 상대가 되어준다.


물을 주는 행위 - 나는 아직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증거


식물에게 물을 준다는 건 단순히 흙을 적시는 행동이 아니다.

그건 내 안의 돌봄 능력을 다시 깨우는 일이다.

나는 이 행위를 잊지 않으려고 일부러 의식한다.


"그래,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보호하고 키울 수 있는 사람이지.. "

이 감각은 굉장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상실을 겪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처럼 느끼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실패한 아내다, 나는 가정을 지키지 못한 사람이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


이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식물에게 물을 주고, 잎을 닦아주고, 화분을 돌려 햇빛을 잘 받게 놓아주는 일은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챙겨줄 수 있는 있는 사람이라고 아주 조용하지만 강하게 말해준다. 나의 돌봄 능력이 죽지 않았다는 증거, 내가 아직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를 매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큰 힘이다.


식물이 주는 규칙성 - 신경을 안정시킨다.


식물은 루틴을 요구한다. 정해진 간격으로 물을 주고 햇빛의 방향에 따라 화분 위치를 돌려주기, 계절에 따라 흙 상태 확인하기.


이 작은 루틴들이 무너진 내 일상에 "규칙성"을 되돌려줬다.

상실 직후, 사람의 신경계는 위기 모드에 고정돼 있다. 변연계가 과민반응해서 잠이 잘 안 오고, 별것 아닌 일에도 깜짝 놀라고, 심장이 괜히 빨리 뛰고, 생각이 멈추질 않는다.

이럴 때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실제로 더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식물에게 물을 주는 정도의 아주 작고 반복 가능한 행동은 신경계에 이런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다.

"너는 여전히 너의 세상을 돌볼 수 있어. 너의 세상은 규칙적으로 움직여. 아직 살아있어.."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 매일 눈이 가장 자주 가는 곳에 놓기


주방, 식탁, 침대 옆, 소파 옆 등. 일부러 찾아가서 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눈길이 머무는 자리가 좋다.

물 주는 날을 정하고 이 날를 나를 돌보는 날과 연결해 본다.


예를 들면,

1주일에 한 번, 식물한테 물을 주고 나에게도 내가 좋아하는 따뜻한 다과를 제공 한다. 나는 식물에게 물을 주면서 매일 싱그러운 초록빛을 보여줘서 고맙다고 말을 했고, 나에게도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어서 대견하다고 스스로 말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커피 한 잔과 수제 쿠키 몇 조각을 먹었다.

이렇게 식물에게 물 주는 날을 나를 돌보는 날과 묶어보는 것이다.


회복은 거창하지 않다.

회복은 상처가 갑자기 다 낫는 순간이 아니다.

회복은 내가 돌본 만큼, 내가 준 만큼. 아주 천천히 되돌아오는 과정이다.


식물은 내게 말을 해 주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가장 부드러운 방식으로 반응한다..


나는 내 식물들을 보면서 말한다.

"잘 자라고 있네.. 나도 잘 자라고 있어.. 나도 너처럼 천천히 솟아날 거야. 다시 피어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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