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복원하는 기술 3- 몸을 움직이기

운동을 하세요.

by 서이든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많이 앉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오래 앉아 있었다. 앉아 있는 건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그땐 그 '아무것도 아님' 조차 내게 너무 큰일이었다.

몸은 의자에 붙어 있었고, 의자는 바닥에 붙어 있었고, 나는 세상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그렇게 굳어 있었다.


사람들은 운동을 하라고 말한다. 움직이면 조금 나아지니깐. 그 말은 선의였지만, 그 선의를 감당할 힘조차 내게 없었다. 몸을 움직인다는 건 '살아 있다'라는 적극적인 선언인데 나는 그 당시 그런 선언을 할 기력도, 확신도 없었다.


그래서 운동은 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할 수 있는 운동이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살고 싶은 욕구가 살아 있었는지 나는 어느 날 살고 싶어 현관문을 열어 문밖의 공기를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밖의 공기가 얼굴에 닿자 낯선 기분이 들었다. 새삼스럽게, 바람이라는 것이 이렇게 차갑고 가벼웠나 싶었다. 이혼 과정에서 나는 주눅이 들어 실내의 공기 속에서만 살았는데, 그 공기가 내 감정처럼 무겁고 눅눅한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나는 천천히 걸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손에 어떤 결심도 쥐고 있지 않은 걸음이었다. 그저 몸이 바닥에 닿는 것만을 느꼈다.


봄이었다.

벚꽃이 피어있었고, 아이들이 아파트 단지에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햇빛은 따듯했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향으로 바쁘게 걸었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풍경과 아무 연결도 없었다. 꽃이 아름답다는 감각도 없었고, 따듯한 빛이 위로가 되지도 않았고 웃고 떠드는 사람들의 얼굴이 내게는 아주 먼 행성의 기호처럼 보였다.


그래도 나는 걸었다. 감정을 느끼려고 억지를 부리지 않았고 그냥 감정이 죽어있는 나를 내가 그래도 끌고 간다는 생각으로 걸었다.


그런데 참 다행이다. 그때 나에겐 감정은 없었지만 기억이 있었다.

'나는 늘 이 벚꽃 계절을 좋아했지.. ' '나는 특히 저 꽃잎들이 날려서 비처럼 뿌려지는 모습을 좋아했지.. 그 장면 찍은 사진이 몇십 장이 있는지 모른다.. ' '나는 햇빛 좋은 날 장 보러 나가는 걸 좋아했지..'


기억이 내 감정의 유일한 안내자였다. 그래서 나는 기억을 따라 걸었다. 걷는다는 건 내가 아직 완전히 죽은 건 아니라는 아주 작은 증거였다.



숨이 차도록 달려보라


그렇게 몇 날을 걷다 보니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걷는 동안엔 눈이 땅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날은 괜히 하늘을 봤고 하늘은 넓었고 뭔가 안정되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운동화를 신고 달렸다. 처음엔 달리는 내가 참 어색하기도 했다. 지금 이 상황에 달리는 내가 웃기기도 하고.. 그런데 그렇게 달리다 보니 하루 종일 내 가슴을 조이던 그 불안이 달리는 리듬에 맞춰 몸 밖으로 솟구쳐 나오는 것 같았다.

나는 이혼으로 힘든 시기에 이런저런 책을 찾아보다 김주환 교수님의 내면 소통이라는 책을 알게 되어 읽었는데, 그 책에서 읽었던 문장이 떠올랐다.


‘스트레스 상황의 뇌는 멧돼지를 마주한 사람의 뇌다’


그 말이 너무 정확해서, 달리는 동안 내 뒤에서 정말 멧돼지가 뛰어오는 것 같았다. 그 상황에서 명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내 뇌가 도망치라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나는 불안과 심리적 알람소리에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였던 거다. 멧돼지가 나를 쫓아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죽이지 못할 거면, 빨리 뛰어 도망치는 거다. 그래서 뛰었다. 속으로 '제발!, 도망쳐! 빨리 뛰어! " 같은 말이 스쳐 지나갔다.


숨이 목까지 차올랐고, 심장이 튀어나올 듯 뛰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친 듯이 뛰던 심장이 가라앉자 내 마음도 같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뛰던 심장이 가라앉는 그 순간의 침묵이, 그 몇 분의 고요가 그 시기의 나를 간신히 하루 더 버티게 했다.


지금 돌아보면, 몸을 움직인다는 건 운동이 아니라

바닥에 굳어있는 나를 다시 세계로 돌려보내는 행위였다.


어떤 날은 걷고,

어떤 날은 빨래를 하고

어떤 날은 러닝머신 위에서 울 듯 뛰고

어떤 날은 무게를 들었다.


완벽함은 없었고 의지도 부족했다.

기분은 늘 어둡고,

경계심은 늘 높았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멈추는 순간, 내 안의 어둠이 다시 나를 끌고 갈 것을 알았기에... 나는 그냥 이 세상에서 예전처럼 그렇게 평범하게 살고 싶었기때문에다.


몸이 먼저 살아날 때 마음이 그 뒤를 따라오는 그 느낌을

그 시절 나는 몸으로 감각적으로 배웠다.


그러니, 나와 같은 어려움으로 무기력하고 두렵고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분들이라면

우선 그냥 문 밖에만 이라도 나갔다 와보자.. 그리고 그 후엔 걸어 보고,, 그게 되면 뛰어 보는 거다..


조금씩 천천히 하면 된다.

중요한 건 우리는 다시 예전처럼 꽃을 보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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