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를 거슬러 질서를 세워라
이혼 직후 감정은 정리되지 않았고, 생각은 방향을 잃었고, 가슴은 늘 안개가 낀 것처럼 답답했다.
내 안은 완전히 무질서했다. 나는 그 혼란을 통제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그때 내가 한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집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이건 거의 본능적이었다.
"이 혼란이 나를 집어삼키기 전에 내가 너를 먼저 잡겠다."
나는 안 쓰는 물건부터 손에 잡았다. 고장 난 공기청정기, 성능이 딸려서 안 쓰는 가습기, 오래 쌓인 서류 종이들, 화장대에 위에 있는 여러 가지 화장품들, 왜 갖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잡동사니들, 입지 않는 옷들을 한 봉지씩 모아 버렸다.
전 남편이 두고 떠난 물건들은 일주일에 걸쳐 정리해서 우체국 박스 대자 8박스에 담아 보냈다. 그리고 남은 것들은 모두 버렸다.
버림의 기준은 단순했다.
살아 있지 않는 것.
내가 손을 대지 않는 것.
그냥 그 자리에 방치된 모든 것들.
더 이상 목적을 잃은 것들.
나는 그것들을 모두 "죽은 것"이라고 판단했고, 내 집에 더 이상 죽은 시체를 두고 싶지 않았다.
집안에서 떠돌아다니는 무기력과 억울함과 슬픔들이 그 물건들 사이에 끼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그걸 치우지 않고 회복할 수 없다는 걸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주방과 식탁을 가장 먼저 청소했다. 주방은 우리 가족이 가장 많이 머물던 자리였고, 여전히 나는 그곳이 내 삶의 중심이라고 믿고 싶었다.
식탁 위에는 생화를 놓았다. 일주일밖에 못 가는 생화지만 그 일주일 동안만큼은 생화가 주는 아름다움이 잠깐이라도 나와 내 아이들의 삶을 스쳐가길 바랐다.
나는 그때부터 아침 루틴이 달라졌다. 큰 아이가 7시에 밥을 먹기 때문에 나는 늘 6시에 일어났고,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거실과 소파를 정돈하는 것이다.
아이가 학교에 가고 난 후 8시쯤 되면 아침 햇살이 바닥에 부서지는데 그때 먼지가 유난히 잘 보였다.
그 먼지를 보는 순간 마음속의 혼란이 같이 보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청소기를 잡아 구석구석 쌓인 먼지들을 빨아들였다.
환기도 자주 했다. 아침부터 차가운 공기가 들어와 춥긴 했지만 새로운 공기가 들어오는 순간 죽어 있던 나의 마음 세포가 산소를 공급받아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어. 그리고 집 안으로 외부의 새로운 공기가 춤추듯 밀려 들어오는 그 느낌이 좋았다. 그 느낌이 좋아 좀 더 실감 나게 느껴보려고 나는 맞바람이 치는 창가 근처에 풍경을 달았다. 좀 신경 써서 만든 풍경이라고 하는 것을 샀는데, 바람이 닿을 때마다 울리는 그 소리가 정말 아름 다웠다..
어느 날 둘째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엄마, 우리 집 호텔 같아!"
그 말이 모든 걸 설명했다. 특별히 집에서 바꾼 것이 없었는데 청소와 정돈 만으로 집의 색깔이 바뀌었다. 공기도 달라졌다. 아마 냄새도 달라졌으리라.
우리의 삶이 다시 질서를 갖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그 질서를 "안전"이라고 느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정돈된 집에서 호텔 같이 좋다고 하면서 편안하게 있는 것을 보며,
부모가 무너져도, 아이들의 물리적인 공간이 무너지면 안 된 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정리는 어느 순간 내 삶 전체를 지탱하는 기둥이 되었다.
내 안에서 일어난 혼돈은 내 주변도 무질서하게 만드는 것 같았는데, 나는 그걸 막고 싶었다.
내 공간만큼은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고 싶었다.
책에서 읽었는데, 세상은 엔트로피 법칙을 따른다고 한다.
모든 것은 저절로 무질서해지고, 그 흐름을 거슬러 질서를 만드는 것이 인간의 창조적 행위라고.
나는 그 말이 너무 정확하게 느껴졌다.
내 마음의 엔트로피는 이미 절정이었고
감정은 제자리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었고
생각은 산산이 흩어져 있었다.
그러니 물리적 세계 (내 집, 내 공간) 만큼은 그 엔트로피를 억제해야 했다.
청소라는 행위는 무질서를 거슬러 내가 다시 삶을 의지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선언이다.
그렇게 주변이 깔끔해지기 시작하자 나도 덜 혼란스러웠고, 정돈된 나의 공간에서 마시는 차 한잔이 한 알의 진통제 보다 더 강한 진통효과를 냈다.
나는 결국 이렇게 믿게 되었다.
"내 주변의 질서가 결국 내 마음의 질서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