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복원하는 기술 4 - 감정 글쓰기

이혼의 아픔의 진원지 찾기

by 서이든

마음에게 질문을 던지는 법 – 감정 글쓰기


나는 이혼 직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오래 괴로웠다.
‘마음이 아프다’라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그 고통은 몸의 통증으로까지 번질 정도였다.

무엇보다 눈물이 너무 많이 났다.
어느 때는 이유도 없이 갑자기 터져 나왔다.

처음에는 분노라고 생각했다. 배신을 당했으니까.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세 번이나. 그래서 분노와 수치심의 눈물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분노와 수치심이라고 하기엔 눈물의 양이 너무 많았고, 기간도 길었다.

무엇보다 고통이 장기까지 관통하는 것처럼 깊고 컸다. 도대체 이 엄청난 눈물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가장 괴로웠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생각했다.
원인을 알아야 이 눈물을 멈출 수 있겠다.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까지 아픈 건지 알고 싶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에게 물어봐야겠구나.


이든, 너 왜 우니?
너 어디가 그렇게 아프니?
지금 네 고통은 뭐니?
대체 뭘 해주면 좋겠니?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어?


마음속으로 물었다. 그런데 질문이 한꺼번에 몰려오거나, 뒤죽박죽 섞이거나, 금세 증발해 버렸다.

그러니 대답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 종이나 잡았다. 하필이면 2년 전 친구들과 일본 여행에서 사 온, 한지로 된 편지지 묶음이었다.

그건 원래 남편에게 주려고 산 선물이었다. 그는 필기구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니 당연히 좋아할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 종이는 여기저기 굴러다니다가, 그날 내 손에 들어왔다.


나는 거기에 썼다.
책을 쓰듯도 아니고, 편지를 쓰듯도 아니었다.
그냥 막 휘갈겨 썼다.
맞춤법도 없고, 띄어쓰기도 없고, 형식도 없었다.

감정의 변동이 너무 빨라서 글씨도 감정을 따라 휘갈겨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오른손 하나로만 쓰다 보니 생각이 천천히, 내 손글씨 속도에 맞춰 하나씩만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감정들이 다 할 말이 있는데, 이든이의 손끝에 도달하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감정들이 줄을 서서 하나하나 나오는 느낌이었다.


아프다.
너무 괴롭다.
후회된다.
걱정된다.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못 버틸 것 같다.


그러다 문장이 바뀌었다.


왜?


그래서 나는 다시 물었다.
이든아, 너 뭐가 그렇게 슬프지?


그러자 대답이 나왔다.


몇 달 전의 내가 그리워.
우리가 여행 갔을 때가 그리워.
1년 전, 함께 있던 그 장소가 그리워.
아니… 내년에 우리가 휴가 갈 그곳이 그리워.
몇 년 후에, 아이들과 우리가 함께 있어야 할 그 미래가 그리워.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든아, 너는 지금 우리가 그립구나.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우리 넷이 함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그 모든 시간이 그립구나.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더 펑펑 울었다.
맞았기 때문이다.

내 고통의 정체는 분노나 수치심이 아니었다. 배신에 대한 분노와 수치심은 이미 그 아래에 묻혀 있었다.


내 눈물의 진짜 원인은 상실감이었다.

내 가정의 죽음.
앞으로도, 다시는 우리 넷의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이 내게는 그렇게도 큰 고통이었던 거다.


글을 쓰면서 나는 내 눈물의 진원지를 찾았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그래서 너는, 이든아.
너는 이 가정을 지키고 싶어?
남편이 돌아오길 바라?


대답은 명확했다.


아니.


나는 슬펐지만, 그가 돌아오길 바라지 않았다.

이미 내 가정은 죽었다.
그가 돌아온다고 해서 다시 살아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남아 있는 우리 셋까지 함께 가라앉을 것 같았다.

글을 쓰며 깨달은 게 하나 있다.
내가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 이상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아이들로부터 경계해야 할 위험 요소에 가까웠다.


그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지만 이미 폭력적이었고,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너무나 중독적이었다.
마치 문제 행동을 반복하다 결국 퇴학당하는 아이를 보듯,
연민은 있지만 더 이상 함께 갈 수는 없는 존재였다.


이 감정은 너무 복잡해서 글로 풀지 않았다면 나는 끝없이 혼란 속에 있었을 것이다.

겉으로 보면 나는 ‘배신당한 아내’다. 사랑을 잃고 분노하는 사람처럼 보였겠지.
하지만 내 눈물의 실체는 완전히 달랐다.


가정을 잃은 상실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돌아오길 바라지 않는 마음.
그를 나와 아이들의 노선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슬픈 결단.
아이들에게 예전의 가정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
그리고 그 모든 선택을 내가 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


그 모든 것이 글 속에서 하나씩 분해되었다.

나는 남편을 미워하고만 있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다.
미안함도 있었고, 연민도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믿었던 것이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도, 비로소 인정할 수 있었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은 사실
혼자 남겨질 것에 대한 두려움,
비난받을 것에 대한 죄책감,
습관이 된 집착,
관계라는 이름의 강박이었다.


나는 거의 매일 글을 썼다. 일본에서 산 두꺼운 편지지 묶음을 하나 다 쓰고도 모자라 집에 있던 복사지까지 썼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역시, 그때의 기록을 더듬으며 쓰는 것이다.


그 모든 큰 그림이 글을 쓰는 동안 스스로 정리되었다.
그리고 알게 됐다.


감정을 끝까지 쓰다 보면, 그 끝에 답이 있다.

그 답은 누군가가 주는 게 아니라,
내가 나에게 도달하는 것이다.



감정 글쓰기, 이렇게 시작해라


목적은 하나다.
“내 눈물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

위로받으려고 쓰지 마라.
정리하려고도 쓰지 마라.
그저 왜 아픈지 알아내기 위해 써라.


1) 나에게 질문해라

다음은 내가 나에게 했던 질문이다.

너 왜 우니?

너 어디가 그렇게 아프니?

지금 네 고통의 이름은 뭐야? 슬픔이니, 분노니, 수치심이니, 불안이니?

그래서 내가 뭘 해주면 좋겠니?

이 일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어?


질문을 쓰고, 대답을 깊게 생각하지 말고 바로 써라.


2) 손으로 써라 (중요)

손으로 쓰면 생각은 반드시 한 줄씩 나온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차례차례 줄을 서기 시작한다.
감정의 속도를 강제로 늦추는 효과가 있다.

맞춤법, 문장, 논리 전부 필요 없다.
그냥 휘갈겨 써라.


3) “감정 → 왜? → 대답 → 다시 질문” 구조를 반복해라

아프다.

왜?

무엇이 그리운가?

그래서 나는 무엇을 잃었지?

그럼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이 과정에서 스스로 놀랄 만큼 정직한 답이 나온다.


4) 결론을 내리려 하지 마라

답은 ‘쓰다 보면’ 나온다.
의식적으로 결론을 만들지 마라.
글이 끝나는 지점이 이미 당신의 답이다.


5) 그 글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마라

당신이 쓴 글은 작품이 아니다.
증거도 아니고, 기록도 아니다.

그저 당신의 생존 흔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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